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스 킴
Mrs. Kim
소름이 쫘악 끼칠 만큼 놀랍고도 즐거운 일이 바로 조금 전에 있었습니다.
지금 저희 가족은 노엘의 학교로 가는 전차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전차 안에 앉아서 이 글을 씁니다.
오늘도 노엘이는 교수님으로부터 레슨을 받고 또 개인 연습도 하는 날입니다. 집을 나와 학교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서 오는 버스가 오늘은 몇 분 늦습니다. 혹시 버스가 안 오는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으나 정류장엔 우리 가족 말고 어느 독일인 엄마와 딸, 그리고 중년의 부인이 한 분 서 계셨기에 더는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현지인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곧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입니다.
그러자 길 저쪽 편에서 7240 버스가 오는 게 보여서 말했습니다.
“Bus is coming!”
그런데…, 바로 곁에 서 계시던 고운 독일인 부인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길…,
“지금!”
오, 깜짝 놀랐습니다.
외국인의 입에서, 그것도 번잡한 도심지도 아닌 이 자그마한 포도밭 마을,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독일인의 입에서 한국말이 나오다니요. 함께 버스에 올라서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서 내릴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머무는 아름다운 마을인 샬슈타트(Schallstadt)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시고 한국의 서울에서 한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남편은 한국분으로서 김(Kim)이란 성을 가졌고 그래서 자신의 Last name이 Kim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아버지 되시는 분도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였답니다. 현재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프라이부르크의 보봉(Vauban)에 살고 계시며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카페 Limette에도 자주 가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즐긴다고 합니다. 참 이런 만남도 있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버스 안에 서서 얘길 나누던 중 한국과 한국인이 세계 최고라고 칭찬을 합니다(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았던 독일 여성, 그것도 초등학교 교사의 평가이니 그 신뢰도가 높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현재의 독일은 점점 더 쇠퇴해져 가며 특히 아이들의 학업능력이 저조해져 가고 그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두 휴대폰을 켜서 정신을 빼앗기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십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아이들이 그 어떤 일에도 2분이나 3분 이상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요.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버려서 그렇답니다. 독일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현직교사의 말입니다.
그러시면서 한마디 더 붙이십니다.
가능하면 노엘이는 절대 공립학교에는 보내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하실 때는 그분의 미간이 더 찌푸려졌습니다. 하지만 얼굴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분이 버스에서 내려 보봉으로 가는 3번 전차를 타기 위해 떠나기 전 서로의 연락처를 나누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들은 어여쁜 프랑스 여인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살고 있으며 손주들도 모두 성이 Kim이라고 하시며 자랑스럽다고 하십니다.
그분과 헤어지고 난 뒤 잠시 아내와 얘길 나누었습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분 옆에서 한국말을 모를 독일인이라고 방심한 채 좋지 못한, 상스러운 말들을 했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이었겠고 또 그분이 우리에게 ‘지금’이라고 말을 건네며 마음의 문을 열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이고 사람들 앞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날씨가 아주 맑고 아름답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따스하고 밝은 햇살이 내려쬐입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학생들이 학교 앞 연못 곁에 둘러앉아 독일 검은숲의 멋진 날을 즐기고 있습니다.
노엘이는 피아노과 연습실 35번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고 저희는 로비의 원형 탁자에 앉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합니다.
2024.10.24. 목요일
독일 검은 숲 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