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의 政黨政治와 韓國의 學生運動의 닮은 꼴
한나라당이 거동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의 숫자가 적고 그 나마도 한나라당을 도와주기는 커녕 한나라당에 교육시키려 하는 입장이기에, 야당 한나라당이 과거 ‘김대중 야당’의 비겁성의 거꾸로 선 모습을 보이는 바에 이해가 된다. 쉽게 말해서, 이제사 다 드러난 ‘김대중 前대통령’의 색깔이 과거에 절대로 지지할 가능성이 없었던 이념에 엄청나게 지지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지지층은 그것을 욕하면서 ‘한계성’이라고 하면서도 선거 때면 어김없이 김대중 野黨을 98%로 지지해줬다. ‘선거국면’이 아닌 순간에 맞승부에 강공전략으로 일관한 野黨은 최병렬 대표 때의 한나라당 밖에 없다. 과거, ‘김대중 야당’의 행보처럼 여당의 정치 윤곽을 인정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김대중 野黨은 자유주의 경제발전에 발목을 많이 잡았다. 마찬가지로, 외형상 야당 한나라당은 열린당의 정책에 순응하는 것 같지만, 한나라당 골수 지지자들의 반응을 받아서 열린당에 힘차게 저항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영원히 ‘군법’에 의하여 ‘빨갱이’를 요절낼 수 있는 권력의 소지인 듯하지만, 사실상은 역대 野黨의 특성을 많이 가지는 ‘한계성’속에서의 ‘자유주의’투쟁을 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특히, 민주당 구파와 민주당 신파 나눠서 싸우는 것을 연상시키는 쪼개진 한나라당 면모는 역대 야당의 한계성을 가진 바에서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역대 野黨의 한계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1) 전통 지지자를 철저히 섬긴다 (2) 여당을 옹호하는 매스미디어의 성곽에 정면 승부를 최대한 피한다. 野黨 김영삼 당 지지자였으나 ‘3당 합당’이후로 한나라당 지지자로 편입된 노인들의 기억은, 좋은 기억들만 골라서 채색된 것이다. 좋은 기억만 골라서 채색되는 것은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의 과거 회상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특히, 야당 한나라당에 김영삼 야당 지지 노인들이 요구하는 기대치의 모델인, 1979년 박대통령 시해 사건 직전의 김영삼 야당 대표의 주도적 성격은 ‘제한적’ ‘국지적’인 면일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사회에서 ‘요순시대’그리워하는 어법 비슷하게, 김영삼 야당대표 주도적으로 박정희대통령체제를 겨누는 ‘활극’적 요소에 마취된 노인들은 깰 줄을 모른다.
야당대표가 매스미디어에 의해서 포위된 여당과 ‘제한적 국지적 전투’로서 골수지지자를 섬기는 정치를 했던 이유는, 매스미디어에 포위된 여당에 의해서 세뇌된 ‘청춘’의 예측 못할 반응이 나오는 경우를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은 집권 여당에서도 사실 비슷하게 존재한다. 한명숙총리와 노무현대통령의 평택 사건에서 다른 입장 택하기는, 의도적으로 ‘책임분배’를 한 것이다. 집권 여당은 늘 최고의 ‘無誤謬’를 위해서, 비난의 화살받이용 사람을 내세웠다. 평택 시위대에 대하여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라고 하고 싶은 좌파정권이, 노무현대통령과 한명숙 총리의 다른 선택을 통해서 노무현대통령에 가야 될 화살을 한명숙총리에 가게 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집권 여당은 정국을 잡을 수 있는 ‘정당성’의 붕괴를 가장 두려워 한다. 따라서, 야당이 시시때때로 속뜻과 전혀 상관없이 여당에 온순함과 비교되게, 여당은 정치 최고 지도자의 안전을 위해서 많은 총알받이용 ‘도중하차정치인’을 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한국의 학생운동도 ‘책임정치’를 했다고 볼 수 없다. 전대협 한총련 학생운동이들에 부모세대들이 교육하는 것은 딱 하나이다. ‘몰랐다’라고 잡아 떼라는 것이다. 학생운동권으로서 ‘전위’로서 왕자병을 배운 이들에겐 모르는 일이었겠지만, 사회적 책임주체라고 말할 수 없는 ‘취업 이전’의 시간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마냥 묻기 어려운 상황을 전제로 ‘감성적 동정어법’을 일으키는 목적이었다는 데 부정할 사람이 많지 않다.
결국, 집권 여당의 무책임성과 야당의 무책임성이 ‘학생운동’의 무책임성을 이용해왔다고 봐야 된다. 학생운동이 무조건 ‘선량’이라고 찍어놓고 시작하는 이유는, ‘취업 이전’의 사회적 책임을 마냥 묻기 어려운 학생신분을 이용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문민정부 이후에 그러한 동정표가 확실히 사라진 것은 맞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과거의 관성은 남아 있다.
野黨 한나라당이 행동하지 않는다?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박정희대통령 시해 사건 근처의 김영삼 야당의 주도성과 최병렬대표 체제의 맞공격을 논외로 하면, 박근혜대표의 한나라당은 공세력이 강한 야당 쪽에 속한다. 김영삼 야당의 주도성은 워낙 노인들 기억의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채색되어 객관성이 중대하게 결여되었고, 최병렬대표체제의 맞공격은 어떻게 야당이 과거 야당 스타일을 벗어날 때 피해를 겪나의 증명으로 드러났다.
김영삼 야당의 주도성이 가능하게 될 사회적 토대는 ‘대학가’에서의 ‘대학생의 책임의식’일 것이다. 다수가 먹고 살기에 바빠서 진리에 익숙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깨끗하게 나가려는 책임인식이다. 결국은 그러한 책임인식 자체가 ‘학생시절’로 ‘봐도’ 하는 야당의 목소리에 묻혀서 여당을 쓰러뜨리는 결속력으로 자리한 것이다.
학생운동의 이러한 시스템이 붕괴된 경우가 레닌의 ‘직업적 혁명가론’의 차용이다. 박홍총장이 대학가에서 졸업생들의 대학운동권 조직화의 끈을 떼고자, 문민정부 초기에 일명 ‘주사파사건’을 일으켰던 점은 많은 이들이 알 부분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직업’이 될 수가 없는 ‘혁명’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 자체에서, 사회의 분란이 일어날 수록 이익을 먹고 산다는 비난이 많았었다.
‘학도호국단’이 붕괴되었음과 동시에 ‘문민정부’를 지지해줬던 지식인 절대다수가 ‘열린당’으로 줄을 옮겨 탔다. [조선일보]같은 보수 언론은 야당적 한계성 못지 않은 한계성을 위장하고자, ‘한나라당’에 들볶기 위한 들볶기의 공격을 한다.
한국정치에는 ‘사람 카리스마’의 힘으로 돌아가는 면이면서도, 늘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간주되는 차원의 ‘젊은 세력’을 끌어대는 입장이 있었다. 젊은이를 우파가 끌어댈 수 없음은 보수세력이 내세우는 지식컨텐츠가 양과 질에서 별로 좋지 못한 점에 있다.
아마도, 개연적으로 있을지 모르는 ‘행동주의’를 가장 절망하게 하는 바는 ‘역사’를 믿으라는 입장에서의 젊은 우파 문화 수용층의 결여일 것이다. 그 우파 문화는 한나라당 소속의 김영삼계보를 편든다는 이유로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형식 모두가 우파적인 것을 말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악셀 호네트도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인정투쟁>부분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행동주의의 욕망을 저하시키는 부분은 국민 대다수의 미래에 반드시 이 행동이 기억된다는 약속보다, 어떻게 적당히 다른 쪽에 책임 떠넘기고서 또다시 원점 그대로 반복하느냐는 꿍꿍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