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석 金銀錫 (1919-2011)】 "한국광복군 제3지대 입대 후 지하공작원 대일활동 전개"
1919년 12월 6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성면(古城面) 용문동(龍門洞)에서 태어났다. 중화민국 육군중앙군관학교(陸軍中央軍官學校)를 22기로 졸업하였고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지하공작원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11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는 초모공작(招募工作)의 강화를 위해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 한광반)을 졸업한 한성수(韓聖洙)·윤창호(尹昌浩)·홍순명(洪淳明)·김영진(金永鎭) 등을 중국 톈진(天津)·베이징(北京)·쉬저우(徐州)·상하이(上海) 등지로 파견하였다. 당시 광복군 제3지대는 징모 제6분처라는 이름으로 중국 화베이(華北)지역 등을 중심으로 광복군 병력 증대를 위한 초모공작 등 대일작전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베이징지구로 파견된 김광언(金光彦)과 이정수(李延秀)의 권유로 광복군에 합류하였다. 김광언·이정수의 인솔 아래 김경윤(金景潤)·정길주(鄭吉冑) 등 10여 명과 함께 광복군 제3지대 본부가 있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으로 이동하여 입대한 것이다.
또한 당시 광복군 제3지대에서는 초모공작을 통해 입대하는 청년들이 늘어남에 따라 자체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이전 활동 근거지에 지하공작원으로 파견하였다. 한국광복군동지회의 「한국광복군 명단」에 따르면 ‘제3지대 전방공작원(前方工作員)’으로 기록되어 있어 베이징지역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광복 후 광복군에서는 일본군 점령지구 내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특파단을 파견하였는데, 이때 우한삼진(武漢三鎭)지구 특파단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