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계가 놀란 ‘코로나 총선’
이제 좀 어깨를 펴게 될 것인가. 오랜 세월 가슴 속에 숨어있는 중진국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긴장 속에 코로나 선거가 끝나자 한국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대다수 국민이 같은 날 투표장에 나가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정면으로 거스른 ‘코로나 총선’을 그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정치인들과 선거업무 종사자들은 투표율이 낮아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유권자들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66%를 넘어선 투표율은 28년 만에 최고였다. 길어진 투표용지를 손으로 개표해 말썽은 없을지 걱정도 했지만 기우였다.
격리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도 투표가 허용되어 안팎의 경계심이 더 컸다. 투표가 끝난 뒤 별도의 공간에서 이루어졌지만, 투개표 종사자들에게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손 소독과 비닐장갑 착용 같은 치밀한 방지책이 있었다 해도, 마음에 거리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가 그들의 입김이 닿은 투표지 만지기와 용품교부 업무를 좋아할 것인가. 두고 볼 일이지만, 어제 오늘 신규환자 수에 변동이 없어 시름을 덜게 되었다. 그 어려운 일들을 기꺼이 맡아준 선거 종사자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번 선거는 특히 해외에서 뜨거운 관심을 가졌었다. 47개국에서 전국선거 국민투표 같은 국사가 연기되었으나 한국에서는 거리낌 없이 시행된 탓이다. 몇몇 나라에서 선거 후 감염이 확산된 사례가 있어, 각국 지도자와 정치인 언론인들은 왜 그런 모험을 하려 하느냐는 의심의 눈길로 지켜보았다. 선거결과보다는 당일 상황에 관심이 컸던 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례적인 것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성명이었다. 그는 15일(현지시간) 발표된 성명에서 먼저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국이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른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민주적 가치에 대한 한국의 헌신과 자유롭고 투명한 사회는 코로나 19와 싸우는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이며, 한국이 성공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관리한 것은 전 세계의 본보기”라고 평가했다.
영국 BBC 방송은 15일 현지 생방송을 통해 “대혼란을 걱정하는 우려의 소리도 있었지만 현장은 차분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1미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참을성 있게 차례를 기다렸다. 감염공포도 투표장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 했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격리생활 중인 유권자들의 투표상황도 관심 깊게 보도됐다.
미국 CNN은 “전쟁 중에도 선거가 연기된 일이 없었던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역시 연기사유가 되지 않았다.”고 보도했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염병 확산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11월 미국대선을 비롯한 여러 나라 선거에 하나의 지침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스탐파는 ‘마스크 쓰고 치르는 선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이 전 세계가 배워야 할 방역모델이 된 것처럼, 코로나 사태 속에 어떻게 선거를 치러야 할지를 보여준 모델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중동지역 유력지 ‘알자지라’는 확진자에게 투표가 허용됐다는 보도를 인용, 비상사태 속에서도 총선을 포기하지 않은 정부와, 모든 유권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 ‘한국의 도전’이 놀랍다고 보도했다.
2020년 벽두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면서 어느 나라에도 척을 지지 않고 방역에 성공한 한국 의료시스템은 지구촌 언론과 네티즌의 보도와 통신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어 한국 사례가 더 유명해졌다.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 한 우리나라가 세계 각국의 놀라움을 산 일이 있었던가.
올림픽 월드컵 등 주요 국제 스포츠 행사를 다 치렀고, 회원이 선진 6개국뿐이었던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나라)에 막차로 가입했지만, 우리는 아직 선진국을 넘볼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일들을 계기로 더 품격 있는 나라가 된다면 결코 쳐다보지 못 할 나무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국민의 수준과 자질은 이번 일로 검증이 된 셈이다. 정치가 2류만 되어도 욕심을 내어 볼 희망이 생겼다는 데에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 4월 17일자 내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