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 Joanne Poe의 에피소드
“미스 포 Miss Joanne Poe(Turza Joanne Poe, 1932. 9. 17∼2008. 4. 12.)”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동산기독병원(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에서 일평생을 환자를 치료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바친 미국인 선교사입니다.
한국에 온 날짜 1962. 9. 12와 한국을 떠난 날짜 1992. 10.가 바로 대구 동산기독병원에서 근무한 날짜와 같습니다. 그만큼 오직 대구를 사랑한 것입니다.
원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서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 하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후에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물리치료학을 전공한 후 선교사가 되어 미혼의 몸으로 한국에 와서 평생을 혼자 살면서 선교사로 지낸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운 분입니다.
어린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셨고 늘 다정한 친구로 대해 주셨습니다. 한국을 떠나실 때는 아끼시던 물건들을 제게 물려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미스 포 선생님께서 물리치료실을 시작할 때는 우리나라에서 서울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최초로 동산기독병원에 물리치료실을 개설하셨는데 얼마나 가난하고 자원이 부족하였는지 병원에 쓰지 않는 작은 탁자 1개, 의자 2개, 적외선 치료용 스탠드를 하나 들여다 놓고 물리치료실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학교 운동장에서 길게 줄 서서 옥수수빵을 배급받아 먹던 때입니다.
그분은 동산간호대학(계명대학교 간호대학의 전신)의 학장도 잠시 겸임하셨는데 그 당시만 해도 외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은때여서 하루는 학교 엘리베이터를 신입생들과 함께 탔는데 미스 포 선생님을 처음 본 학생이 그랬답니다.
“엄머야, 이 사람 남자가 여자가?”
“저, 여잡니다, 남자 아닙니다!”
포 선생님이 키도 크고 서양인이어서 남자로 보였나 봅니다.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여학생과 친구들이 기겁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 요즘은 유럽에서도 한국말을 하고 또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길을 가거나 기차나 트램이나 버스 안에서도 한국말을 하면 쓱 돌아보며 웃거나 아예 대놓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굉장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