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은 어두웠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정신을 잃을만큼 맞아본 적은 없었지만.
피를 본 적도 한번도 없었지만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억울한 일을 당한 것도 내가 아닌 내 친구였지만
...좀 어두웠다.
그건 우리 할머니 때문인지도 모른다....
포르노 바이러스 앨범을 두고 사춘기 시절의 정신적 갈등을 그린...
운운하는 평을 본 기억이 있는 듯 하다.
그런 건가?
아무튼.
난 그 때 내 나름대로 어두웠다.
아직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까닭은 내가 아직 스물 몇살밖에 안된 나이라서 일까.
아니면 난 원래 어둠을 즐기는 이유일까.
..좀 즐기기도 한다.
아니, 엄청 사랑한다.
내가 락을 듣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이다.
그 땐 듣는 음악은 불과 다섯 손가락을 넘이 않았지만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살았지.
그 때를 생각하면 한 가지 기억이 너무도 뚜렷하다.
밤 10시에 야자 끝나고 지친 몸으로 스쿨 버스에 오른다.
나는 혼자 구석의 창가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어두운 거리를 멍하니 주시하곤 했다.
항상 귀가 터질 정도로 볼륨을 크게 들었다.
차단하고 싶었다.
바깥과.
너무도 어둡고 더러워 보이는...
내 주위의 대다수 인간과 차단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소리와 시선을 차단한 채 창밖으로 거리를 내다보면.
더러운 회색 도시. 네온 사인들, 거칠어 보이는 인간들
그 풍경이 너무도 암담해서...
귓가에서는 마릴린 맨슨이
"Save yourself from death!"
극악스러운 샤우팅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릴린 맨슨이 미치도록 좋았다. 그가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그런 기억들.
교복을 입은 나는 겉으로는 공부 잘하는, 가난한 집의 다행스럽게도 착한 애-라고 평가되었지만
내 속은 지독히도 어둡고 파괴적인 녀석이었다.
주의의 어둠은 나자신이 더욱 더 깊은 어둠이 되게 했다.
나만큼 주위의 인식과 실제가 그토록 표리부동한 녀석도 또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표리부동의 상황을 어느정도 완화시켰다. 이젠 누구나 내가 괴물같은 놈이라는 걸 알아준다. 기쁘다.
단, 우리 할머니는 제외하고...)
음악을 고르는 기준은 굉장히 단순했다.
시끄러울 것.
진절넌더리가 나게 파괴적이고 사악할 것.
그래서 스메싱 펌킨즈나 너바나는 좋은줄 알면서도 잘 듣지 않았다.
롭 좀비는 기분이 좋을 때 듣는 신나는 음악이다.
난 음악을 잘 모른다.
기타 한번 만져본 적이 없고 공연에도 잘 안간다.
지방에 살아서기회가 없던 탓도 있지만, 길거리에서 펑크 밴드가 공연하는 걸 봐도 멀찌감치서 듣기나 하고 앞에 나가서 해드 뱅잉이라는지, 그런 건 안한다.
락이라...
혹은 락스피릿?
그런 것도 내겐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난 내가 진정한 락팬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안다.
공연에 가기보다는 라크리모사의 씨디를 사는게 더 좋다.
감상은 어두운 방안에서 나 혼자 그림을 그리며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내가 락을 듣는 이유는.
뮬론 그것이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표현해주는, 아니.
나와 주파수가 맞아떨어지는 어떤 것을 내 곁에 두고 싶은 것이다.
어둡고 어두운..기괴한. 끔직한...혹은 어처구니 없는.
검은 색들이 너무 좋다.
대학에 와서는.
파괴라는 부분은 좀 약해졌다..
때려부수고 싶은 것들에게서 떠나온 까닭이 클 것이다.
그것들을 떠나오고 나니 또다른 침을 뱉어주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고 말았지만,
이젠 그것들과 얼굴을 맞대지 않더라도 사는게 가능하다.
비겁해진건지도.
아니, 난 항상 비겁했던가.
정면으로 화를 내본적이 언제였던가...거의 항상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으면서.
한마디로 삐딱선을 탄 놈
레이니 선을 듣기 시작한 것은 스물살 때부터이다.
이거 또~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음악이었다.
그러니까 여기 와서 이런 걸 끄적거리고 있다.
아무튼.
어둡다는 것에 대해.
내가 음침한 놈이고 별로 기민하지도 못한게 항상 세상사에 안티적이라는 사실은 재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둡다는 것은 항상 내겐 따뜻하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난 친구도 있고, "나름대로" 행복하다.
내가 이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내 주위 사람들은 나를 꺼리기도 하지만.
난 나의 이상함과 어두움에 충분히 만족한다.
안락하다는 의미는 아닌데..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꼬일대로 꼬여 천상천하 유아독존 염세주의로 똘똘 뭉친 게 무조건 좋다는 뜻도 아니다.
꼬인 것은 좋지 않다,
나는 스스로 내가 고약하게 꼬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한낱 어둠 속에서 땅바닥에 질질 그림이나 그리며 자학하는 악마새끼가 아니라는 점에 안도한다.
대개 나를 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판단하는 이미지는 바로 위와 같은 초라한 악마의 모습이다.
불벼락이라고 내는 권능이라도 가졌다면 차라리 두럽기나 할테지만, 그리 강해보이지도 않는 벌레같은 인생.
--으로 보는 것이다.
내가 무력하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나를 그런 식으로 속단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엔
"상대방이 자신과 똑같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고 안도하는" 것으로 밖에 안보인다.
뭘까. 이 사람들은,
대체 무슨 낙으로 인생을 사는거지...
장황한 글이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왜 빛만이 옮은 것이고 어둠은 타파되어야만 할 대상이라는 것이지"가 이해가 안간다.
둘을 떼어 놓는다는 것은 궂이 음양오행을 운운하지 않아도 기정사실일터.
빛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어둠 속을 사는 사람이 있는거.
어둠 속을 산다는 것은 불행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조폭이나 행려병자 같은 인생을 말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매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지금 이 상태가 좋은데-진짜 건강한 의미에서-
나를 "관심과 사랑이라는 이유로"끄러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왜?
눈물겨운 노력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근엄한 얼굴의 훈계, 지나쳐가는 참견, 잔소리일 뿐.
그런게 지겹다.
나자신의 미력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검은색이 준 아름다움이었다.
검은색이 얼마나 아름다운 색깔일 수 있을지 모두 잊은 걸까.
검은 것은 진정으로 아름답다.
*검은색=
마릴린 맨슨, 레이니선, 람슈타인, 롭 좀비, 만화 프리스트..이것들은 모두 가게에서 돈 주고 살수 있는 검은색들.
TV의 사건 사망 뉴스, 폭력, 악마, 마녀사냥, 질병..
혹은 싸늘한 눈초리. 죽어가는 고양이. 예쁜 여자.......바다. 심해어.
...검은 것들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더라.
아름다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