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31일 검 비봉 논객이 안 철수 양말에 대해 올린 諧謔的인 풍자글로서 우리의 옛시절까지 돌아보게 하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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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아이들끼리 욕을 할 때, “거지 발싸개 같은 놈“ 의 발싸개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20세기 소련이나 중국의 병사들이 발싸개를 사용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보면서, 비로소 ‘저것이 발싸개로구나’ 신기했던 적이 있다. 우리네 어려운 성장기에 양말을 두세 번씩 꿰매어서 신었어도. 발싸개는 말로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국 양말의 품질은 매우 우수하다. 밑창이 닳아서 떨어질 때까지 발목이 늘어지지 않고 팽팽하다고, 외국인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중국인들은 잘 만든다고 만들어도, 한국의 양말이나 넥타이의 품질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이번에 수천 개의 미디어에 실렸던 ‘안철수의 양말’ 사진은 우리네 양말 제조기술의 일면을 보여준다. 지면에 닿는 부분이 닳기는 했어도, 검은색 원사 부분만 닳았고, 투명에 가까운 질긴 나일론 원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차라리 100% 면양말이었다면, 예쁘게 구멍이 나서 효과를 극대화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품질의 나일론 양말의 능력은 경이롭다. 감옥살이를 하던 죄수가 나일론 양말의 원사를 풀어서, 철창 쇠막대를 끊고 탈옥에 성공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일화도 있다. 나일론은 그만큼 질기다는 뜻이다.
가난한 시절에, 자녀들이 다 잠든 고요한 밤에 어머니들이 손가락을 찔려가면서 꿰매주던 면양말, 아침에 받아서 신어볼 때, 두툼하게 보강된 뒤꿈치 부분에서 전해오는 폭신한 이질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양말 디자이너들은 수작업으로 예쁜 뒤축을 댄 뉴아이템을 구상해보기 바란다).
집집마다 다들 꿰매서 신는 귀한 양말이니, 거지들이 양말을 얻어 신기는 어려웠다. 엄동설한에 발이 얼지 말라고 넝마 조각으로 여러 겹 싸고 묶은 발싸개를 신고 다녀야 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요즘 같은 시대에 ‘양말 퍼포먼스’는 좀 그렇다. 김건희 여사가 서문시장에서 양말 500켤레를 구매해 어려운 노인들에게 돌렸다는 뉴스는 훈훈했으나, “1500억 기부를 하느라고 이렇게 절약했다”고 입 벌리며 웃는 모습은, 뭔가 부잣집 도련님이 지어보이는 억지웃음 같아서 보기 거북하다. 차라리 지지자의 양말 선물을 받고서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50만 켤레 선물하겠습니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북풍한설의 겨울을 지나면서, “올 추위에 거지들 다 얼어 죽었겠구나.”
그러나 개울물 졸졸 흐르는 봄이 오면, 개울에서 빨아 온 옷들을 줄에 너시면서,
“참, 신기하기도 하지, 다 얼어죽은 줄로 알았던 거지들이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돌아온다니까.”
그러길래, 각설이 타령의 첫 소절이,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시작하는 모양이다.(음악은 Let It Be 하모니카 연주)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