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 11:1-9 내가 쌓고 있는 바벨탑은 무엇인가? 2021년9월12일 주일오전예배
(서론)
1.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양을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열심히 양을 치던 이 사람은 어느 날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돈을 더 잘 벌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양보다는 돼지를 길러보라는 겁니다. 양은 새끼를 한 마리씩 밖에 낳지 못하지만 돼지는 한 번에 십 여 마리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돼지를 기르면 금 새 돈을 벌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양을 다 팔아버리고 돼지를 길렀습니다. 정말로 돼지가 수 만 마리가 됐습니다. 그는 금 새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성공했고 또한 앞으로도 성공이 보장되었습니다. 돼지 기르는 사업은 날로 번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귀신들려 정신 이상이 된 사람이 그 마을에 살게 되었습니다. 엄청 힘이 쎈 귀신들린 사람은 그 누구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돼지 사업을 하는 이 사람에게도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마을을 지나가십니다. 그러다가 이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십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을 멀리 보내지 마시고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군대 귀신들은 돼지 떼에 들어갑니다. 돼지들은 갑자기 한 마리 한 마리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닷가로 달려가더니 물에 풍덩풍덩 빠져 몰살하고 맙니다. 양을 버리고 돼지를 길러 돈을 잘 벌던 이 사람은 한순간에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런 내용들 정말 많습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 방법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해쳐가면서 돈을 모으고 권력을 잡습니다. 그러나 하나씩 하나씩 무너져가는 때가옵니다. 그리고 결국 비참하게 몰락하고 맙니다. 이런 내용이 진지할수록 인기 있는 드라마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나의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본론)
1.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요,
1) 사람들이 함께 모여 높은 탑을 쌓습니다. “자 우리가 흩어지지 말자 그러기 위해 하늘에 닿는 대를 쌓자 또한 도망치는 사람을 감사하기 위하여 높은 대를 쌓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절대로 이루어 질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아주 간단한 방법,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해 버리십니다.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너무나 간단한 방법입니다. 한 순간에 인간들의 계획은 무산되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도우시려고 한다면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도우시는 은혜를, 복을 오늘 받으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본문의 바벨탑을 쌓는데 이 거대한 작업의 주체가 누구였을까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서로서로 말없이 눈으로도 서로 통하여 이 일을 진행했을까요?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질서정연하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되는 작업이기에 누군가는 지도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한 것은요 하나님께서 이 작업의 주체 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 탑은 하나님께서 완성하지 못하도록 흩어버리셨고 그때부터 인류는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흩어져 살아야만 되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가르치셨던 총신대학원 교수님이셨던 김희보교수님은 그 사람을 니므롯이라는 사람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고고학 자료들이 증명해 주고 있고요, 그 당시의 신화들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니므롯을 통한 바벨탑의 배경을 알아보고 오늘날의 바벨탑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2. 니므롯은 누구인가?
1) 그는 세상의 처음 영걸이라고 성경에서 소개합니다(창 10:8). 영걸이란 강한 자라는 뜻입니다. 니므롯은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2) 니므롯은 특이한 사냥꾼이었습니다(창 10:9). 특이한 사냥꾼이란 과거에 없었던 특별한 사냥꾼이란 말입니다. 어떤 영화에 보면 사람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나옵니다. 돈을 주고 한 사람을 목표로 정해놓고 사냥하는 잔인한 영화인데요. 바로 이런 사냥꾼을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니므롯은 다른 면에서 특이한 사냥꾼이었습니다. 고대사회에는 공룡 같은 맹수들이 들끓던 시대입니다. 이때에 니므롯이 그 맹수들을 죽이고 사람들과 가축들을 보호해 주는 특이한 사냥꾼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3) 이름을 날리게 되고 힘을 자랑할 수 있게 되니 자연적으로 사람들을 통솔합니다. 지도자, 권력자, 첫 번째 왕이 되는 겁니다. 창 10:10에 보면 그의 나라가 나옵니다. 왕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4) 니므롯은 큰 성을 건축합니다.(창 10:12) 그는 큰 성을 세웁니다. 그가 세운 성중에 니느웨라는 성이 나옵니다. 이 이름의 뜻은 <니너스의 성>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앗수르의 신화에 따르면 <니너스>는 니므롯의 아들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니므롯은 큰 성을 건축하고 그 성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니느웨라고 지었다는 겁니다.
5) 인류역사상 최초 우상 숭배 강요 자가 됩니다. 니므롯은 자신과 아들들을 신격화합니다. 당시의 야생 생활하던 사람들은 낯의 뜨거운 태양을 악신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과 별은 선한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자기는 하늘의 월신(달신)의 화신이라고 하고 아들들은 하늘의 별신의 화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와 자기 아들들은 백성들을 도와주고 돌보아주는 선한 신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을 신으로 섬기게 했습니다. 이때부터 앗수르에는 달과 별을 숭배하는 우상종교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별을 신격화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6) 이러한 니므롯은 노아의 3명의 아들 중 저주받은 함의 후손입니다.(창 10:6-8) 그는 드디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영원한 군주가 되기 위하여 탑을 쌓습니다. 바로 바벨탑입니다. 이렇게 바벨탑은 한 인간의 야망에서 작업이 시작됩니다.
3. 오늘날의 바벨탑은 누가 어떻게 쌓아가고 있을까요?
1) 사람들이 의논하여 쌓는 탑이 바벨탑입니다.
가) 오늘 3절에 “서로 말하되” 라고 합니다. 서로 의논하고 결정합니다. 민주주의는 정말 좋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자칫 잘못하면 바벨탑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신정주의입니다. 당회, 공동회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결정되어져야 합니다. 또한 단어 "자"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어서" "준비하자" "시작하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가 빠진 거 같습니까? 기도입니다. 국회제도도 좋은 제도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정치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좋은 제도에 만족하십니까? 국회에서 의논합니다. 그리고 기도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빠집니다. 바벨탑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고 결정하고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아무리 지혜를 모으고 결정해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영원을 아시는 하나님께 결정권을 드려야만 합니다. 우리의 의논이 있었고 결정이 되었어도 마지막 작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결제를 받는 일입니다.
나) 독재자 아빠의 결정이 아닙니다. 가정의 실세인 엄마의 결정이 아닙니다. 집안의 무법자인 자녀의 결정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의 결정은 아무리 훌륭한 것 같아도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셔야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다) 자기가 결정해 놓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께 통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리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도 바벨탑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의지,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 인간의 발달된 문명, 지식, 과학 이론도 인생의 참 행복, 참 안식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결정권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참고 자료일 뿐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핸드폰 하나 가지고 다 할 수 있습니다. 먹는 거, 사는 거 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용 재료는 흙벽돌이었습니다. 동굴 생활이나 하던 이 시대에 벌써 흙벽돌을 찍어 내고 도로 포장에 사용하는 역청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의 발달된 지식, 문화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런 뛰어난 재료로 쌓은 탑, 끝내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고요히 기다리는 시간이 꼭, 반드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현대의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움직임이 절실합니다. 너무 지식이 뛰어난 시대에 살다보니 기도는 하는데, 하나님의 감동까지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보다 한발 앞섭니다. 이것이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는 겁니다. 시작도 되고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완성이 안 됩니다.
2) 자만심의 작품이 바벨탑입니다.(4절)
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으므로 그들은 한없는 자만심을 가지게 됩니다. 자 하늘에 닿게 하자. 특별히 강력한 힘을 갖고 통치자가 된 니므롯은 더욱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높은 탑과 대를 쌓고 대 제국을 건설하려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물로 심판해도 이제는 끄떡없는 성을 쌓겠다는 인간의 자만심입니다. 그러나 이 탑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나) 인간은 못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죽어가는 생명 단 1분도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성공실패도 하나님 손안에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면 자기 업적을 남기려고 합니다. 이것이 자만심의 탑입니다. 자만심은 스스로 인간의 힘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우월감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만심은 교만으로 변해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나친 자신감, 자기 우월감은 하나님을 제외시킵니다.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고 강력하게 추진해 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 능력, 자신감으로 인생의 탑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의 정책으로 인생의 행복의 탑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 통치제도가 많이 있었고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왕, 황제, 군주, 의회주의, 대통령제, 수상, 독재자 등등. 그러나 인류 역사상 어떤 통치제도나 어떤 지도자가 있던 시대에나 변함없이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만족하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기득권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전쟁에 없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얼 말하는 겁니까? 인간들의 정책이, 어떤 지도자가 어떤 훌륭한 왕이, 정치가가, 대통령이 인생의 행복과 참 안식을 주는 탑을 완성 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정부에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십시오. 지도자에게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입니다. 보십시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 시기, 질투, 다툼, 분쟁이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점점 더 심하게 지진과 각종 천재지변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인생들이 점점 완성할 수 없는 탑을 쌓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자신을 위해 쌓는 탑이 바벨탑입니다.(4절)
가) 우리 이름을 내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라고 했다면 정말 좋았을 겁니다.
나) 철학자 필로에 의하면 이들이 쌓았던 탑의 벽돌 한 장 한 장에는 자신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자만심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탑을 쌓는 최종 목적은 "우리 이름을 내고"입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니므롯의 교만한 얼굴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요 업적을 칭하여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 합니다. 그래서 동상을 만듭니다. 동상을 만들 때 얼굴 표정에 강조점을 많이 둡니다. 오늘 내가 이런 명예의 탑을 쌓고 있다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유명 탤런트들이 자살합니다. 명예와 돈이 없어서 자살한 거 아닙니다. 명예로 쌓던 탑이 무너진 겁니다. 연예인들, 스타들은요 언제 추락할까, 날마다 두려움에 떨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콜중독, 마약을 합니다. 나중에는 불안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까지 이릅니다. 명예, 권력으로 쌓는 탑은 절대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잘 진행되다가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름도 없이 명예도 없이 빛과 소금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자신께서 스스로 그렇게 오셨습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외모도 관심 받을만한 부분도 없고, 흠모할만한 외모도 아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가장 비참하고 가장 낮아지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4)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4절)
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르시고 정복하라”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악행입니다. 하나님께 거역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탑을 쌓습니다. 그리고 대를 쌓고 도망가는 사람을 지킵니다. 고대 앗수르의 많은 탑들은 지그랏이라고 부르는 거룩한 성이라는 뜻을 가진 4각형의 제단이 맨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지그랏이 곧 바벨탑의 원형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니므롯이 자신과 아들들을 신격화 하면서 쌓은 탑이 바벨탑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니므롯과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역을 한 것입니다.
나)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하는 부분, 아니 순종하지 못하는 부분,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우리는 이런 핑계를 댑니다.
a.나는 타고난 성질이 이래서, 타고난 성격이 이래서 죽어도 못 고쳐, b.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c.이 어려움만 해결되면. d.조금만 더 좋아지면(예를 들면, 내 집만 장만하면, 그러나 더 넓은 평수, 더 좋은 자가용)
그러나 이건 분명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입니다. 이렇게 불순종하면서 쌓은 탑들은
a. 돈은 많이 가지게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행복의 탑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b. 명예는 가질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행복의 탑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c. 권력의 탑은 완성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행복의 탑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d. 인생의 꿈은 이루지고 목표는 달성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행복의 탑, 영생의 탑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결론)
1. 오늘 행복하십시오. 지금 이 시간 행복하십시오. 그래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까지 오셔서 주신 축복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고난과 역경 어려움 두려움 무거운 짐 등등의 생활고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행복하기 위하여 잘못 쌓고 있는 바벨탑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