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다 / 황정산 없어진 한 짝 양말에 관한 말은 아닌 꿈속에서도 마주칠 수 없는 모래 냄새가 나는 말이긴 하나 제 꼬리를 삼키며 숨는 뱀의 이름 같기도 한 그러나 모든 구멍들을 채울 수 없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한 연을 날리다 하늘을 본 사람들은 아는 말이지만 알을 낳는 새에 대한 말은 아닌 둔중한 것들이 용적을 비우고 차지하는 것들이 바람에 실리고 불리웠던 것들이 이름을 감추고 사라진다 그렇게 살아진다
- 시집 『거푸집의 국적』 (상상인, 2024) ___________________
* 황정산 시인(문학평론가) 1958년 목포 출생, 고려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 박사 1993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으로 시 발표 시집 『거푸집의 국적』 저서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 『소수자의 시 읽기』 등 대전대 교수 역임
**************************************************************** *** 황정산의 첫 시집 『거푸집의 국적』을 지난 주 틈틈이 읽었습니다. 문학평론가 그러니까 말을 분해하는 황정산보다 시인 그러니까 말을 조립하는 황정산을 읽는 즐거움이 훨씬 크더군요. "모든 말은 원래 동사였다/ 움직이는 것들이 굳어 명사가 된다/ 아직 굳지 못한 기억/ 동사로 남아 꿈틀댄다"(「시인의 말」) 이렇게 시작한 시집은 "1부. 블랙/ 2부. 시인 시점/ 3부. 어처구니의 행방/ 4부. 불량한 시/ 5부. 동사들" 이렇게 다섯 개의 틀(거푸집)로 조립됩니다. 그리고 오늘 띄우는 시는 당연히(?) <5부. 동사들>에 들어 있겠지요. - 사라지다 "사라지다"라는 동사가 슬그머니 혹은 어처구니없이 "살아진다"라는 동사로 부지불식간에 바뀌는 마술을 보여줍니다. "사라진다 그렇게 살아진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일생을 시인은 단 한 줄로 요약합니다. 기가 막힌 말의 조립입니다. 그가 말하길, 모든 "사물들"이 본래 "동사들"이랍니다. 곰곰 생각하면 맞습니다. 고정불변의 사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사였던 사물을 명사로 만든 건 어쩌면 인간의 편의에 따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시집은 말을 조립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줍니다. 당분간 곁에 두고 틈틈이 그의 레시피들을 분해해봐야겠습니다. 2024. 11. 25.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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