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고 그리운 부모님.
너무 착하고 좋으셨던 아버지는 1990년에, 그리고 북한 여성이어서 그랬는지 성향이 활달하고 사교적이었던 어머니는 2020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 혼자서 사신 해가 서른 해나 되네요. 그게 왜 이제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많이 힘들고 외로우셨겠다는 생각이 어쩌자고 이제와서 드는지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제 나이가 어느 사이에, 잠시 한여름날 어느 오후에 짧은 단잠을 자고 난 것만 같은데 제 나이가 벌써 66세를 넘어섰습니다. 제가 1958년에 태어났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어제만 같습니다.
잠시라도 뒤돌아보면 어릴 적 뛰어놀던 제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대구 동산기독병원(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전신)의 아름다운 사택지, 온갖 꽃이 만발한 곳이었습니다. 당시 병원장님이셨던 Dr. Moffette 선교사님의 아내이셨던, 꽃을 좋아하시던 Mrs. Moffette께서 온 정성을 다해 가꾸셨던 아름답고도 대단히 넓은 정원이었습니다.
사과나무, 감나무가 온 데 널려 있었고 빨간 사루비아는 지천이었습니다. 키가 커다란 칸나와 맨드라미도 활짝 피었고 봄이 되면 향기로운 라일락꽃 향기가 가득한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가을이 되어 빨간 감 홍시가 주렁주렁 매어 달리면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온종일 감을 따느라 정신이 없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 꿈결같이 아름답던 날들이 몹시도, 몹시도 그립기만 합니다.
아버지가 천국으로 떠나실 때의 제 나이가 서른둘이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도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그만큼 그리운 분이십니다.
어머니가 떠나고 난 뒤 이제 4년이 지나갔는데 해가 갈수록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커져만 갑니다. 아들로서 어머니의 외로운 삶을 잘 위로해 드리지 못했다는 후회스러운, 송구한 마음에서입니다.
언제까지 제가 이곳에 머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요단강 저편 언덕에서,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 주님 품 안에서 그리운 성도들을 다시 만날 때 보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날이 참 많이도 기다려집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닙니다. 다만 나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는 일터일 뿐입니다. 이 일을 다 한 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