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주일학교에서는 인간의 영적인 성숙도에 맞추어 하나님을 가르친다. 어린이가 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치다 보니 손가락을 옆으로 흔드시는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강조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많을 때라 아무래도 벌주는 하나님이 어린이의 마음에 제일 많이 자리 잡게 된다. 이 또한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엄마에게 사람이 어디서 생기냐고 질문하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든지, 새가 물어다 주었다든지, 아니면 엄마 배꼽에서 나왔다든지 나이들 수준에 맞게 대답해주는 것과 같다. 어느 누가 그런 엄마를 엉터리로 대답했다고 탓하겠는가? 또 이런 딸에게 만약 엄마의 성기부분에서 아기가 나왔다고 사실 그대로를 말해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일 학교에서는 아무리 해도 로마서의 이신 칭의의 교리를 알아듣도록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사람마다 자기 고유의 신관을 갖게 되는 과정을 각자가 다 다르다. 아무런 외부적 강요 없이도 의심 없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 어떤 구도자적 갈등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자, 기도나 소원도 하지 않았는데 성령 체험을 하는 자, 성경 공부 중에 기독교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사람 등,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는 각 신자마다 갖는 독특한 경험이다. 시간적으로도 순간적으로 믿는 사람, 점진적인 사람,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한 사람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일단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된 자는 자기가 받은 그 구원이 너무나 확실하고 은혜로워 남은 평생 동안 복잡한 다른 신관에 대해 연구, 분석, 성찰할 생각도 없이 지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밝힌 대로 다 이루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