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체 역사 장르라는게 대외적으로도 대단히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80년대 중반 복거일씨의 ‘비명을 찾아서’라는 걸작이 소개되었고 그후에 사실상 단막극이나 꽁트 수준으로만 근근히 이어가다가 이문열씨의 태작중에 하나인 연작 ‘우리가 행복해지기 까지’ 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윤민혁씨의 ‘한제국 건국사’라는 걸작으로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대체 역사물이라는게 일반적인 역사물, 즉 어떠한 장르에서 실패한 작가가 도피처로 삼는 장르와는 차원이 다르게 어려우면서 의외로 독자의 관심을 끌기가 어려운 장르이기도 합니다. 일단 ‘변환된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 하여야 하고 또한 무리하지 않게 바뀌어진 역사에 대해서도 서술하면서 나름의 주제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 사실 보통의 역사 소설 자체도 이런 쪽까지 생각해서 쓰는 분이 극히 드물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죠. 김경진씨가 쓰신 명량 해전 대첩기 ‘격류’의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참패해버린 경우를 보시면 아실겁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대체 역사물이란 ‘순수한 대체적인 역사물’로서의 문제보다 다른 장르에 의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거일씨의 소설 자체도 80년대에 대한 오마쥬적인 사회소설 및 성장소설이라서 의외로 대체 역사물로서는 ‘한제국 건국사’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이문열씨의 작품은 ‘진보에 대한 조롱과 왕도 복고적인 추억’을 한제국 건국사는 타임슬립이라는 sf 적인 시작에 역사 밀리터리 장르 (물론 윤민혁씨의 이전 작품들의 연장선입니다만)로 나가는 편이죠 ( 물론 저자가 밝힌 3부의 이야기 진행은 대단한 디스토피아라고 합니다만)
결론적으로 한국의 대체 역사물의 경우는 이제 막 자리를 잡은 편이라고 합니다. 다만 한제국 건국사에서 보여준 여러 모습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으로 인해서 역사적 자위행위로 가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사실 한제국 건국사에서는 흔히 생각하듯이 그러한 자위행위적인 모습은 대단히 드뭅니다. 1부에서 미래의 주인공 일행이 도착하더라도 병인양요 당시의 프랑스군의 여러 만행들은 계속되는 거고, 2부에서의 신미전쟁에서도 강화도의 함락과 어재연의 전사등의 모습과 함께 ‘일본’이라는 아시아의 중요한 국가의 사실상의 탈락으로 인해 전반적인 아시아 민족주의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여흥민문 자체와 청국 세력이 상존해 있는 이상 조선의 운명 자체가 밝을 수는 없습니다. ( 작가 자신도 3부의 디스토피아가 바로 이 원인으로 진행된다고 밝힌 바 있죠)
오히려 진짜로 대체 역사를 통한 역사적 자위행위는 이문열씨의 연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발표된 중편부터 이미 고증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분단 일본’을 통한 한국좌파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과 함께 왕도 복고적인 역사 인식은 오히려 최근의 여러 ‘정형화된 대체 역사 환타지물’의 진정한 원조라고 볼수 있죠.
개인적으로 대체 역사물 장르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 자체는 대단히 환영하는 편입니다만 최근의 여러 측면에 대해서는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밀리소설 장르 보다 더 빨리 쇠락해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복거일-이문열’ 라인이 겪은 것처럼 장르 자체의 쇠락을 가져올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쪽에서 이 방면의 대가는 해리 터틀도브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의 분단 미국 연대기- 미국판 1차 대전-아메리카 제국 연작은 남북전쟁의 결과가 바뀜으로서 벌어지는 미국 분단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후기로 갈수록 가상인물들이 많아지는 흠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에서 실제또는 가상 인물들이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 와중에서 현실의 역사와는 조금 다른 유토피아 ( 미국 사회주의 역사의 새로운 시작)와 일부 자위행위 역사와는 달리 흐름 자체의 변동은 그렇게 없는 ( 1차 대전의 독일 승리 후에 미국 남부에서 인종주의적인 파시즘 정권의 도래) 모습을 그리거나 최근작 ‘룰드 브리태니커’에서 보여주는 세익스피어에 대한 오마쥬가 돋보입니다.
한국의 대체 역사물도 이제는 진정한 역사물의 형태가 되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체 역사물=자위행위물로 보는 작가뿐 아니라 독자도 문제겠죠. 역시 어느 장르의 발전은 독자의 지적 풍토도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제 개인적인 느낌일까요?
첫댓글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대체역사물이 점점 자위행위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조격인 한제국 건국사는 어떨지 몰라도 그 영향을 받은 작품들의 경우 말도 안되는 황당한 작품들이 많지요. 예를 들어 '1904대한민국'같은 것을 보면 2004년의 한국 전체(!)가 1904년의 조선으로 깡그리 타임슬립을 한다는데서 시작합니다.
밑에도 답글을 달았지만...어찌보면 새로운 장르의 소설들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겪게되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상황일수도 있고,국가상황 자체가 어렵다고 인식이 되어지는 시점에서는 역사적 자위행위가 많아집니다.어찌보면 국가내 상황을 다른곳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그러한 책임전가론이나(그러고 보니 김진명씨 "미
국 음모론"에 관한 소설 또 썼더군요)영상매체에 익숙하고 역사의식이 상대적으로 짧은 세대에 접하기 쉬운 방법을 택한것인지도 모릅니다.그래도 독자적으로 꾸준한 발전이 있기를 바래야겠죠.그나저나 김민수씨 끝나지 않은 전투 4부 언제 나온답니까;;;;;기다리다 진 빠지겠는....
첫댓글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대체역사물이 점점 자위행위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조격인 한제국 건국사는 어떨지 몰라도 그 영향을 받은 작품들의 경우 말도 안되는 황당한 작품들이 많지요. 예를 들어 '1904대한민국'같은 것을 보면 2004년의 한국 전체(!)가 1904년의 조선으로 깡그리 타임슬립을 한다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 후로 벌어지는 사건들 보면 정말 황당 그 자체지요. 서점에서 얼핏 보니 조선 왕세자가 대한민국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도쿄에 야간강하를 하는 장면까지 나오더라구요. 한국의 대체 역사물은 이미 그런 식으로 자위행위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그런 걸 더 즐기려는 독자들 조차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 외국의 대체 역사물 자체가 재대로 소개되지 않은 풍토에서 올바른 발전을 기대한다는게 힘든 일이죠.. ( 사실 이미 환타지쪽에서 대체 역사물은 전성기를 지났다는게 공론입니다.-비극이죠.)
밑에도 답글을 달았지만...어찌보면 새로운 장르의 소설들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겪게되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상황일수도 있고,국가상황 자체가 어렵다고 인식이 되어지는 시점에서는 역사적 자위행위가 많아집니다.어찌보면 국가내 상황을 다른곳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그러한 책임전가론이나(그러고 보니 김진명씨 "미
국 음모론"에 관한 소설 또 썼더군요)영상매체에 익숙하고 역사의식이 상대적으로 짧은 세대에 접하기 쉬운 방법을 택한것인지도 모릅니다.그래도 독자적으로 꾸준한 발전이 있기를 바래야겠죠.그나저나 김민수씨 끝나지 않은 전투 4부 언제 나온답니까;;;;;기다리다 진 빠지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