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대공원으로 유명한 광진구 능동에 38년 된 교회가 있다. 이 동네로 처음 이사 온 사람이 교회를 정할 때 믿지 않는 지역 주민이 권하는 교회이기도 하다. 바로 서울시민교회. 지난해 등록한 258명의 새신자 중 52%가 불신자였다. 성장 감소를 염려하는 한국 교회 현실에서 수평이동보다 불신자 전도가 더 많아 이례적이다. 6년 전, 여섯 번째 위임목사로 서울시민교회에 부임한 권오현 목사에게 목회 비결을 물었다. 장로님들은 담임목사 사역을 적극 도와주고, 담임목사는 부목사의 사역을 밀어주고, 목회자는 성도를 섬기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성도가 교회를 사랑하면 자연히 전도로 이어진다는 것.
서울시민교회는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로도 유명하다. 23년째 해오고 있는 장애인사역과, 5년 전 처음 시작한 학사 운영까지 지역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풀어가고 있다.
지역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자
서울시민교회는 장년 출석 1천여 명이 넘는 중형 교회이면서 신앙에 있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고신교단이다. 권오현 목사는 “이웃 사랑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고 말한다.
“옳다고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옳다고 생각되면 상황과 관계없이 실천합니다.” 장애인 사역을 23년간 해올 수 있었던 힘도 그것이다. 권오현 목사가 지역사회를 섬기는 원칙은 한 가지다. 지역의 필요가 있으면 하고, 지역이 잘 해내고 있는 것을 굳이 교회가 할 필요는 없다는 것. 4,5년 전 지역에 큰 문화센터가 네 군데 생기면서 오랫동안 해오던 문화센터 사역을 접었다. 유치원 사역도 국가의 보육료 지원이 늘고 지역에서 잘 감당해 나간다고 판단해 접었다. 대신 아기학교를 열었다. 48개월 이전의 아기가 엄마와 함께 다니는 곳이다.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한다는 사실이 입소문이 나면서 안산에서 이곳까지 아기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있다.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신앙의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
권오현 목사는 “대학시절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마음먹고, 경북대학교를 졸업한 뒤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 후 15년 동안 학생신앙운동(SFC) 간사로 캠퍼스 사역을 했다.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대구에 불꽃교회를 개척했다. 재정의 40%를 구제비와 선교비로 사용하는 건강한 목회를 지향하며, 11년 동안 250여 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2009년 서울시민교회의 청빙을 받았다. 90년대 SFC 대표 시절에 잠시 협동목사를 했던 인연이 있었다.
지방에서 목회를 하다 서울에 오니 모든 것이 문화 충격에 가까웠다. 집값은 말할 것도 없고 양복 가격도 단위가 달랐다. “개척 교회에서만 목회를 했던 터라 당회나 교회 조직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습니다. 사실 장로님들이 ‘목사가 잘하나 못하나 보자’ 이렇게 나오면 힘들잖아요.” 그러나 장로님들은 권오현 목사가 마음껏 사역할 수 있도록 힘써 도왔다. 권 목사 부임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후 예배를 성경공부로 바꾸었고, 헌금 광고도 하지 않는다. 전도 시스템도 바꿨고 그 외 많은 것이 바뀌었다.
2010년 시민아기학교를 개교하고, 학사관도 시작했다. 첫 해 13명이 입주했다. “대한민국은 집이 서울에 있다는 것이 특권입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오게 돼도 기숙사는 모자라고, 경제적인 사정으로 방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재 8호 학사까지 만들었다. 8가구 36명이 학사 생활을 한다. 처음 입주했던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게 되면서 직장인 학사도 현실화시키고 있다. 지방에서 취업해 올라오는 이들과 학사생활을 하던 대학생들이 취업 후 자립해 나갈 때까지 직장인을 위한 남·녀 학사를 운영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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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호 목사(왼쪽)와 ‘희망을 심는나무’ 직원들 |
장애인들의 삶과 함께 하는 교회
서울시민교회는 65세 이상의 지역 어르신을 섬기는 상록아카데미도 주중에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주력 사역은 장애인 섬김 사역이다.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을 위한 주일학교를 운영한다. ‘희망부’라는 이름의 주일학교에는 학령기 아동 27명과 청장년팀 61명이 나오고 있다. 이들을 위한 교사만도 78명에 이른다. ‘희망토요학교’는 복지관과 장애인학교가 문을 열지 않는 토요일 장애인들의 여가활동과 문화체험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4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희망의 학교’는 중증성인장애인들을 위한 주간보호시설이다. 지역 내 거주하는 성인 지적장애인 22명이 이용하고 있다. ‘희망일터’는 발달장애인 중심의 중증 장애인들에게 직업적응 능력과 직무기능 향상훈련 등 직업재활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호고용형태의 근로기회를 제공하여 건강한 직업생활을 통해 자립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직업재활시설이다. ‘(주)희망을 심는 나무’는 안전행정부 지정 마을기업으로 중증장애인을 고용해 인쇄미니화분, 캐릭터화분, 머그컵, 판촉물 화분 등 다양한 화훼상품을 제작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7년째 희망부 전담 사역을 하고 있는 김경호 목사는 “주일학교와 주간보호센터는 이미 하고 있었고, 권오현 목사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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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장 벽면을 작은 갤러리로 꾸몄다. |
오시면서 직업훈련센터와 마을기업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믿고 맡겨주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사역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이유는 희망부의 목표가 ‘지역사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늙어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좀 과격하게 느껴지는 목표이기는 하지만 지적장애인들의 경우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게 되고, 시골로 이사하게 되고, 시설로 보내지는 등 부모님들이 가지고 있는 부담이 무척 크다는 것. 김 목사는 “23년이라는 긴 시간 교회가 이들과 함께 해오다 보니 그런 부분들을 개인의 책임으로 짐 지우는 게 아니라 교회가 같이 해주어야 한다는 성도들 안에서의 공감대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힌다. 지적장애인 가정의 현실을 감안 교회가 주거시설을 마련하게 된 것. 단기 거주 같은 경우 10명의, 조금은 규모가 있는 생활시설로 24시간 돌봄이 가능한 곳이다. 그룹홈은 낮 시간에는 주간보호시설이나 직업재활시설을 이용해 주간 활동을 하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돌봄을 받게 되는 시스템이다. 올해 다섯 개 정도의 그룹홈을 계획하고 있다.
김 목사는 장애인 사역에 교회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적자원이 있고, 건물이나 재정에 대한 부분이 안정적이고 지역사회 안에서 이웃과 함께 할 것이고, 거기다 후원자들을 쉽게 연결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여건이 되는 교회가 조금씩만 분담하면 장애인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서울시민교회에는 장애인 부서와 관련된 인원이 160여 명 있다. 장기적으로는 희망일터에서 일하는 분들이 희망을 심는 나무로 이직해서 최저 임금 이상의 높은 급여를 받도록 돕는 것이 교회의 희망이다. 최저 50만 원 정도만 벌어도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다는 것. “30여 만 원의 그룹홈 비용을 내고 나머지 돈으로 부모님 용돈도 드릴 수 있습니다. 현재 23년 전에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희망부의 초창기 맴버가 희망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학교부터 직장까지 교회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셈이지요. 이제 그룹홈에 들어와서 자립하면서 평생을 교회와 함께 보내게 될 것입니다.”
서울시민교회는 서리집사 직분에 한해 신청도 가능하다. 지적장애인 청년 한 사람이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김경호 목사는 올해 희망부 안에서도 5명 이상의 서리집사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단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사업이 되고 전도가 되는 일에 나서야 할까? 아닐 게다. 꼭 필요한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는 일들에 당연히 교회가 나서야 한다. 23년 간 장애인 사역을 감당해온 올곧은 지구력, 아기학교와 시민학사를 통해 지역의 필요에 부응하는 추진력과 생명력을 서울시민교회는 갖고 있었다. 교회다운 교회는 많아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민교회와 같은 건강한 교회가 분리개척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무척 반갑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