브리트니 머피 Brittany Murphy (1977~2009)
다재다능하고 에너지 넘치던 여배우,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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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커다란 눈이 인상적이었던, 다재다능하고 에너지 넘쳤던 배우 브리트니 머피.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그녀는, 숱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인상적인 캐릭터를 창조했지만,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을 거라고 기대되던 배우였다. 그녀는 개런티 1천만 달러를 넘기는 흥행 보증수표나, 블록버스터를 선호했던 배우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연기력을 연마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던 그녀는, 탄탄한 기본기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그녀는 특정한 장르에 머물지 않았고, 메이저와 인디펜던트를 오갔으며,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고, 스타덤에 오른 후에도 작지만 알찬 작품들을 꼼꼼히 챙겼다. 우리에겐 낯선 작품들도 꽤 눈에 뜨이지만,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그 어떤 배우보다 풍성했다.
브리트니 머피는 1977년 11월 10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고, 어머니는 아일랜드계와 동유럽계 혈통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범죄자였다고 하는데, 이탈리아계라는 걸 감안하면 언뜻 마피아를 떠올리겠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브리트니 머피가 두 살 때 부모는 이혼을 했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뉴저지에서 성장한다.
어린 시절 그녀는 지역 극단에서 연기와 노래를 배웠고(두 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3세에 에이전트에게 발견되어 CF 모델이 된다. 본격적인 연기자의 꿈을 품은 그녀는 어머니에게 LA로 가고 싶다고 말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오로지 딸의 인생을 위해 동부에서 서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브리트니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엔 어머니의 헌신이 매우 큰 역할을 했고, 브리트니 자신도 여러 인터뷰에서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말하곤 했다.
그녀의 분수령이 되었던 <클루리스>. 그 여세를 타고 출연한 액션 코미디 <드라이브>(1998). 2000년 이후의 얼굴에 비해 아직 통통한 모습이다. 한때 성형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머피는 부인했다.
1991년 TV 시리즈 <머피 브라운>에 잠깐 출연하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의 정식 데뷔작은 시트콤 <드렉슬러스 클래스 Drexel's Class>(1991~92)였다. 그녀의 나이 14세. 15세 때는 첫 영화를 경험하는데, <패밀리 프레이어스 Family Prayers>(1993)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대사 한 마디 없이 '누가 킹카와 키스를 할 것인가'를 정하기 위해 병을 돌리는 소녀 중 한 명이었다.
<클루리스>(1995)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녀의 경력은 대부분 TV 드라마나 시트콤에 한정되어 있었다. ABC의 시트콤 <올모스트 홈>(1993)과 <시스터, 시스터>(1994-1995)는 그녀의 이름을 서서히 알렸던 작품들. 그리고 <클루리스>의 '타이' 역으로 그녀는 조금씩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촌뜨기 전학생' 역을 맡은 그녀는, 쉐어(알리샤 실버스톤)의 '멋쟁이 만들기 프로젝트'의 실험 대상이 되는데, 꽤 비중 있는 조연이었으며 자신의 연기력을 알리는 덴 부족함이 없는 역할이었다.
<클루리스>는 머피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이 영화로 '코미디가 가능한 배우'로서 할리우드에 조금씩 이름을 알렸고, 인디펜던트 영화의 러브콜을 받는다. 잠시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서 밀러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1997)으로 브로드웨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TV 영화 <데이비드와 리자>(1998)에서 루카스 하스의 상대역을 맡으면서, 그녀의 주가는 더욱 높아졌다. <클루리스>로 '영 아티스트 어워드'의 영화 부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머피는, <데이비드와 리자>로 '영 아티스트 어워드' TV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가 된다.
이후 그녀는 다양한 장르의 탐색자가 된다. 조연으로 출연한 <드롭 데드 고저스>(1999) <처음 만나는 자유>(2000)는 20대 초반의 연기파 배우가 등장했음을 알렸고, TV 영화 <커밍 아웃 Common Ground>(2000)에선 레즈비언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트릭시>(2000)에선 알코올중독자로 등장했으며 <체리 폴스>(2000)에선 살인마에 쫓기는 스크림 퀸이었다. 그리고 <돈 세이 워드>(2001)의 정신 장애를 겪는 소녀 역할을 통해 확고한 스타덤에 올랐다.
연기와 함께 그녀가 애정을 쏟는 분야는 바로 음악이었다. 1990년대 초에 'Blessed Soul'라는 밴드에서 싱어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녀는 콜 포터에 매료된 재즈 마니아. 그 외에도 TLC, 비요크, 롤링스톤즈, 티어스 포 피어스 등의 열렬한 팬이며, 2006년엔 폴 오켄폴드와 함께 부른 'Faster Kill Pussycat'으로 빌보드 댄스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에미넴과 함께 <8마일>(2002)에 출연했던 2002년의 MTV 무비 어워드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던 그녀는, 목소리 배우로 출연했던 <해피 피트>(2006) OST에서 퀸의 'Somebody to Love'와 어쓰 윈드 앤 파이어의 'Boogie Wonderland'를 부르기도 했다.
<8마일>(왼쪽)과 <해피 피트> 더빙 모습. 그녀는 배우이자 뮤지션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받았던 보컬 트레이닝 덕에 목소리 배우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사이드워크 오브 뉴욕>(2001)이나 <라이딩 위드 보이즈>(2001)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머피에게, 재니스 조플린의 전기 영화 제의가 온 것은 일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코트니 러브와 에밀리 왓슨을 누르고 조플린 역을 차지했던 머피. 하지만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프로젝트는 무산되었고, 그녀는 <8마일>에 에미넴과 함께 출연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만약 그녀가 재니스 조플린 역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녀의 대표작은 지금까지 그 영화로 기록되었을지도, 혹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을지도(수상까지?) 모른다.
이 시기 브리트니 머피는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주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소녀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좀 더 복잡하고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스펀>(2002)에서 미키 루크와 공연하며 마약 중독자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당시 연인이었던 애쉬튼 커쳐와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2002)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찍기도 했다. <업타운 걸스>(2003)나 <리틀 블랙 북>(2004) 같은 가벼운 작품이 계속 이어지나 싶었지만, <씬 시티>(2005)에선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목소리 연기에도 뛰어났던 그녀는 폭스TV의 장수 애니메이션인 <킹 오브 더 힐>에서 미용실 주인 루앤 역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굿보이>(2003) <해피 피트> 등에서도 목소리 연기를 선보였다.
애쉬튼 커처, 제프 콰티네츠, 조 마칼루소 등과 연인 관계였던 머피는 2007년 작가인 사이먼 몬잭과 결혼했지만, 아직 신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시기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쇼 피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왔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난 항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다니며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집시들처럼 말이다." 개봉을 기다리는 세 편의 영화가 있지만, 그 이후엔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없게 된 지금. 있을 땐 몰랐지만 막상 떠나 버리니, 그녀의 공백이 의외로 크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지난 12월 20일 심장마비로 이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