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신용목
열아홉의 내가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어서
삼십 년을 살았다
내 미래는 이런 거였구나, 이제 다 보았는데
돌아가서
알려주고 싶은데, 여전히 계속되는 시속 한 시간
의 시간 여행을 이제 멈추고
돌아가서
알려주면, 열아홉의 나
자신 앞에 놓인 삼십 년의 시간을 살아보겠다 말할
까 아니면
살지 않겠다 말할까
까만 먹지 숙제에 영어 단어 대신 써 내리던 여름
과 아무렇게나 쓰러뜨린 자전거
바큇살처럼 부서지는 강물을 내려다 보며, 물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끝없이 뛰어내리는 거라고
생각하던 긴긴밤으로부터
나는 겨우 하루를 살았는데, 생각 속에서 삼십 년
이 지나가고
넌 그대로구나
꿈에서는 스물하나에 죽은 친구가 나타나, 우리
가 알고 지낸 삼 년을 다 살고
깨어나면 또 죽고
열아홉 살 다락방, 고장 난 시곗바늘을 빙빙 돌리
다 바라보면
창밖은 시계에서 빠져버린 바늘처럼 툭 떨어진 어둠,
그러니까
열아홉을 떠올리는 일은 열아홉이 되는 일이 아니
라 열아홉까지의 시간을 다
살게 하는데, 어둠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시곗바늘처럼
눈을 감으세요,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신용목
경남 거청 출생. 200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나의 끝 거창』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 시간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