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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6일(월)
* 시작 기도
주님...
모든 동식물과 사람 그리고 심지어 천사들에게도 생명이 있습니다.
식물은 식물의 생명이 있고 소는 소의 생명이 있습니다.
사람도 사람의 생명이 있고 천사도 천사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식물은 식물의 생명으로 살다가 식물의 생명으로 사라집니다.
동물인 소는 소의 생명으로 살다가 소의 생명으로 죽습니다.
소가 말의 생명으로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두 차원의 생명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지요.
육신으로 태어날 때는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아담의 생명으로 죽는 이들이 허다합니다.
허나 그런 이들은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끝은 결국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 언약에 근거하여 택함 받은 이들은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생명이 바뀌어 아들 안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그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의 패턴입니다.
이 종도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복음을 통하여 영생을 얻고 아들의 생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하오니 주의 긍휼을 베푸사 이 종을 덮으소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복음에 진력 중인 사역자들을 붙드시고 성령충만케 하소서.
비가 많이 내리고 있는데 오늘 이곳 베트남을 다니러 오는 주의 사랑하는 이들을 주의 품에 품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4:1-12
제목 : 행위적 열심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믿음으로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천이나 되었더라.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 나의 묵상
베드로가 솔로몬의 행각에서 설교를 할 때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원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왔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을 가르치는 일 특히 예수 안에 부활이 있다는 부활의 도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하였다.
그들을 잡았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그들을 다음날까지 옥에 가둔 채로 두었다.
그러나 솔로몬 행각에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에 믿는 자의 수가 많아져서 남자만 5,000명 정도가 되었다.
다음날이 되어 산헤드린 공회가 모였는데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를 비롯하여 요한 알렉산더 등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들은 두 사도를 공회 가운데 세우고서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앉은뱅이 고치는 일을 행하였느냐고 심문하였다.
그 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공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러분이 묻는 것이 오늘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행한 선한 일에 관한 것이냐?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낫게 되었는지를 알기 원한다면 여러분들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이 고침을 받은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완전히 나아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예수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어떤 이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우리가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들에게 부활의 도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그 다음날 심문하고자 하였다.
부활의 道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이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에 대하여 대단히 열심 있는 자들이다.
이들의 열심이란 대부분 육신에 관한 일이요, 육에 속한 일 곧 땅에 속한 일들이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모습이 바로 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빌 3:5-6) 나는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갈 1: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이랬던 바울이 이렇게 고백한다.
(롬 10: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또한 이 땅에 많은 종교와 신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다.
(고전 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이와 같이 땅에 속한 신을 섬기는 모든 종교의 특징은 열심히 하라고 끝없이 독려한다는 것이다.
땅의 종교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할 수 있는 유대교 역시 육신의 일에 관한한 최선을 다하여 열심을 낼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열심을 내라고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것은 결국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을 낸다 한들 그것은 주를 위한 열심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열심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파고 또 파도 죄밖에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선함을 찾을 수가 없다.
(롬 3:10, 12-18)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런 자가 열심을 낸다면 그 열심은 남을 해치고 죽이는 열심밖에 되지 않는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바로 이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을 내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열심이 아니었다.
결국 자기 자신이 높아지는 열심 곧 자기주장의지의 최고봉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주의 복음은 이런 육신의 열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원하신다.
그것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12절에서도 유일하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다른 것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직언하고 있다.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셨더라.
베드로와 요한이 전한 부활의 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몸으로 무엇을 열심히 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주의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기사가 나온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음식을 대접하기 위하여 열심을 다한다.
그 열심이 지나치다 못해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마리아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예수님께 가서 자기는 주를 위하여 음식을 만드는 일에 바쁜 것이 보이지 않느냐고 하면서 마리아더러 나를 좀 도와주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이 때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눅 10:41-42)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열심인 사람에게 마리아는 놀고먹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무엇을 하면서 놀고먹느냐가 중요하다.
마리아는 주님이 보실 때 가장 좋은 것을 택한 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면 바로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과 함께 사귐을 갖는 영생이라는 말이다.
이 마리아는 후에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주님의 장례를 예비하기도 하였다.
이는 그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연합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육신의 열심을 내는 것도 참 귀하다.
그러나 그 열심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물론 자기 의가 드러나면 그 즉시 십자가로 달려가 자기 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된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오직 예수를 드러낼 것이다.
(롬 6:11-14)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나는 육신으로 땅에 속한 일에 열심 있는 자였다.
열심에 관한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 있는 자였다.
나는 자기 의가 무엇인지, 그 의가 드러나는 것이 죄의 세력의 계략이라는 것도 몰랐으며 그저 주의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을 다하였던 것이다.
이런 열심을 다하면 할수록 사람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사람을 판단하게 되며 나만 잘 난 자처럼 되고 마는 것이었다.
이처럼 나는 복음도 생명도 알지 못하고 그저 무엇이든 주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최선을 다해 열심을 내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아들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 16:2-3)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나는 정말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저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요 6: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일은 몸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 곧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연합하는 것이며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를 먹고 마시는 것이 곧 주의 일이다.
참된 양식은 주님의 살이요 참된 음료는 주님의 피이다.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이야 말로 최고의 믿음이다.
이 믿음을 통하여서만 구원이 있다.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셨더라.
여기서 ‘다른 이’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구원자를 말하는 것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한 어떤 사역까지 총괄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만이 생명을 가져다 준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영원한 것과 유한한 것, 썩지 아니할 것과 썩을 것, 위로부터 태어남과 아래로부터 태어남, 하늘과 땅, 아들의 생명과 아담의 생명 등 이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이 힘이다.
이것이 참된 지식이요, 지혜다.
나는 이것을 분별할 줄 몰랐기 때문에 땅의 것, 썩어질 것, 아담의 생명, 쇠락의 법칙에 적용을 받는 것에 매몰되어 그것이 전부인 양 착각 속에서 살아왔었다.
나는 빚을 진 자이다.
내가 바로 이렇게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그들과 갈등을 빚어 왔던가?
목사가 되어서도 잘못 가르쳐 왔던 나로 인하여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걸어갔다.
그런데 나는 복음을 통하여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왔음을 깨닫고 바른 생명의 길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그릇된 길, 넓은 길을 고수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빚을 졌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이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 하더라도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가기 원한다.
외쳐 부르짖지 않아도 말씀으로 주님과 깊은 교제를 통하여 주님의 품속에서 살기 원한다.
그곳이 주의 영광이 빛나는 곳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뜻은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것 곧 영생이 맞지요?
몸으로 열심을 내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자기 의가 아님이 확실하지요?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하며 만나기를 원하는 자에게 주님께서 다가와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것은 오직 말씀을 통하여 이루시는 주님의 뜻이오니 그 말씀 앞으로 나아갈 때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령의 은사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기보다 날마다 말씀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는 자 되게 하소서.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복음이면 족하나이다.
오늘도 주님의 멍에를 지고 가는 한 마리 당나귀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