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의 혁명
by Dr. Joshua M. Moritz July 30, 2023
신학자요, 천문학자요, 수학자요, 언어학자요, 의사요, 변호사요, 외교관이요, 예술가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당대 최고로 박식한 사람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교회는 살해당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게 된 동기는 “神의 영광”을 더 잘 반영하는 우주 모델을 구축하는 데 있었다.
1400년대 유럽의 천문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은 2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지리학자이며 천문학자였던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을 믿어왔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은 BC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즉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태양과 달과 별들이 지구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인다는 주장을 좀 더 수학적으로 개선한 모델이었을 뿐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들이 직선형이 아닌 나선형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교황 바오로 3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은 “괴물”이며, 우주는 가장 체계적인 匠人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신학적으로, 수학적으로, 물리적으로 천문학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태양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1514년에 지구는 하루에 한 번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로 공전한다고 주장했다.
1536년 11월 1일 니콜라스 폰 쇤베르크 추기경은 코페르니쿠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이 지구가 움직인다고 가르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학식 있는 선생님, 과학자들에게 당신의 발견을 말하십시오”
코페르니쿠스가 두려워했던 대상은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당시 과학자들이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염려한 그는 25년 동안 발표하지 못했다. “움직이는 지구”라는 개념이 당시의 물리학과 상식에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1500년대 후반에 가서야 코페르니쿠스라는 이름이 천문학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p.s.
저자의 글을 요약,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