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金永俊 (1901-1956)】
"1942년 5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 편입 후 초모활동 참여"
1901년 7월 3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대동강면(大同江面) 정백리(貞栢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평양부(平壤府) 수옥리(水玉里)로 이주하였고, 평양소학교(平壤小學校)를 졸업하고 생업에 종사하였다. ‘광복군 제2지대 명부’에는 독립운동 투신 이전의 직업이 상업으로, 특기가 석공(石工)으로 기재되어 있다. 같은 대동군 출신으로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대원인 장경숙(張京淑)이 부인이다.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上海)에서 거주하다가 윤봉길(尹奉吉) 의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동함에 따라 가족과 함께 중국 내륙을 옮겨 다녔다. 1941년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서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입대하였고, 1941년 6월에는 중국 제34집단군 전시간부훈련단(戰時幹部訓練團) 내에 설치된 한국청년훈련반(일명 (韓靑班))에서 훈련받았다. 광복군 제5지대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가 1941년 1월 광복군에 편입되어 조직된 단위부대였다. 초모공작과 적후공작을 전개하며 병력을 확대해나갔지만 지대장 나월환(羅月煥) 암살 이후 1942년 4월, 새로 개편된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었다.
1942년 5월 이래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제3분대원으로 일본군 후방에서 심리전·선전 선동과 초모활동(招募活動)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군이 미 OSS(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 합작으로 독수리 작전(Project Eagle) 훈련이 실시됨에 따라 OSS 훈련을 받았다. 국내로 진입해 대일첩보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독수리 작전’ 을 준비하기 위해 시안 근교 두취(杜曲)에서 약 3개월간 유격·폭파훈련과 암호통신 교육을 이수하고, 국내진공을 대기하였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으로 독수리 작전 계획은 무산되었으며, 광복 이후 일본군의 무장해제, 한인교포의 신변 보호와 귀국을 지원하였다. 그러다가 1946년 6월 제2지대장인 이범석(李範奭)의 인솔 아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