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침묵으로부터 / 김정숙
한걸음에 온 듯 별안간 민들레꽃이 우리에게 온다 깊은 곳에서 서두르지 않은 작은 소리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기까지 아무 내색 없는 어둠을 열고 환한 웃음으로 온다 돌 틈을 비집는 날숨 소리 꽃이 피는 소리로 온다
- 시집 『구석을 보는 사람』 (아무책방, 2024.11) ----------------------------------
* 김정숙 시인 경북 김천 출생. 2020년 「숲의 잠상」으로 직지신인문학상 수상 시집 『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꿇는다』 『구석을 보는 사람』
********************************************************************************** 민들레와 관련한 많은 시를 읽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민들레 관련 시는 이것입니다. ‘누가 가져다 놨을까 이 언덕에 / 이렇게도 깜찍한 금단추 하나 / 민들레 민들레 이 언덕에 / 혼자 반짝이고 있다’ 누가 쓴 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대학교 1학년 된 둘째 딸이 유치원의 발표회에서 암기해서 낭송한 시이기 때문입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민들레와 관련된 여러 시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저도 민들레와 관련된 시가 있었습니다. 제목이 「민들레꽃 같은」인데요, 시에 이런 문장이 있네요. ‘나도 그녀에게 / 민들레꽃처럼 반짝이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라고요. 시에서 민들레꽃의 비유는 그녀의 순진하고 환한 웃음을 상징합니다.
김정숙 시인의 민들레꽃은 서두르지 않아도 시나브로 한걸음에 온 듯 별안간 다가오는 꽃입니다. 아무 내색도 없이 돌 틈을 비집고, 어둠까지 열고 환한 웃음으로 오는 꽃입니다. 이렇듯 나에게 다가오는 민들레 꽃을 보면서, 이런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시의 민들레 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화자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따뜻한 침묵으로부터’라고요. 모호한 표현임이 분명하지만,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민들레 꽃뿐만이 아니라 모든 꽃이 출발하는 지점이 아니냐고 생각해 봅니다.
이와 관련된 얘기를 조금 더 해 드리면, 시인은 어울리지 않은 두 단어를 연결하여 만든 생경한 의미의 문장을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문장이 생경하다는 느낌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며, 독자가 그것을 하나의 의미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이거나 논리적인 인정까지는 도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인정이면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일상언어’에서는 바람은 불고, 비는 (하늘에서) 내리며, 소리는 (귀에) 들립니다. 하지만 ‘시의 언어’에서는 바람은 (갈대처럼) 흔들리며, 비는 (강아지처럼) 짖고, 소리는 (사람처럼) 뛰어갈 수도 있습니다. 시의 언어를 논리적으로만 바라본다면, 비문이라고 얘기해도 무방하겠지만, 이러한 문장이 용인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시어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보통의 문장에서 시의 언어를 남발하여 사용한다면, ‘시적이다’라고 인정받기보다, ‘너는 시나 써라’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언어의 선택은 때와 상황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강 시인의 문장이 ‘시적이다’라고 칭송받는 이유나 한정원 작가의 산문이 사랑받는 까닭도 소설과 산문이라는 문학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작가의 미덕 중 하나가 ‘때와 상황을 맞출 줄 아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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