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도는데
- 사랑하는 애절함이 그립다 -
가인 이은미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 갈 때 뒤돌아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 타향 멀리 가더니
새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두 손을 마주잡고 아쉬워하며
골목길을 돌아설 때 손을 흔들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가을이 다가도록 소식도 없네.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사랑은 그때 그토록 애틋했던 이별만큼 영원할 것 같았나 보다. 사랑을 속삭였던 고향의 물레방아가 오늘도 여전히 변함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그래서 ‘나훈아’ 가수의 구성진 목소리에 애절함이 흐르고 사랑과 이별, 그리움이 가사와 가락에 실려 애절하게 내 가슴으로도 스미는가 보다.
먼 시간의 여행을 떠나 초등학교 시절, 흑백 브라운관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처음 그를 만났다. 풍성한 검은 곱슬머리에 굵고 진한 눈썹, 열정과 낭만이 깃든 서글한 눈매, 볼륨 있는 광대뼈, 후덕한 큰 코, 큰 입 가득 드러나는 하얀 치아의 환한 웃음이 남자답게 잘 생겨 보였다.
그 후, 우리 집엔 오빠가 군대를 제대하고 공무원으로 취직을 하여 첫 월급을 타고 그 기념으로 카세트플레이어-언제든 듣고 싶은 노래를 들을 수 있는-가 생겼다. ‘나훈아’ 가수를 유독 좋아했던 오빠는 크게 볼륨을 높이고, 구구 절절이 구성진 음색으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슴에 나름 낭만과 사랑을 키워가는 듯 했는데 나도 덩달아 따라 하였다. 그의 목소리에 애틋함이 있는 듯도 하고 사람의 정(情)이 물씬 베어 나오는 것 같기도 했던 노래, 마당 넓은 집안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이웃 돌담장까지도 넘나들어, 이웃집에서 놀다가도 자연스레 듣고 고향의 푸근함과 사랑의 애절함도 어렴풋 느끼지 않았던가, 물레방아 노래처럼.
우리 마을 어귀에도 물레방아는 있어 연신 하얀 물줄기가 흘러 커다란 나무바퀴를 힘차게 돌리고 아래 웅덩이로 낙하하여 청명한 물소리를 쏟아내곤 했었지. 그 곳에서 또래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그러다 어느 날인가는 물레방아에서 누구누구가 좋아지낸다는 염문이 동네에 퍼지고 서로 ‘속닥속닥’, ‘쉬쉬’ ‘호호’거리다 종국엔 선남선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부러움과 시샘으로 마감 짓던 뒷담화의 원천지이기도 했던 곳. 그래서 ‘물레방아’에는 사랑의 추억이 담기고, 애틋한 이별의 정한이 따르며, 두절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도 애절하게 흘렀나 보다.
세월 따라 내게도 연륜이 쌓였다.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고향과 함께 그의 노래가 자주 상기돼 추억의 앨범을 보듯 가끔 유투브 동영상 속에서 그를 만난다. 이제 그도 세월을 비끼지 못해 그 옛날 싱그러운 젊음의 매력은 사라졌다. 만인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만이라도 불사조처럼 늙지 않고 영원히 멋진 모습만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인생에 부여된 숙명이 어찌 내 바람처럼 되랴?
그러나 고향의 물레방아가 변함없이 도는 것처럼 그의 노래는 시대를 넘어 어쩌면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노년의 모습에 인생의 무상과 안쓰러움이 연민의 정으로 일지만 구성진 그의 노래엔 지그시 눈이 감긴다. 베란다 창으로 달빛이 스민다. 추석을 하루 앞둔 날, 휘영청 둥근 달이 떴다. 은은한 빛으로 고아함을 드러내며 어둔 밤하늘을 고요히 떠간다. 신비롭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짐이 되고 싶지 않고 그 짐을 떠안고 싶지도 않은 가운데 가능하면 혼자의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가길 원한다. 서로가 피해주지 않고 피해 받지 않고 살면 그것이 피차 바르게 사는 미덕이 되었다. 타인을 존중하는 의식과 함께 배타주의도 내재해 있다. 그래서 사람과 가까워지려 ‘공’도 들이지 않고 ‘정(情)’이나 ‘사랑’도 적극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
때문에 오늘날 물레방아는 여전히 돌아도 그곳에 옛 노래와 같은 애절한 사랑을 그려볼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이 많이 무심해졌다. 오히려 정(情)과 사랑을 주면 그것을 이용하고 상처로 되돌려주는 사악한 양상도 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한 몸’ 돌보기에 급급하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따뜻한 이들은 있어 인생의 뜨락에 변함없는 정과 사랑을 펼치기도 한다.
현대문명은 말한다. 타인은 그다지 애지중지하지 않다고. 소원한 관계로 고독과 시름으로 병들고, 세월 따라 육신은 사그라지라 한다. 그래서 흙이 되고 부토가 되어 바람과 구름의 친구가 되라 한다. 그립다. 살아오는 어떤 날이던가 ‘물레방아 도는데’ 노래처럼 가슴 속에 피웠던 사랑의 애절함이.
그 애절함은 사람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며 한마음이 되고 싶었던 강렬한 소망이었으리라. 그 애절함이 그리움으로 살아나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주었으면 좋겠다. 기계 문명의 삭막에 사랑이 식은 문명인의 가슴이지만, 그래도 가슴 속 그 어딘가에 지고했던 사랑의 애절함이 숨어 있지 않을까?
파란 창공아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아름답다. 한적한 고향마을 물레방아는 오늘도 맑은 물을 쏟아내며 한없이 돌아가는데…….
첫댓글 " 고향의 물레방아가 변함없이 도는 것처럼 그의 노래는 시대를 넘어 어쩌면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노년의 모습에 인생의 무상과 안쓰러움이 연민의 정으로 일지만 구성진 그의 노래엔 지그시 눈이 감긴다. 베란다 창으로 달빛이 스민다. 추석을 하루 앞둔 날, 휘영청 둥근 달이 떴다. 은은한 빛으로 고아함을 드러내며 어둔 밤하늘을 고요히 떠간다. 신비롭다."
바쁘신 중에도 늘 읽어주시고, 그나마 잘 표현된 곳을 댓글로 나타내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하는 일, 보람과 기쁨이 함께 하세요.^^
기계 문명의 삭막에 사랑이 식은 문명인의 가슴이지만, 그래도 가슴 속 그 어딘가에 지고했던 사랑의 애절함이 숨어 있지 않을까? " 좋은 글 감상 잘 했습니다. 건필하시구요.~~
늘 관심깊게 읽어주시고 공감된 부분을 나타내 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평안하시고 잔잔한 기쁨이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