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황봉학
손 한번 맞닿은 죄로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하여
송두리째 나의 전부를 당신에게 걸었습니다
이제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과 나는
한뿌리 한줄기 한잎사귀로 숨을 쉬는
연리지입니다
단지 입술 한번 맞닿은 죄로
나의 가슴 전부를 당신으로 채워버려
당신 아닌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몸도 마음도 당신과 하나가 되어
당신에게만 나의 마음을 주는
연리지입니다
이 몸 당신에게 주어버린 죄로
이제 한몸뚱어리가 되어
당신에게서 피를 받고
나 또한 당신에게 피를 나누어 주는
어느 한 몸 죽더라도
그 고통 함께 느끼는 연리지입니다
이 세상 따로 태어나
그 인연 어디에서 왔기에
두 몸이 함께 만나 한몸이 되었을까요
이 몸 살아가는 이유가 당신이라 하렵니다
당신의 체온으로 이 몸 살아간다 하렵니다
당신과 한몸으로 살아가는 이 행복
진정 아름답다 하렵니다
소줏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 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 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턱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은
빈 소줏병이었다
달빛을 깨물다 이원규
살다 보면 자근자근 달빛을 깨물고 싶은 날들이 있다
밤마다 어머니는 이빨 빠진 합죽이었다
양산골 도탄재 너머 지금은 문경석탄박물관
연개소문 촬영지가 된 은성광업소
육식공룡의 화석 같은 폐석 더미에서
버린 탄을 훔치던 수절 삼십 오 년의 어머니
마대자루 한가득 괴탄을 짊어지고
날마다 도둑년이 되어 십 리 도탄재를 넘으며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청상의 어금니가 폐광 동바리처럼 무너졌다
하루 한 자루에 삼천 원
막내 아들의 일 년 치 등록금이 되려면
대봉산 위로 떠오르는 저놈의 보름달을
남몰래 열 두 번은 꼭꼭 씹어 삼켜야만 했다
봉창 아래 머리맡의 흰 사발
늦은 밤의 어머니가 틀니를 빼 놓고
해소 천식의 곤한 잠에 빠지면
맑은 물속의 환한 틀니가 희푸른 달빛을 깨물고
어머니는 밤새 그 달빛을 되새김질하는
오물오물 이빨 빠진 합죽이가 되었다
어느새 나 또한 죽은 아버지 나이를 넘기며
씹을 만큼 다 씹은 뒤에
아니, 차마 마저 씹지 못하고
할 만큼 다 말한 뒤에 아니, 차마 다 못하고
그예 들어설 나의 틀니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어머니 틀니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장례식 날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털신이며 속옷이며 함께 불에 타다 말았을까
지금도 무덤 속 앙다문 입 속에 있을까
누구는 죽은 이의 옷을 입고 사흘을 울었다는데
동짓달 열 여드렛날 밤의 지리산
고향의 무덤을 향해 한 사발 녹차를 올리는
열 한 번째 제삿날 밤이 되어서야 보았다
기우는 달의 한 쪽을 꽉 깨물고 있는, 어머니의 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