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연락했더니 당장 응급실로 오라고 한 터였다. 그 말을 무시하고 교회로 왔기에 나빠질 일만 남은 것도 알고 있었다. 체온계를 꺼내 열을 쟀더니 38.4도였다.
‘오늘 진짜 가겠구나. 심장도 멎어가고 열도 나는데 119를 불러야 하나…. 아니야, 교회까지 왔는데 무슨 소리야….’
고개를 흔들며 차에서 내렸다. 예배당까지 힘겹게 걸어 들어갔다. 난방이 되지 않은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그렇게 바라던 대로 교회에서 진짜 죽겠구나.’
기뻐야 정상인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마음속 숨겨둔 죄 때문이었다.
사실 오랫동안 미워한 사람이 있었다. 그를 향한 미움이 올라올 때마다 회개했지만 여전히 그 감정이 올라오자,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 숨겨두고 모르는 척했다. 나는 착잡했다.
‘조금 있으면 주님을 만날 텐데…. 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갈 수는 없어.’
주님은 내가 옳고 그름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으면 항상 요한복음 13장 35절을 내미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 13:35
내가 미워하지 않는 데서 만족하려 하면 주님은 절대 응답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랑을 구하면 강하게 응답하시고 문제에서 건져주셨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은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며 속으로 외쳤다.
‘왜요? 저한테 어떤 기도를 받기 원하시는데요?
저도 회개해야 하는 거 알아요. 그런데 이번만 모른 척해주시면 안 돼요? 항상 순종했잖아요.더는 사랑하고 싶지 않고, 미워하고 싶어요. 하지만 조만간 주님을 만나면 엄청 후회하겠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이렇게 부족해요. 저는 절대 못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직접 제 마음을 바꿔주세요. 제 주인이시잖아요. 정말 용서하고 싶지 않지만… 용서하게 해주세요.’
한참을 기도하니 미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이내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해주실 줄 알았어요. 잠시 후에 뵐 텐데 죄책감 없이 주님 앞에 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사소한 일인데 놓지 않으려 해서 죄송해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부어지자 감사가 넘쳤다. 눈을 뜨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어느 순간 오한도 멈추고 심장 박동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몸 상태가 회복되었다. 차에 돌아와 열을 재니 36.9도였다. 내 중심을 굴복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셨다. 이 땅에서의 시간을 더 늘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는 그동안 이런 식으로 영적 전쟁을 해왔고, 주님이 응답해주셔서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저런 핑계로 타협점을 찾았다.
‘사람이기에 부족한 게 당연하지. 육의 싸움은 잘해도 영적 싸움은 좀 부족할 수 있어. 내 옛사람은 거짓과 비겁함을 그냥 못 넘기는 의로움을 장점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으니까 그 부분이 잘 고쳐지지 않을 수 있어….’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요한일서 4장 20절 말씀으로 설교를 하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라는 구절 앞에 멈추었다. 나는 지금껏 피해를 입으면 당연히 나 또한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하며 죄와 타협해왔다.
당시 내가 미워하던 사람은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하곤 했다.나는 그를 용서하고 싶지 않아서 주님께 모든 것을 떠넘기고는 맡겨드렸다고 착각했다.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셨는데, 바로 내 모습이었다. 더 이상 내 죄를 정당화하지 않고 과감히 끊어내겠다는 결단이 필요했다.
‘육신의 문제는 다 맡겨드리고 담대해질 수 있는데 인간관계에서의 영적 싸움에는 이렇게 연약하구나….’
빛 가운데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어둠 안이었다.
육신으로는 목숨 걸고 결단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에 굴복하지 않고 부족하다는 핑계로 의지를 들이지 않는 절름발이 신앙이었다.
‘성령님, 문제를 드러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령님이 제 마음을 찔리게 하시니 이제 결단하겠습니다. 저를 사랑으로 인도해주세요.’
복음은 실천해야 완성된다. 그 용기는 부활에서 비롯하고, 부활을 통해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무기임을 깨닫는다.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주님께 고백했다.
‘결단하고 나아갈 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문제의 크기 앞에 결단을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말씀을 내 수준이 아닌 주님의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눈감을 때까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지 않고 두 발로 똑바로 서서, 마음의 중심을 내어드리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아멘!’
-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천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