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요하네스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1886~1965)】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
폴 요하네스 틸리히 Paul Johannes Tillich 파울 요하네스 틸리히 (1886~1965)는 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교 신부이다.
틸리히는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신정통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 (Rudolf Bultmann)의 영향을 받았다. 불트만은 현대의 남성과 여성에게 우주의 외계인을 그리게 하는, 하늘의 도시나 삼층적 우주 같은 신화적인 용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트만은 그런 신화적 용어들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성서와 성서 이야기에 나타나는 고유한 구원의 메시지를 함께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현대적이고 철학적이며 심리학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다시 쓰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현대의 남성과 여성은, 신화적인 용어가 더 이상 전달하지 못하는 기독교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불트만은 그의 신학적 저술에서 기독교 메시지의 신화적인 표현을, 새롭고 실존적인 해석으로 교체시키려고 시도하였다. 틸리히는 성서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를 요청하는 불트만의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틸리히의 접근은 고도로 조직적이다. 그는 그의 주저 '조직신학'의 서문에서 "변증신학의 관점에서 구성되고 철학과 지속적 상호관계를 수행하는 신학 체계의 방법과 구조를 제시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라고 썼다. 그는 "신앙은 현대문화를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고, 현대 문화도 신앙을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문화와 신앙이 서로 상응하는 것을 추구했다. 결과적으로 틸리히의 신학은 변증적인 경향을 보이며, 평범한 일상적인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신학적 답변을 추구한다. 이것은 그의 대중적인 인기에 기여했는데, 왜냐하면 그런 경향으로 인해 그의 주장이 신학 비전공자인 독자들에게 쉽게 수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폭넓은 관점에서, 계시는 종교의 근원으로 이해된다. 틸리히는 '신앙이 가장 높은 수준의 이성'이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언급을 확인하면서, 계시가 이성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계시와 이성의 화해를 추구했다. 인간 주체 경험의 두 축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실재와 존재를 넘어서는 존재 자체이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은 그를 부인하는 것이다.
틸리히는 상징이 신앙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신앙은 궁극적으로 관심하는 존재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가장 효과적으로 위협하고 그분을 죽음에로 몰아갔던 것은 그분의 시대의 "종교적 순응주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교회 안에서도 다르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교회들 역시, 비록 그들이 오는 세대에 대해 증언하고 시간과 공간 안에서 오는 세대를 대표하고 있을지라도, 이 세대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은 이 세대의 부패와 그것의 선과 악의 혼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의 역사는 교회의 부패에 대한 끊임없는 증언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순응하지 말라는 바울의 경고는 또한 교회에도 해당됩니다."
"모든 심각한 의심과 진리에 대한 실망속에는 아직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리에 대한 당신의 불안을 너무 빨리 해소하려는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마십시오. 비록 그 유혹자가 당신의 교회이든 당신이 속한 당파이든 아니면 당신의 부모때부터의 전통이든 간에 정말 당신 자신의 진리가 아니면 거기에 유혹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예수와 함께 갈 수 없다면 모든 심각함으로 (진지한 회의주의자였던)빌라도와 함께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