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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주사 와불. 첫 닭이 울기 전에 일으켜 세워야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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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
| 하룻밤 사이에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을 세우겠다는 원력이라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게 무에 있겠는가? 그러나 도선은 하룻밤 사이 천불천탑을 세워서 이 땅에 새로운 세상을 도래케 하겠다는 원력이 있었으나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도선이었지만 천불천탑을 세워 세상을 바꾸리라는 간절한 염원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첫 닭이 울기 전에 와불을 일으켜 세워야 했으나 그만 첫닭 울음에 쫓겨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온갖 영험한 비술을 지녔던 도선마저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은 세상의 물꼬를 바꾸는 일, 그것이었다.
그 후 1000년이 흘렀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역사의 물줄기도 수많은 굽이를 휘돌아 대양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고 있다. 발전이요 진보다. 미완의 꿈, 돌이 되어 굳어버린 꿈, 박제가 돼버린 민중의 꿈은 지금 어떻게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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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주사 경내와 석실 안 부처(위). 이른바 ‘떡탑’이라고도 불리는 원형다층석탑 뒤로 석실이 보인다(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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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의 전형적인 하층계급 문화유산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운주사는 송광사의 말사다. 절 언저리의 천불산 골짜기에 줄지어 서 있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돛대모양으로 만들어진 9층 석탑과 제기 위에 떡을 포개놓은 것처럼 보여서 일명 '떡탑'이라고도 불리는 원형다층석탑, 그리고 그 뒤에는 석실이 보이는데 석실 안 부처는 여느 부처와 달리 왼손을 올리고 있다.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은 사방에 흩어져 있다. 이처럼 수많은 석불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더 눈길을 끈다. 모두 이 곳에서 채취한 석재를 이용해 제작되었다는 것도 신비감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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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주사의 석탑은 대부분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세워져 있다. 층수도 다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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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완의 혁명처인 운주사에서 예슬이와 슬비는 어떤 꿈을 꾸면서 돌탑을 쌓고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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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천불천탑이 어떻게 해서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도선과 관계된 전설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도선이 이 땅의 생김새를 살펴보니 배가 움직이는 형국과 닮았다고 한다. 그대로 두면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마침내 이 나라 국운이 일본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하여 배를 젓는 노의 위치인 이 곳에 돌탑 1000개와 돌부처 1000개를 하루 밤 하루 낮 동안에 도력을 써서 만들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쌓아서일까? 운주사의 불교유적들은 그 형태와 미의식이 아주 독특하다. 정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한마디로 제멋대로다. 대부분의 석탑은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세워져 있는데, 호떡이나 항아리 모양의 돌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크기대로 쌓아올린 것도 있다. 탑의 층수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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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석불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위치해 있다. 상상을 초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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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하층계급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교한 맛은 없으나 석불과 석탑에 대한 일반 규범을 무시한 채 아주 파격적인 생김새를 하고 있기에…. 마치 아이들이 만들다 만 공작물처럼 산비탈과 논두렁, 밭이랑, 바위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이처럼 단순하고 투박한 모습에서 부처의 위엄이나 자비로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슴에 손을 모은 채 뭔가를 열망하는 듯한 모습은 우리 부모·형제나 이웃처럼 정겹다.
석불들이 서로 다소곳이 기대고 있는 모양도 가정과 사회의 화평을 기원하는 것 같아 찾는 이에게 더욱 정감을 일으키게 한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석불과 석탑, 겨우 형체만 알 수 있는 불상 앞에 놓여진 돌무더기에도 용화세계를 꿈꾸는 민초들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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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조 유배지, 고인돌군도 볼거리
운주사를 품에 안고 있는 화순에는 볼 만한 문화유적이 여럿 있다. 화순읍 벽나리의 들판 한가운데 두 그루의 당산나무와 함께 서 있는 민불(民佛)은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앳된 소년과 같은 앞모습이 인상적이다.
능주면 남정리는 개혁사림파의 거두였던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 때 훈구파에 밀려 귀양 왔다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곳. 여기에는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지은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와 복원된 초가가 있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는 500여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길이 7.3m, 폭 5m, 두께 4m로 무게가 200여 톤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상석도 있다. 고인돌군은 사적 제410호로 지정돼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이양면 쌍봉사에는 우리나라 부도 가운데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과 탑비가 있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쌍봉사는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선종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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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 때 귀양 왔다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곳. 화순군 능주면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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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군. 이곳에서는 26일부터 나흘 동안 고인돌축제를 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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