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본부에서
5월 3일에 도다 조세이 제2대 회장의
취임식이 거행된다는 것을 알리는 엽서가
미야타의 집으로 도착한 때는 그 해 초월 하순경의 일이었다.
그 엽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드디어 도다 선생님이 학회의 회장으로 취임하시게 되었습니다.
기류의 여러분도 이 때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겠습니까.
새로운 출발의 굳은 결의를 안고서 도다 선생님의 슬하로 달려 와 주십시오."
미야타 야지로는 ‘정법회' 간부의 협의회 자리에서 이 엽서를 모두에게 보였다.
"이렇게 엽서가 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한 사람이 대답했다.
"똑같은 어서를 배견하고 똑같이 절복을 하고 있다.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는가."
도다의 회장 취임식에 참가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다는 기류로부터 회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도다는 학회 본부에서 간부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 도다와 함께 일어서지 않으면 생애 후회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연락을 해 주게"
기류에는 두 번, 세 번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기류에서의 회답은 없었다.
그리고 5월 3일, 도다의 회장 취임식을 맞이 했지만 결국 정법회'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채 끝났다.
미야타는 도다에게 반발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존경하고 감사도 하고 있었지만
광선유포의 사명을 자각한 도다의 옥중(獄中)의 경애도,
불의불칙(佛意佛勅)에 의한 창가학회 조직의 의미도 알지 못했다.
결국 진정한 '신심의 혈맥' 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법회'의 멤버들에게는
'우리 조직도 발전하였으므로 학회와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
굳이 학회에 들어가 도다에게 지도를
받을 필요는 조금도 없다' 는 교만함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 '정법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서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정종 사원의 신도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새 파벌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감정적인 대립으로까지 발전해 갔다.
회합은 함께 했지만 회합이 끝나면
서로 욕하고 뒤에서 서로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정법회'의 분위기는 어둡고 무기워져
갔다. 공덕의 체험도 사라졌다.
미야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어딘가 이상하다… .'
미야타는 신경을 너무 써 건강도 해치고 말았다.
그 무렵, 포목 판매를 하던 '정법회' 의
청년부장 데라다 미치오라는 청년이,
출장처인 센다이에서 학회의 센다이 지부총회가 있다는 것을 듣고 총회에 참석했다.
1954년 4월의 일이다.
데라마는 회합의 박력과 명랑함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법의 법리(法理)에 투철하며 대 확신이 넘치는 도다 조세이의 지도에 감동했다.
"학회는 굉장하다! '정법회' 와
전혀 다르다.
이것이 진정한 대성인 불법의 세계인가.
신심을 하려면 도다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는 기류로 돌아오자 '정법회' 회장인
미야타 야지로의 집을 방문하여 총회의 모습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 실은 요즘들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네.
이제서야 도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미를 겨우 알기 시작한 듯한 기분일세.
역시 광선유포는 도다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결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간단한 것은 아니었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미야타의 얼굴에는 깊은 고뇌가 어려있었다.
미야타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상의하여 학회에 입회하기로 했다.
이 무렵, 기류에도 차츰 학회원이 증가하고 있었다.
도다의 회장 취임 후, 75만 세대의 달성을 향해 전국에 절복의 파동이 넓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야타는 '정법회' 의 회장인 만큼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로만 그칠 수는 없었다.
미야타는 고뇌했다. 얼마 동안은 번민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정법회의 멤버들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진정한 신심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 미야타의 결론이었다.
그 해 여름, 미야타는 자택에 100명 정도의 '정법회' 멤버를 모아 자신의 결단을
알렸다.
"저는 학회를 따라가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신심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은
따라와 주십시오."
미야타 일행이 학회에 들어가려는 것을 알게 된 '정법회'의 부회장들은
절의 주지들과 이야기하여 새로운
모임의 결성에 착수,
멤버들이 학회로 가는 것을 기를 쓰고
저지하려 했다.
미야타 일행은 '배반자'가 되었다.
그러나 미야타는 학회에 입회, 최종적으로는 미야타를 따라서 100여 명 정도가 학회원으로 되었다.
미야타 야지로는 학회원으로서 착실하게 신심에 면려하기 시작했다.
그는 '학회에서 신심의 기초부터
배우자'고 결의했다.
학회에 입회하고 얼마 후,
총본산에 등산했을 때 미야타는 그 참도(參道)에서 도다 조세이를 만났다.
미야타는 거듭 통지를 받고도 도다의 회장 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자
도다를 볼 면목이 없었다.
죄송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도다는 그런 미야타를 한 마디도 책망하려 하지 않았다.
"미야타 군, 고생했네 …. 자네에 대해서는 이 도다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도다는 미야타의 어깨에 손을 얹어 그를 감쌌다.
"선생님… ."
미야타는 사나이 격정에 못 이겨 울었다. 도다의 팔은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미야타는 묵묵히 신심에
면려했다.
학회를 깊이 알게 되면서 미야타는
나날이 그 불가사의 함을 실감해 갔다.
그리고 전쟁 중, 군부 정부의 탄압을
두려워한 종문이 방법(謗法)의 소굴로
화해 가는 가운데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가 정법 정의(正法正義)를 지키다 순교했다는 사실의 중대함을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또 그 제자인 도다가 옥중에서 법화경을 신독(身讀)하고
지용의 보살의 사명을 깨달아 오로지
홀로, 광선유포에 일어섰다는 사실의 위대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미야타는 창가학회야말로 니치렌 대성인의 '신심의 혈맥을 계승하는, 유일한 불의불칙의 단체임을 생명으로 느껴갔다.
또한 도다의 옥중오달(獄中悟達)에서 나오는 불석신명(不惜身命)의 실천과
대확신이 학회 정신의 기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금강불괴의 단결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 그런 도다가 있기에 비로소 광선유포가 성취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후의 이야기이지만
종문의 일부 승려가 학회에 대해 불합리한 공격을 계속했던 1978 - 1979년경,
미야타는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마음이 흔들리는 멤버들의 집을 방문, 열심히 학회의 정의를 호소해 갔다.
미야타에게는 일찍이 자신이 저지르고 말았던 과오를 절대로 동지들이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남보다 갑절 강한 마음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여튼 이러한 경위에서 기류는 초창기에 도다가 지도에 힘을 기울인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선유포는 우여 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기류에 대발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55년경부터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날, 대망하던 기류 지부가 탄생한 것이다.
신 인간혁명 제4권 제2장 개선(凱旋)
(93-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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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어서를 배견하고 똑같이 절복을 하고 있다.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는가."-----> 신인간혁명에서
이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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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3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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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