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을 버티는 숨 / 이정희
강물이 마른 후에 보았다 물속에 반쯤 잠긴 바위들은 그 반쯤의 무게로 제자리를 버틴다 줄다리기를 하는 양쪽 사람들 있는 힘껏 줄을 당기지만 발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고정한다
버틴다, 몇 날을 버틴다 파도의 깨문 입술이 일그러지고 마지막 숨이 관통할 때까지 버틴다 제자리는 저마다의 중심이며 저쪽이 아닌 이쪽이라는 듯이
버티는 힘은 무엇을 넘기거나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견디는 것이다 미동도 없다는 말은 지극히 버티고 있다는 뜻 소용돌이 견딘 수심 아슬아슬 비켜 간 길목
얼마나 버틸지
거스를 수 없는 궤적이 덮쳐도 팽팽하게 조인다 꿈은 살아가는 것들의 숨
한순간도 포기를 포기한 적 없다
- * 시집 『하루치의 지구』 (상상인, 2024.11) ---------------------------------
* 이정희 시인 경북 고령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2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꽃의 그다음』 『하루치의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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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엔 나타나지 않고 "강물이 마른 후에 보"게 되는 자리다. 이것은 비단 "강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어떤 환경이 사라지거나 또는 어떤 환경이 닥쳐올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자리가 "제자리"였는지 아닌지가 판명된다. 그때 "물속에 반쯤 잠긴 바위들은/ 그 반쯤의 무게로 제자리를 버"텼다.
어떤 일로 인해 "제자리"를 이탈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할지라도 "발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고정"하며 "버틴다, 몇 날을 버틴다".
자기 자리로서의 "제자리"는 그냥 저절로 얻어지거나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버티고 버티면서 이루어지고 지켜내는 것임을 보여준다.
- 이종섶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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