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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레바논은 1989년 10월 24일의 타이프 협정(Taif Agreement)으로 장장 15년간 국토를 짓밟던 내전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어 1992년에 임명된 라피크 하리리(Rafic Hariri) 총리 휘하 내각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서방의 지원을 받아 재건 작업에 착수했고, 내전으로 파괴된 자국 경제를 복구하고자 했던 레바논의 노력에는 국제사회도 지지를 보냈다1). 이후 1993년부터 2019년까지 레바논의 경제사는 명확한 특징을 지닌 다음의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해볼 수 있다2).
• 제1기(1993~1997년): 내전 종식 직후의 낙관론과 재건의 희망이 두드러지던 시기로, 당시 전반적 지출 증가 기조에 따른 자본 지출과 부채의 증가가 나타났고, 각종 자본 사업에 들어가는 자금 규모와 민간·안보 분야 일자리도 증대되었다.
• 제2기(1998~2002년): 기초 재정 수지 적자가 감소해 균형을 찾아가면서 비공식적 긴축 기조가 시작된 시기로, 자본 지출이 급감하고 세율은 인상되었다.
• 제3기(2003~2011년): 파리회의(Paris II Conference)에서 이루어진 레바논 재건 논의, 유가 상승,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순효과가 불러온 투자심리 개선에 힘입어 자본 유입 증가와 대규모 재정흑자가 나타난 안정기로, 금융위기 당시 매력적 금리를 내세운 레바논 은행으로 세계 자본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 제4기(2012~2019년): 시리아 내전 발발에서 시작해 현재의 위기 상황 직전까지 이어진 불안기로, 시리아 상황의 악화가 가져온 난민의 폭발적 유입(현재 레바논은 국민 1인당 시리아 난민 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다)과 경제적 악영향(무역로 폐쇄, 유가 급변, 관광객 감소 등) 및 정치·안보적 불안을 특징으로 한다.
내전 이후 1990년대에 정치 제도의 재편성을 마친 레바논은 하리리 정부의 지휘 아래 국가 경제의 재건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이후 하리리 정부가 내세운 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 역효과를 낳고 부패에 찌들었던 공공 부문의 개혁과 현대화 노력도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타이프 협정이 레바논에 부여한 정치 질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하리리 정부 경제 정책의 한계
1992년 10월 31일에 취임한 하리리 총리에게 주어진 책무는 레바논의 경제적 인프라를 재건하는 일이었다. 역내 평화 정착이 투자 유치의 선결 요건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하리리 총리와 레바논 시민사회는 1993년에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이라는 성과를 거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이 계속해서 긍정적 결실을 거두기를 바랐다. 하리리 내각의 국가 경제 재건 작업은 레바논의 분열로 지역 안정성이 저해되는 결과를 원하지 않던 국제사회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었는데, 특히 당시 레바논에 군대를 진주했던 시리아도 이에 뜻을 같이했다. 하지만 1975년 발발한 내전 참여 주체 모두에게 정치적 대표권을 주도록 한 타이프 협정의 의무 조항이 점차 경제 및 재정 영역으로도 영향을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문제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하리리 정부는 1993년 발표한 ‘호라이즌(Horizon) 2000’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자국 재건 사업에 200억 달러(한화 약 26조 6,0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레바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94년의 8%에서 시작했다가 점차 줄어들어 1997년에는 4% 수준을 기록했지만, 당시 이 수치는 레바논 경제의 호황을 나타내는 징후로 받아들여졌다3). 게다가 레바논의 핵심 기업 지구가 상대적으로 빨리 활기를 찾고 1996년에는 경제 개발과 재건을 담당하던 기업인 솔리데레(Solidere)4) 가 주식거래소를 재개장하면서 시장은 더욱 낙관적인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한편 하리리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는 특히 경제 정책을 중심으로 찬사와 힐난을 동시에 받았다. 먼저 하리리 총리의 주요 업적으로는 적어도 다음의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5):
1) 해마다 추락을 거듭하던 레바논 파운드 화폐의 달러 대비 가치를 회복하고 달러당 약 1,500 레바논 파운드 수준에서 고정환율제를 도입했다.
2) 1992년 취임 당시 120%였던 인플레이션을 1997년 6%까지 안정시켰다.
3) 레바논의 기초 인프라 현대화 및 수도 베이루트(Beirut) 상업지구 재건을 목표로 한 야심찬 투자 사업을 개시했다.
4) 국내 및 해외 투자자에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 최대 세율을 10%로 제한하고, 신규 투자자에 면세 기간을 부여했으며, 조세 제도를 정비했다.
5) 레바논 경제에 대한 역내 국가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했다.
반면 하리리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은 다음의 문제를 지적한다.
1) 중동평화프로세스(Middle East Peace Process)가 조기에 성공을 거두어 평화가 정착되면 적자를 쉽게 메꿀 수 있을 것이라 예단해 자국 인프라 개발에 대부분 부채로 조달된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쏟아부었다6).
2) 1998년 임기 말에 이르러 위험 수준까지 올라간 공공부채 폭증을 방관했다.
3) 과도한 정부 부채 확장으로 레바논 파운드화 예금에 대한 실질 금리 상승을 유발했다.
4) 인프라 개발에는 과도한 금액을 쏟은 반면, 농업이나 산업 분야의 생산성 높은 사업이나 보건의료, 교육 등 사회적 사업에는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
5) 직접세는 내리면서 유류세를 비롯한 간접세는 올려 부유층이 상대적 수혜를 받고, 빈곤층이나 중산층이 더 높은 부담을 지는 조세 구조를 만들었다.
6) 가장 결정적으로, 장관급 인사와 각계 관료, 국가 계약에 참여하는 국내·외 투자자, 그리고 총리 자신의 측근 사이에 팽배해 있던 부패 문제 해결에 무관심했다7).
결과적으로 몇 차례의 개각을 거친 하리리 내각의 집권기 말까지 레바논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점차 더욱 많은 자금이 들어가면서 재정적자는 확대된 반면, 실업, 저임금, 빈곤 등 여타 사회·경제적 문제8) 해소에 실패했다.
이 시기 나타난 전후 경제의 특징으로는 레바논 국가 체제로 통합된 과거 군벌 지도자들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경유착이라는 새로운 행태가 등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존에 보유했던 무기를 판매한 유력 지도자들이 정부 요직에 진출하는 한편 각 지역의 상업이나 금융 분야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정치 엘리트층으로 등극했다. 이들은 정부를 전국 제일의 고용주로 만들 정도로 공직 일자리를 무분별하게 늘려 나랏돈으로 유권자의 환심을 샀고, 대형 재건 사업의 공공 조달 계약을 자의적으로 진행하면서 대기업도 자신들의 영향권으로 포섭했다. 또한 신규 엘리트층이 자신의 세력 유지 비용을 내부 금융으로 해결하면서 국채 금리가 최대 30%까지 치솟았고9), 이와 같은 환경에서 산업이나 농업 부문의 생산성을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중산층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일반 레바논 가계의 생계유지를 가능하게 한 것은 해외 노동자의 국내 송금이었다. 다만, 이렇게 레바논으로 송금되는 자금이 국제수지 적자를 충당하는 효과를 내면서 심각하게 왜곡된 경제 체제의 유지력을 늘려 그 수명을 조금이나마 연장하는 역설적 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즉, 이 시기 레바논 경제는 표면상으로는 멀쩡해 보였을지 몰라도, 그 이면으로는 정치 마피아의 배만을 불리는 정경유착이 횡행하는 왜곡된 경제 체제의 성장을 불러왔으며, 이 문제는 나중에 레바논 현대사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극(Ponzi scheme)이자 파산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그림 1> 레바논 전후 재건기 신규 엘리트층 활동 모식도
* 자료: 저자 작성
밑천 없는 기형적 경제
2005년 2월 14일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대형 폭탄테러가 당시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라피크 하리리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그가 주창한 재정 정책의 시대도 종언을 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친 시리아 내각 총사퇴와 시리아군 철수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 사태, 일명 삼나무 혁명(Cedar Revolution)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시리아군이 레바논에서 철수하고 이후 등장한 일련의 레바논 내각은 하리리 전 총리와 유사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정책이 가져온 결과는 2019년 기준 경제 부문별 GDP 비중 통계에서 알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 서비스업의 비중은 무려 78.85%를 기록한 반면 제조업은 5.6%, 농업은 3%라는 저조한 수치에 그쳤다10). 또한, 해외 자본이나 재외 레바논인 공동체로부터의 송금에 고도로 의존하던 당시 경제적 구조도 레바논의 생산 부문이 얼마나 빈약한 수준에 머물렀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20년간 레바논으로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FDI) 자금은 대체로 부동산이나 관광 부문으로 향했고, 그 규모는 2010년부터 연간 약 20~30억 달러(한화 약 2조 7,000억~4조 원) 수준을 보였다. 또한 재외 레바논인의 국내 송금은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금의 핵심 원천이 되었고, 그 규모는 2010년대 전반에 걸쳐 GDP 대비 15~20%에 달했다.
이처럼 기형적 경제 구조를 지닌 레바논은 결국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극심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해, 인구 대비 억만장자 비율은 역설적이게도 세계에서 수위권이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레바논 성인 중 상위 10%가 국부의 70.6%를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11). 이에 더해 금융업 부문이 국가 전 부문에서 후원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연료 보조금, 밀 수입대금, 지역 내 거래대금 등 모든 종류의 자금 이동이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은행으로 흡수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정계-금융계 밀착이 가져온 파급효과
경제적 세계화에 방점을 두었던 타이프 협정은 레바논의 경제 체제가 띠던 자유주의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능했고, 신자유주의 기조가 확대되면서 레바논 경제는 해외 자본에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특히 은행업, 금융업, 부동산업 등의 분야에 집중되었는데, 이에 따라 레바논 경제 구조의 금융자본 의존성이 이전보다도 더욱 심화되었고, 농업이나 산업 분야가 받는 관심은 반대로 더욱 줄어들었다12). 이러한 금융업은 정치적 포섭의 이상적 대상이 되었으며, 현재 레바논 소재 은행 20개 중 18개에서 대주주가 정치 엘리트층과 연계되어 있고, 은행업계 보유 자산 중 43%에 정계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으로 집계된다13).
레바논 정치 엘리트층은 금융업계 사유화에서 그치지 않고 공공 부문에 대한 통제도 강화해 나갔으며, 그 과정에서 공직 임명이 정치 논리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레바논 공무직 위원회(Civil Service Council)나 능력 기반 채용 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게다가 상호 경쟁 관계에 있는 정치 집단들이 공직 임명권을 두고 다툼을 계속하면서 이와 같은 현상은 국가 기관 전반에 걸쳐 더욱 심화되었고, 최악의 인재(人災)로 역사에 기록될 2020년 8월 4일 베이루트항(Port of Beirut) 폭발 사고에도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 여기서 나타난 인력 관리의 정치화 현상은 비단 채용 과정에 그치지 않고 해고, 승진, 이직 등 다른 여러 절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14).
여기에 더해 공공 조달 사업도 나랏돈을 갉아먹는 원흉 중 하나로, 제도적 감독의 미비나 부실하고 낙후된 법령체계가 부정행위 횡행에 일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한 정부 조달 사업은 공공 기금의 낭비로 이어져 레바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및 경제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15).
한편 레바논의 국가 부채가 폭증한 핵심 원인도 정치 엘리트층에 팽배한 탐욕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탐욕은 레바논에서 일어나는 부패 문제의 표면적 발현이라는 점에서 그림 전체를 보여주지는 않으며, 레바논식 부패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유착관계에 기반한 후견주의에서 드러난다. 레바논 정치인들이 어느 정도나마 민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극소수의 수단 중 하나는 유권자에 일자리와 특혜를 제공하고 대기업과 계약을 거래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일견 여타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레바논에서는 후견주의가 공공연히 인정받아 일종의 규범으로 자리잡았다16). 각종 부패 행위가 법의 처벌을 피해 가면서 체제에 포섭되지 않은 일부 지식인들을 제외하고 체계화된 저항이나 상황 비판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즉, 레바논이 운영하는 허울뿐인 민주주의에서는 선거만 형식적으로 치러질 뿐, 정계 인사들이 자기 입맛에 따라 공직을 분배하고, 책임성 보장을 위한 기제는 전무한 데다가, 의회와 법원, 회계 감찰기관, 중앙 조사기관, 공직 위원회를 비롯한 감독 기구마저 엘리트층에 포섭되고 말았다.
중앙은행이 주도한 재정 사기극
2011년 이래 레바논의 실물 경제는 레바논 중앙은행(BdL, Banque du Liban)이 융통하는 자금에 더욱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국제수지의 압박이 가중되면서 BdL의 개입은 점차 비정형적(unorthodox) 형태를 강하게 띠게 되었고, 2016년에 시작된 일명 ‘재정 공작(financial engineering)’으로 은행이 예치하는 외화에 엄청난 금리를 책정한 BdL은 이러한 계획의 집행을 철저한 비밀에 부쳤다. 이는 BdL의 재정 부담 증폭과 더불어, 금융 부문 안정을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입지도 약화시키는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여기서 언급한 재정 공작은 다음의 배경 아래 이루어졌다. 먼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레바논은 국제수지 악화와 경제성장률 급락이라는 이중고를 맞았고, 이와 동시에 수출이나 자본 유입액 측면에서의 실적도 감소했다. 그러자 BdL은 여기에 대응해 2016년 2/4분기부터 재정 공작에 나서 130억 달러(한화 약 17조 3,000억 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 제도를 통해17) 외환보유고를 확충하고 시중 외화를 흡수하고자 한 것이다18).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순간의 위기를 극복해 시간을 벌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했고19), 이를 뒤따른 후속 정책은 장래 다가오는(그리고 2019년 4/4분기에 현실로 나타난) 파국이 초래할 막대한 손실에 대비하는 성격을 띠었다.
결론: 일말의 희망
오늘날 위기 상황으로 인해 레바논인의 생계는 더욱 곤란해졌고,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범위도 크게 제한되었다. 자신의 안전이 언제라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레바논인들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고국을 떠나는 방안을 선택했고, 코로나19 팬데믹·2020년 베이루트항 폭발 사고·레바논 파운드의 가치 추락은 이러한 레바논 국민의 대탈출 행렬을 더욱 가속화했다.
지금까지 고국에 남은 레바논 국민들은 재정과 안전, 생계를 비롯한 그 어떤 측면에서도 안정적인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재산이 금융권에 묶인 절박한 레바논인들은 은행을 습격해 탈취극이나 보안 인력과의 대치극도 불사하고 있으며, 대중은 법적으로는 범죄자인 이들에게 오히려 응원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의 집계에 따르면 레바논 은 여전히 수학·과학 교육의 질에서 세계 141개국 중 4위, 고등교육 체제의 질에서 18위, 디지털 역량에서 23위, 숙련 인력 확보의 용이성에서 10위라는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레바논 청년들의 능력을 제대로만 활용할 수 있다면 일신된 국가와 경제, 효율성과 투명성을 겸비한 공공 행정, 양질의 국정 운영에 기반한 새로운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은 열려 있다. 레바논을 쥐락펴락하던 구시대 마피아 계층이 지중해에서 발견된 유전 통제권을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동안, 그간 침묵을 지키던 젊은 세대는 자신의 재능과 지식, 능력을 활용해 침몰해 가는 배를 구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석유에서 나오는 돈은 현 체제의 연장만을 불러올 뿐이지만, 레바논의 미래인 청년들은 진정한 경제 회복을 반드시 이루어 내고야 말 것으로 확신한다.
<그림 2> 레바논의 미래 희망을 보여주는 순위 지표
* 자료: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2019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Global Competitiveness Report)
* 각주
1) Nizameddin, T. (2006). The Political Economy of Lebanon under Rafiq Hariri: An Interpretation Middle East Journal, 60(1), 95– 114. http://www.jstor.org/stable/4330218
2) World Bank. 2022. Lebanon Public Finance Review. © World Bank. Chap 2/B
3) CIA World Fact Book, Lebanon, https://www.cia.gov/the-world-factbook/countries/lebanon/
4) ‘레바논 개발·재건회사(Société Libanaise pour le Développement et la Reconstruction)’ 불어 명칭의 약어이다.
5) Arab Studies Quarterly, Vol. 24, No. 1 (Winter 2002), pp. 63-90
6) 레바논 개발·재건위원회(CDR, Council for Development and Reconstruction)가 내놓은 보고서는 1992년 12월부터 1997년 말까지 레바논 재건과 인프라 개발에 들어간 비용이 42억 달러(한화 약 5조 6,000억 원)에 달하고, 이 중 거의 20억 달러(한화 약 2조 7,000억 원)가 해외에서 빌린 자금인 것으로 추산한다(Al-Nahar, 14 March 1998, p. 10).
7) Democracy (Again) derailed: Lebanon's Ta'if Paradox" in Bahgat Kourany, Rex Brynen and Paul Nobel (eds.), Political Liberalization and Democratization in the Arab World, Vol. 2, Comparative Experiences (Boulder, Colorado: Lynne Rienner Publishers, 1998), pp. 144-145.
8) 이들 문제는 특히 베카계곡(Beqaa Valley)이나 아카르(Akkar)주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다.
9) https://www.bdl.gov.lb/webroot/statistics/table.php?name=t5271-3
10) World Bank Data, “Lebanon”, https://bit.ly/3G5mrwf
11) UNESCWA (2020), “Poverty in Lebanon: Solidarity is Vital to Address the Impact of Multiple Overlapping Shocks”, https://bit.ly/32r9qhP
12) Joseph Daher, Lebanon: How the Post War’s Political Economy Led to the Current Economic and Social Crisis, doi:10.2870/824020 // ISBN: 978-92-9466-179, © European University Institute, https://south.euneighbours.eu/wp-content/uploads/2022/07/QM0122031ENN.en_-1.pdf , Parag 1.2
13) Jad Chaaban, “I’ve got the power: mapping connections between Lebanon’s banking sector and the ruling class”, Economic Research Forum, October 2016, https://erf.org.eg/app/uploads/2016/10/1059.pdf Abstract
14) Mahroum, S. (2021, July 4). Lebanon badly needs an independent civil service. The National. Retrieved October 27, 2022, from https://www.thenationalnews.com/opinion/comment/lebanon-badly-needs-an-independent-civil-service-1.1064825
15) Al Sharabati, C., Aajaltouni, S., Spognalo, V., & Ghandour, T. (2020, December 9). Public Procurement in Lebanon: A Gateway to Malpractice. Siren Associates. Retrieved from https://sirenassociates.com/wp-content/uploads/2020/12/Institutional-Mapping-Final-Report-Dec-9-2020.pdf
16) "The Three Faces of Corruption in Lebanon" (February 2001). (2022). Retrieved 27 October 2022, from https://www.meforum.org/meib/articles/0102_l2.htm
17) IMF 2016 Article IV Consultation Report
18) 재정 공작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세계은행(World Bank)이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레바논 경제 모니터(Lebanon Economic Monitor) 자료 2016년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World Bank (2016), The Big Swap: Dollars for Trust, Lebanon Economic Monitor, Fall 2016)
19) World Bank. 2022. Lebanon Public Finance Review. © World Bank. Parag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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