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p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다. 그 점에서는 삶보다 훨씬 나았다.
삶은 실패가 쌓일 뿐,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았으니까.
78p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 때문에 죄를 지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나 박탈감은 곧잘 자존감을 건드리고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참을성을 빼앗고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정의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89p
오기는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성장을 하라거나 자기 자신이 되라는 충고만큼 어리석은 게 없는데,
오기가 바로 그 잘못을 저질렀다.
오기가 얼마나 서툰 인간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아내에게 말이다.
173p
오기는 간병인에 이어 물리치료사를 잃었다.
잃은 게 그뿐인 것은 아니었다.
모두 잃게 될 줄도 모르는 채, 얼마나 오래전부터 인생에 헌신해 온 걸까.
180p
이 나이에도 사랑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게 생소했다.
스스로 젊다는 환상에 빠졌다.
사랑을 잃고 상처를 받았다는 게 그 증거엿다.
194p
몸이야말로 오기와 평생을 동행한 가장 친밀한 대상이었다.
정신이나 마음 같은 것은 그렇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9p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