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전 우리조상의 ‘힘찬 삶’ 생생 중국과 구별되는 우리 독자성 고려 본기는 삼국 주요 역사적 사실 기술 국가 충성한 인물 전기 열전도 함께 정치안정·민심수습 겨냥한 저술
신라를 가장 높이 평가한 까닭은?평강공주,설씨녀,도미처.이들의 공통점은? 삼국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이라는 점.또 하나는 불합리한 세계의 모순 앞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며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한 인물들이라는 점.그리고 ‘삼국사기’라는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다는 점.
평강공주는 국왕의 식언에 항변하며 궁궐을 뛰쳐나왔고,도미처는 국왕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남편에 대한 지조를 지켰고,설씨녀는 약혼자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명을 어겼다.
우리는 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신의와 정절을 중시했던 삼국시대의 사회 풍조를 짐작할 수도 있으며 혹은 남녀간에 신의를 지키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주체적 여성상(인간상)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사실 ‘삼국사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관심을 더 끄는 것은 어느 왕이 몇 년에 즉위했고,어느 해에 누구를 어떤 관직에 임명하였는가보다 그 시대의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 엮어내는 구체적 삶의 모습들이다.그리고 그들 각각의 삶을 재구성하고,그를 통해 당대의 사회와 생활상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예컨대 신라 때의 대문장가인 강수가 부모의 허락 없이 신분이 미천한 대장장이집 딸과 사랑했다는 이야기나,김유신의 아버지가 길을 가다 한 처녀와 눈이 맞아 중매도 없이 야합을 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옛날의 남녀교제 하면 흔히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여 엄격히 통제되고 금기시만 되었다고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물론 대부분의 결혼에서 부모나 집안의 의사가 일차적으로 고려되었겠지만,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청춘남녀의 만남과 사랑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뤄졌다.
또한 평강공주,설씨녀,도미처의 이야기나 신라 사람들이 여왕을 세 명씩이나 뒀던 것 등에서 우리는 삼국시대 여성의 활동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활발하였음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삼국사기’에 실려 전하는 여러 인물을 접하면서 고대사회 특유의 건강성과 역동성을 간직한 그 옛날을 떠올릴 수 있다.이것이 이 책을 읽는 이유의 하나다.
앞서 든 이야기들은 69명의 개인 전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열전에 실려 있다.‘삼국사기’는 기전체의 역사서술 방식에 따라 크게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기는 연도별로 삼국의 주요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것으로,천재지변(자연의 변화)과 정치·전쟁·외교(인간의 활동)의 네 부분으로 세분할 수 있다.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중국과 구별되는 자국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고려해 삼국의 역사를 본기에 당당히 편입했다는 점이다.
신라의 풍속을 설명하면서 “무릇 외국과는 풍속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의 풍속으로 책망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라는 주장도 이를 뒷받침한다.또한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등의 왕명이나 이벌찬 등의 고유 관직명을 왕이나 중국식 명칭으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썼던 것 또한 이와 관련된다.
열전에는 총 69명의 개인 전기를 기술해 놓고 있다.김유신 계백 관창 을지문덕 등 삼국통일 전쟁기에 활약하거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인물들의 전기가 큰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다. 김부식 등에 의해 1145년(고려 인종 23년)에 편찬된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다.이 책은 국내외의 자료를 최대한 수집,상세히 복원해 놓음으로써 ‘삼국유사’와 함께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정치 문화 경제 생활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자료다.
그리고 이 책은 일연 개인에 의해 찬술된 사찬 사서인 ‘삼국유사’와 달리 국왕의 명에 의해 찬술된 관찬 사서다.관찬 사서로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된 것이었던 만큼 당시의 국내외적 환경 변화가 이 책의 편찬 배경으로 지적될 수 있다. 묘청의 난 이후 분열된 민심을 수습하여 국왕 중심의 도덕적 관료정치를 강화하는 한편,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하는 금(金)과의 평화적인 외교 정치를 통해 안정된 기반을 확보하자는 데 그 주된 목적이 있었다.
이같은 편찬 목적은 대당(對唐) 외교의 성공과 국민적 단합을 통해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역사를 당나라와 맞서다 패망한 고구려의 역사보다 높이 평가하는 서술 시각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열전 10권 중에서 김유신 한 사람만을 위해 3권을 할당하거나 고구려와 백제인을 매우 소략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자료상의 객관적 여건 때문이었을까.69명의 개인 전기 가운데 많은 부분이 국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목숨을 바친 사람으로 이뤄진 것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자기 희생과 의무를 보여줌으로써 국왕을 정점으로 귀족과 백성을 하나로 연계시키려는 편찬자들의 의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삼국사기’뿐만 아니라 어떤 역사서를 읽을 때 그것의 편찬 배경이나 목적,그리고 사실(史實)의 취사선택과 평가에 투영된 역사인식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이것이 과거 역사 사실을 기록해 놓은 책을 읽는 이유의 또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