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寶文山 457.6m)은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외 11개동 일원에 있으며
1965년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시루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이곳에 보물이 묻혀 있다하여
보물산이라 부르다가 현재의 보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보문산에는 9354m2(3000평 규모)에 달하는 지하벙커가 있다.
향토사단인 32사단이 사용하던 시설로 대전 중구청에서 관리한다.
군사보호시설로 30년 동안 사용된 이 벙커에는
통제부, 통합통제실 등 20여개의 방이 있었다.
이 산에는 보문산성과 보문사지, 야외음악당, 전망대 등이 있으며,
시루봉 아래 고촉사에는 미륵상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다.
또한 여러 곳에 등산로와 약수터가 골짝마다 있다.
특히 보문산성은 둘레가 280m인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9호로 지난 1992년 12월
백제시대 산성 중 전국 최초로 복원되었습니다.
보문산의 전설
첫째 “옛날 지금의 보문산 기슭에 아들 오형제를
둔 한 농부가 살았는데 장성한 아들들은 각각 자기 뜻대로
직업을 달리하여 분가를 하게 되자, 늙어 노인이 되어 혼자
살아가던 중, 몹시 가뭄이 심하여 연못에도 한 방울의 물이
없이 마르게 되었는데, 연못 주변을 지나가는데
두꺼비 한 마리가 농부 앞에 나타났습니다.
농부는 두꺼비에게 물을 떠다 주었더니
두꺼비는 물을 마신 뒤에 어디론지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해도 가뭄이 계속되었는데,
연못에 나가니 두꺼비 한마리가 접시를 가지 고 와서
농부 앞에 놓고 사라졌습니다.
집에 돌아 온 농부는 그 접시에 담뱃재를 떨었는데
나중에 보니 접시에 재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이상한 조화라고 생각한 농부는 동전을 놓아 보았습니다.
이튿날 보니 동전이 또 한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큰 부자가 되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아들들이
앞 다투어 접시에 탐을 내 게 되었습니다.
아들들의 욕심과 시기를 염려한 농부는
그 접시를 몰래 뒷산에다 묻고 돌아오다가
숨이 차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그 접시를 찾았으나
영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물이 묻혔다하여 보물산”이라 하였습니다.
둘째 “옛날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착한
나무꾼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그 소문이
이웃 마을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꾼에게는 술만 먹고 주정을 일삼는
형이 하나 있어 부모와 동생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그러한 어느날
나무꾼은 나무를 한짐 해가지고 내려오는 길에
조그마한 옹달샘 옆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때 샘 옆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무꾼은 재빨리 물고기를 샘물 속에 넣어 주게 되었는데
물고기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
까불까불 거리면서 사라졌습니다.
조금 후에 눈을 돌려보니 물고기가 놓여 있던 곳에
하나의 주머니가 놓여 있었습니다.
주머니를 집어보니 그곳에 “은혜를 갚는 주머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신기해서 나무꾼은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 동전 하나를 넣었더니,
순식간에 주머니에 동전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무꾼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 형이 그 보물주머니를 빼앗을 욕심으로
동생에게 주머니를 한번만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착한 동생이 주머니를 형에게 보여주자
형은 주머니를 가지고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동생이 알아차리고 형을 쫓아 주머니를 도로 찾으려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주머니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형이 주머니를 발로 짓밟는 중에 그 주머니 속에
흙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러자 주머니에서 걷잡을 수 없이
흙이 계속 쏟아져 나와 쌓이고 쌓이게 되었으며 그렇게 쌓인
흙이 큰 산을 이루니 산 속에 보물주머니가 묻혀 있다하여
보물산”이라 하였고, 그후 보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셋째 “옛날 한 대사가 소제동 방죽을 지나가던 중 날이 저물었는데
갑자기 논두렁에서 “우리 백성이 3년 가뭄으로 다 죽겠으니
우리 성을 살려주시오”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용궁의 왕이었습니다.
이에 대사는 물고기를 모아 가뭄으로부터 구해줬습니다.
그러자 용궁의 왕이 그 은혜로 복조리 하나를 대사에게 주었습니다.
대사는 복조리를 망태에 다 간직하고 보문산 근처에까지 오니
날이 어두워 불빛이 나는 집을 찾아가니 단칸방에 일곱 자식을
데리고 사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부인이 대사의 저녁으로 진수성찬을 차렸으나 아이들에게는
시래기죽을 주었습니다, 부인의 간청으로 저녁을 먹고 아랫목에서
하룻밤을 잘 지낸 대사는 이튿날 부인에게 복조리를 건네주었습니다.
부인이 복조리에 쌀과 엽전을 넣었더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쌀과 돈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큰 부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복조리의 신통함을 알게 된 자식들이
그 복조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하였습니다.
부인은 복조리를 강변 모래에 묻었습니다.
그때 복조리에 모래가 들어가자
다시 모래가 쏟아져 나와 점점 늘어가 더니
큰 산을 이루었는데 그래하여 이 산을 보물산”이라 하였고,
그후 보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보문산 야외음악당
1961년 군사혁명 직후 당시의
대전시장 배무남(裵武男) 육군대령은 헐벗은
보문산을 산림녹화할 목적으로 당시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나무심기를 하였습니다.
주로 오리목나무와 아카시아 등 속성수를 심도록 하면서
이곳을 공원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사업이 중구 대사동의 보문산 중턱에 세워진
지금의 야외음악당 건립과 전망대 건립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