覺山 정원규님의『법화경 강설(불광출판사), 초판 1쇄』, 이건 아니다(終) 如是我聞
一時 佛住王舍城 耆闍崛山中 與大比丘衆 萬二千人俱 皆是阿羅漢 諸漏已盡 無復煩惱 逮得己利 盡諸有結 心得自在 (序品 第 一)
●이 경문에 대한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기사굴산에 머무셨다. 큰 비구의 대중 일만 이천명과 함께 하였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이미 모든 누가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어서 자기 스스로 이로움을 얻었으며, 모든 번뇌의 매듭이 다하여 마음에 자재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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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경문: 如是我聞, 그리고 문제의 글자 <聞>
모든 경전은 <如是我聞>으로 시작한다. 말하자면 경전의 문을 여는 열쇠나 다름없는 네 글자다. 모든 불교경전의 번역본은 이를 위 覺山 정원규님처럼 <이와 같이 내가 들었습니다.>로 번역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번역은 틀렸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습니다.>가 아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알려드립니다.>이다.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습니다.>라는 번역이 정확하다면 바로 이어지는 경전의 모든 내용은 아난존자가 자신의 귀로 듣게 된 사실로만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경문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법화경 전체를 보면 아난존자가 자신의 귀로 들어서 알게 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눈으로 보고 알게 된 내용도 수두룩하다는 말이다.
2. 그뿐 아니다. 부처님을 시봉하면서 아난존자 자신이 느낀 것, 다른 불자들이 느낀 것과 말하는 것, 아난이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된 법회의 분위기 등도 법화경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아난은 그것들을 법화경을 통해 말하고 있다.
3. 한 마디로,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번역문으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내용들로 법화경은 구성되어 있다.
4. 마지막으로, 글자 <聞>은 <(귀로) 듣는다>라는 의미와 더불어 <(남에게, 특히 지위가 높은 분에게)알려드린다>라는 중요한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如是我聞>의 <聞>은 <들을 문(聞)>이 아니라, <알려줄(아뢸) 문(聞)>으로 풀어야 법화경의 내용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가지고 계신 한자사전을 참고하시라.)
앞글에서 필자는 <관세음보문품 제 이십오>에 등장하는 <聞是觀世音菩薩>이라는 경문에서 글자 <聞>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聞是觀世音菩薩>은 <관세음보살을 듣고>가 아니라, <관세음보살에게 알려드리고>라 번역해야 맞다, 라는 설명을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아난이 누구에게 알려준다는 말인가? 나성거사는 그 대상을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 결집 장소에 모인 모든 불자들이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시고 난 후, 당신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바로 그 집회, 다시 말해 결집 장소에 모인 청중들이 첫 번째 대상이다. 이것은 좁은 의미다. 둘째. 이 경을 공부하는 후세의 모든 불자들이 두 번째 대상이다. 이것은 넓은 의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미 모두 후세의 학자들이 법화경을 편집하면서 아난이 서술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글자 <聞>이 <알려준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新聞(신문)>이라는 말은 새로운 것(新)을 알려준다(聞)는 뜻이다. 또, 이조시대의 <申聞鼓(신문고)>는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임금께 <聞하기 위해>, 다시 말해 <알려드리기 위해> 설치된 북을 말한다.
필자가 <如是我聞> 네 글자를 <이와 같이 내가 알려드립니다.>라고 번역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여기까지다.
여담 1. 한자를 빌어 글자를 만든 일본의 경우, 이 글자 <聞>에 <알려준다>는 의미는 그들의 사전에 없는 듯하다. 법화경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또 그것을 영어로 다시 번역하여 서양세계에 뿌려 놓은 일본 불자들은 법화경을 가지고 무슨 짓거리를 해 놓았는지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여담 2. 오랫동안 신문기자 일을 하고 정부의 고위직까지 지낸 어느 유명 인사가 <新聞>이라는 말의 뜻이 <새로운 것을 듣는다>라고 풀이하면서 근엄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한참 웃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신문의 날이었다. <新聞>은 글자 그대로 <새로운 것을 알려준다>는 의미다.
●이 경문에 대한 나성거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한 때, 부처님께서는 큰스님 만 이천 분들과 함께 왕사성에 있는 기사굴산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큰스님들은 모두 한결같이 일체의 번민을 벗어난 아라한들로서 어떤 번뇌도 더 이상 큰스님들 앞을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또 온몸으로 총기를 내뿜으며 맺힌 것은 남김없이 풀어버렸으니 마음은 자유자재하여 걸리는 바가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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