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석고]
꽤 여러날을 기다린 후에야 설악동 방가로에 머물수 있게 되었다
해마다 찾아오는 설악산 이지만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모습이 새롭고 웅장하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고, 만산홍엽이다.
집에서 출발할때는 아직 노염(老炎)이 기승을 부렸는데 홍천을 지나 신남에서부터 체감온도가 달라지고 현리에서 한계령을 지나 고성 설악동에 오니 완연한 겨울이다
최신식은 아니라도 필요한 시설은 갖춰놓은 자그마한 이 방가로는 자주 찾아오는 나의 쉼터다. 경쟁할일도 없고, 빨리 처리해야 할 업무도 없지만 문득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아! 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젊은 기분으로 씩씩하게 고행의 길을 떠나온다.
설악동은 이런 산세 영향으로 어둠이 일찍 찾아든다.
보랏빛 어둠속에 병풍처럼 솟아잇는 울산바위가 태고적 형상을 한 채 신령스럽게만 보인다. 바람부는 쪽으로만 기울러진 바람부리 전나무 군락은 흡사 수십명 무희를 보는듯 기이하고도 정답다.
이렇듯 설악산은 변하 무쌍하게 자신의 일부를 떼어주고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묘한 힘이있다.
입실하기전 안면이 있는 할머니 두부집에서 먹은 고소한 손두부와 막걸 리가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채 든든하게 남아있고 고맙게도 저녁 끼니를 대신해 준다.
두려울 만큼 긴 설악의 겨울밤을 위해 늘 동반 하는것이 있다. 예쁜 와인잔과 스카치 위스키, 그리고 램프다 램프에 불을 밝히자 작은 불길은 서서히 어둠을 삼켜버린다. 어둠이 밀려간 자리에 도둑처럼 스며든 찬바람 내음이 싱그럽다.
화려한 휴가를 즐기는 호사보다 때론 이렇게 단순하고 한적한 어디엔가 한 귀퉁이 쯤 고독함이 남아있는게 좋다.
내게 많은것을 내어주는 이 산악의 밤을 위해 편한 마음으로 육신을 풀어 놓는다
몇 시간전 설악동을 오기위해 여행가방을 꾸리며 기대와 염원을 함께하였다
지난해 겨울 한계령에서 만난 안개 쇼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하고.....
자연의 숨은 원리를 인간이 감히 알 수 있을까마는 어쩜 신의 실수로 인하여 재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해보았다
지난 겨울 그날은 참으로 기분좋은 날이었다. 평생한번 볼수있을까,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었던 운이 좋은 날이기도 하다.
안개 쇼가 펼쳐진 순간 숨이 멎을것 같았다. 눈을 의심하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스펙터클한 장관은 분명 현실 이었다
한계령 아래 모든 것들, 산과 나무, 계곡이며 건물들이 일제히 안개에 점령 당한채 숨죽이고 있었다. 오직 살아있는 것은 한계령 고갯길을 알리는 수은등만이 희미한 빛을 발하며 신음하고 있는 듯했다.
산위에서부터 떠돌이 바람이 몰고온 안개의 위력에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순종스레 복종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보는 광활한 안개바다! 이 난폭한 점령군은 어디에서 왔을까!
신이 세상 끝에 숨겨놓았던 가장 귀하고 위대한 모습이 찰라에 펼쳐졌던 것일까, 언어보다 더 오래된것이 그림이거늘 어떤 언어로 표현해도 궁색할것 같아, 한폭의 거대한 수채화 였다고 해야할것 같다.
붓으로 그릴수 없을 만큼 위용스럽고 아름다운 장관을 다시 볼수있을까! 해마다 설악동을 찾는것은 그날의 안개쇼 장관을 다시 만나볼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자연은 이해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다. 바람과 젖빛 안개가 빚어내는 파노라마! 은밀하고 기이한 산이 키워내는 수 많은 생명들 이모두가 장대한 예술품이다
어느새 달이 떠올라 울산바위에 걸렸다 달빛이 새어든 방안은 램프를 밝히지 않아도 우련하다. 워낙 고적하여 스카치 위스키 한잔을 마시고 서야 베란다로 나갈 용기가 생겼다.
나무가 있는곳엔 그들만의 삶의 풍경이 있다.
싸늘한 달이 풀어놓은 은분을 입은 전나무들이 마치 설화석고처럼 변했다. 바람이 건드릴 때마다 나무들은 저마다 하프, 바이올린, 플릇, 바순 같은 악기가 되어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불협화음을 토해낸다.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가장 무도회다.
저마다 이름이 붙여진 생명체들은 이 냉혹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는 지혜를 쌓게 될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이 다시 불려질 기다림의 인내도 배우게 되겠지.
이산 저산 떠돌던 바람 무리가 광야를 찍는 굉음으로 곧 이 산악에 닥칠 겨울 독재를 암시한다
산은 이제 환(幻)을 위해 침묵한채 한동안 자유로워 지겠지
잊지 않는것, 기억하는것도 버려둔채........
첫댓글 오~언제 이런글을?!....
주무실때요 ㅋ
살아 있음을 느끼고 오셨군요...
고객님!최고!
감사함다~
히야... 연재소설쓰셔도 잼날거 같아요.. 넘 재밌게 읽었습니다. ^^*
개봉박두 ㅋ
에 이
긴글은 않읽는데
글귀가 좋아 다 읽었네요
좋은시간 보내고 와요^^
애독자 고객님 감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