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세상] 긴급한 녹색 인양
- 전희식 | 농부·‘똥꽃’ 저자
긴급한 녹색 인양
전희식(농부. ‘아름다운 후퇴’저자)
얼마 전 뒷산에 올랐다가 저 멀리 새로 생긴 저수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이 뒷산이지 내가 사는 곳이 해발 600미터가 넘는지라 당시에 올라 간 산 높이는 1000미터쯤 되는 덕유산 줄기였다.
몇 달 공사를 해도 쉽지 않을 저수지가 단숨에 저리 생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저수지가 아니고 비닐하우스 단지였던 것이다. 한가로이 떠가는 흰 구름을 머리에 이고 은빛 반사체로 변신한 비닐하우스가 저수지 표면처럼 보였던 것이다. 줄어드는 건 땅이요 느는 건 비닐이다. 비닐하우스. 대지의 숨구멍을 막는 흉기다.
들녘의 흐릿한 연두를 서서히 파랗게 바꾸어 내던 봄비의 노력도 무색하게 이번에는 시커먼 비닐이 대지의 숨통을 틀어막는다. 감자밭이 그렇고 고추밭이 그렇다. 새싹이 돋는 나뭇가지를 검은 휘장이 감고 있다. 이렇게 바람에 날리다가 깃발처럼 나부끼는 비닐조각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여기저기서 사정없이 풍기는 돼지똥냄새나 소똥냄새. 닭똥냄새는 또 어떤가. 한적하다 싶은 시골의 골짜기는 영락없이 축사가 들어 서 있다. 녹색의 파괴다.
야산이 포클레인 삽날에 뭉개지고 인삼목이 박힌다. 시커먼 차양 막이 그 위를 덮는다. 농지가 올해도 1만7천 헥타르가 줄 것이라고 한다. 녹색이 쫓겨나고 회색 시멘트가 점령하는 것이다. 쫓겨나는 건 ‘문명이 앗아가는 지구의 살갗(데이비드 몽고메리 저. 삼천리. 2010)’들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은 옛말이다. 오수관이 연결되지 않은 시골의 수세식화장실은 정화조 청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도랑으로 흐른다. 축산폐수는 소낙비 오는 날 깜깜한 밤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고 하수종말처리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농장 위 허공은 고압선이 가로지르고 사는 집 앞으로는 고속도로가 시야를 막는다. 녹색의 침몰이다. 녹색의 종언이다.
그래서다. 자연재배, 친환경 재배 농부들은 갈수록 고달프다. 지구를 녹색으로 치장하는 이들의 삶이 여윌까봐 조마조마하다.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군수건 군의원이건 도지사건 정당의 차이를 불문하고 똑같이 발전과 개발과 성장을 외친다. 유권자는 마을을 찾는 후보자를 향해 길 내 달라. 뭘 지어 달라. 허가 해 달라 끝없이 민원을 쏟아낸다. 만물이 녹색으로 소생하는 계절의 여왕 5월에 새삼 확인하는 녹색의 침몰 맞다.
건강한 자연뿐 아니라 순리와 원칙과 상생과 인본과 순환과 헌신과 호혜가 녹색이라면,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도 결국은 녹색의 침몰이다. 녹색이 밀려 난 자리에 돈과 권력이 들어섰기에 일어난 사고 아닐까? 녹색의 파괴는 그 행위자만 징치되는 건 아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재앙을 만난다. 세월호의 천진난만한 우리의 아이들처럼. 사랑의 결과로 태어 날 우리의 후손들처럼.
먹을거리가 오염되고 농지가 사라지고 공기와 물이 썩으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사랑을 잃는다. 다툼만 늘고 미움이 창궐한다. 욕심은 아무리 채워도 줄지 않고 도리어 부풀어 오르기만 한다. 폭발 할 때까지.
지난번 글에서 나는 감자를 사 달라고 했었다. 꼭 1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이곳 장수친환경영농조합의 재고 감자 5톤은 모두 팔려나갔다. 나는 녹색당과 한울연대라는 천도교단체와 채식연합과 여행자협동조합에 같은 글을 올렸었다. 내 글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공감의 손길들에 깜짝 놀랐다. 단숨에 재고 감자를 처리해서 놀란 것만은 아니다.
기적 같은 녹색의 긴급 인양에 놀란 것이다. 침몰하는 녹색의 회생에 놀랐다. 재고 감자를 향해 손을 내 민 사람들은 녹색을 인양하는 잠수부들이었다. 그들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는 진도 앞바다의 안타까운 주검과 선체를 인양하면서도 이번 사건의 근본처방으로서의 녹색 인양에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첫댓글 기고하신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 출마자들에게 부탄이라는 나라에 한번씩 다녀오고나서 공약을 만들라고 하고싶다.
인간의 행복이 우선인지 경제개발과 지역발전이 우선인지 그곳에가면 금방 답을 만들수 있을것이다.
왜 그들은 우리나라 70년대초 같은 경제상황 인데도 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게 정치의 최종목적 아닌가?
링거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는것을 수명이 늘었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산업 사회의 폐해 이제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농경사회에서 나타나지 않은 많은 병과 영양 불균형.
그래도 현대 사회가 좋다하니......
공감과 감동적인 말씀~~
건강하신 자연인이 장수에는 많으시네요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