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번째 가을 / 최승자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며 한 무리의 엉겅퀴들이 산비탈을 내려온다. 봄의 내세를 믿자며, 한 덩어리의 진보랏빛 울음으로 뒤엉켜, 그들은 병든 저희의 몸을 으슥한 낙엽더미 속에 눕힌다. 그들의 몸뚱어리 위에 곧 눈의 흰 이불이 겹겹이 덮이고, 그러나 돌아오는 봄의 천국에 그들은 깨어나 합류하지 못하리라. 그 겨울잠이 마지막 잠일 것이므로, 오는 봄을 분양받기 위해 또 다른 엉겅퀴들이 저 내세까지 줄지어 서 있으므로.
- 시집 『연인들』 (문학동네, 2022) -----------------------------
* 최승자 시인 1952년 충청남도 연기 출생. 수도여고 및 고려대학교 독문과 졸업 1979년 계간 <문학과 지성>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연인들』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2010년 대산문학상 수상 ****************************************************************************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감각하고야 마는 계절은 가을이 아닐까. 참으로 수고했다는 듯이 모든 것이 찬란한 빛으로 인사를 건네서다.
눈을 덮고 돌아오지 못할 흰 잠 속으로 향하기 위해 가을은 오고, 깨어나지 못한 영속의 내생으로 잠들어버릴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질서가 또다시 흘러가고 있다. 천체가 뒤바뀌는 지금 이 순간의 날씨는 우주가 발송한 거대한 편지 같다. 편지처럼 낙엽을 두 손 위에 올려본다. - 김유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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