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시평 17]문재인 전대통령의 사과문
지난 주, 누군가 카톡으로 보내준 글의 제목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문’이어서 화들짝 놀랐다. 황급하게 읽으면서도 ‘이것은 당신이 쓴 게 절대로 아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내용이야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점잖은 체면에, 개뿔) 이렇게 쓸 분이 아니었다.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다를까, 문정부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윤건영의 해명이 있었다. “전대통령과 전혀 관련이 없는 글”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폭정에 답답하고 분노하시는 마음이 가상의 글까지 만든 게 아닌가 싶다”를 덧붙였다.
가상의 필자(나는 ‘범인’이라고 쓰고 싶다. 당사자가 시비를 건다면 명예훼손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는 곧 밝혀졌다. (사)평화나무 이사장 김용민이라 한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누구인지 안다. 한때 ‘나꼼수’를 김어준-주진우와 같이 하고, 안철수를 민다며 막설을 하고, 어디선가 국회의원 출마까지 했던, ‘배 부른 돼지(외모로 말하면 안되지만)’같던, 목사라던가, 하여튼, 마음에 들지 않은 친구였다.
대신 쓴 듯한 사과문을 읽으며 불쾌했다. 그것도 몹시.‘문제’의 문 전대통령도 혹시 읽었다면 불쾌하다 못해 소송이라도 걸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식의 ‘장난’을 진보 또는 좌익 진영에서 하면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저쪽 보수 또는 우익 진영에 ‘가짜뉴스’ 공격의 빌미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그쪽이 밉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발목 잡힐 일을 왜 하는가? 물론 그 심정만큼은 알겠다. 현재의 폭정, 검찰독재가 밉기로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이다. 이런 총체적인 난국을 일거에 타파할 방법이 있다면 ‘내 한몸 불사를 지라도 뭔가 저지르고 싶다’는 생각이지만, 이런 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매주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국민가요’로 탄생한 노래도 제목목 <이XX>는 좀 그렇지만,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노랫말이 가짜뉴스가 아니고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다. <군사독재도/최루탄 정권도/별 쓰레기 정권/다 겪어 봤지만/나 살다살다가 민족 다 팔아처먹는/이런 새끼는 처음이라네//국민이 세운 이 나라/싸워서 지킨 민주화/평화통일 반전반핵/싹 다 말아처먹는/이 새끼 도대체 누구냐//미국 일본의 간첩새끼냐/젊은이들 전쟁터에 끌려가기 전에/이 새끼 끌어내리세>.
사과문을 읽으며 내가 불쾌한 까닭은, 어쩌면 김모 목사의 ‘가짜 사과문’이, 어찌 보면 현재의 우리 정치를 희화화戲畫化시키는데 한몫 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잡지 ‘타임TIME’ 표지 모델로 현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봤고, 또 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가 나돌아다니는 것도 본 적 있는데, 이 모두 가짜였다고 한다. 그 생활기록부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란’에는 <1. 재능이 없고, 성실하지 않으며, 교칙에 순응하지 않고 고집이 세며, 고자세임. 2. 또한 꾸지람하면 오만불손하며, 급우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통찰력이 너무나 적확하고 예리하지 않은가? 흐흐.
그렇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 사람들이 하도 ‘팩트, 팩트’하니까 팩트가 우리말 같아도, 스펠링이 fact인 영어이다. ‘사실’이라는 단어가 낯설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팩트’에 바탕을 두어야지 ‘카더라’식은 안된다는 얘기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마타도어, 흑색선전은 후진국이다. 제발 GNP 3만달러를 넘어선 수준에 걸맞게 언격言 格을 지켰으면 좋으련만,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시사평론가들에게 말한다. 미운 건 미운 것이나, 정도正道로 대처하라. 제발 심각하고 고질적인 상황이나 현상에 대해 당신들 잘난 맛으로 얍삽하게 함부로 주둥이 놀리지 마라. 탁월한 김어준의 턱없이 웃어대는 웃음소리도, 유시민의 활짝 웃는 모습조차 괜히 싫어지고 미워지기 시작한다. 제발 적선하고 진지해라. 옛날에는 펜치로 혀를 빼는 형벌도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