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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는 예쁘다] 01
S#1. 제과점 외경 (낮)
변두리, 작고 오래된 동네 제과점.
S#2. 제과점 안
(새로 바뀐) 40대 주인 여자 앞에 서있는 인순이. 빵 만들다 나온 듯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부스스한 머리, 물빠진 티셔츠에 수수한 청바지를 입은 그녀.
주눅 들고 움츠린 표정.
주인 : (잠시 미안한 표정으로 보다가) 우리도 첨부터 이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전에 주인이 하두 널 칭찬하길래, 가게 인수인계 받으면서 종업원까지 물려 받는 건 사실 흔한 일이 아니거든.
하두 칭찬하길래, 받겠다고 한거야. 근데...
인순 : ...
주인 : 애 아빠가...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쓰겠다는데 낸들 어쩌겠니.
미안하다. 직장 관두구 처음하는 사업이잖아... 개업이라구... 이해해주라.
인순 : ...(기어들어가듯) 저기,
주인 : (OL) 우리 애 아빠가 고집이 너무 세. 신경두 워낙 예민하구...
그러니까 널 못 믿는 게 아니구, 우리 애 아빠가 별나서 그러는 거라고. 알겠니.
인순 : 저, 그럼요, 신원 보증만 되면 계속 써줄실 수 있으신가요.
주인 : (난감) ...
인순 : (포기. 알겠다)
주인 : 옥상에 방은, 창고루 개조하기로 했어... 니 살림은 당분간 맡아줄게.
인순 : ...
주인 : (일어나며 주섬주섬 흰봉투 꺼내는) 이거... 차비나...
인순 : 아,아니에요.
주인 : (억지로 넣어주며) 아냐... 얼마 안돼. 받아 넣어...
(좀 두려운 듯 본다) 그리구 저기... 너무 우리를... 원망...
(말 더듬는다) 그러니까 뭐니, 앙심 같은 거... 품지 말아주라.
우리두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야.. 이해해 줘.
인순 : (앙심 품지 말란 말... 아프다.)
서둘러 일어나더니 다른 일 하는 척 하는 주인.
S#3. 제과점 앞길
커다란 가방을 멘 인순이. 가게를 나온다.
골목 모퉁이 돌아서며 봉투를 힐끔 들여다본다. 만원 권 다섯 장 들어있다.
세어보다가 봉투 접어 가방 깊숙한 곳에 넣는다.
앞이 막막하다. 가볍게 심호흡 한 번 하고는, 애써 씩씩하게 걷기 시작한다.
인순N : 괜찮아! 괜찮아, 인순아! ...난 착해. 난 예뻐. 난 사랑스러워. 난 훌륭해.
난 누구보다 특별해... 특별한 존재는 원래 시련이 많은 거야.
S#4. 거리1 (밤)
거리를 헤매는 인순이. 거리의 전신주 구인광고들을 읽어본다.
숙식제공. 클럽 바 등등. 춥고 배고프다.
인순N : 잘할 수 있어, 인순아! 난 사랑스럽고 예쁘고 훌륭해. 난 특별한 존재야. 난 선택 받았어......
바삐 오가는 사람들.
그 사이에 초라하게 오래도록 서성이고 있는 인순이.
인순N : 오래 전 그날... 선생님과 약속했다. 하루에 열 번 씩 이런 주문을 외우기로...
S#5. 거리2
가방 들고 건널목 건너가는 인순이.
복잡한 거리. 사람들과 부딪쳐 넘어질 뻔 한다. 털고 일어나 씩씩대며 걷는다.
인순N : 하지만, 난 안다... 빌어먹을! 아무리 그 따위 주문을 외어봐두 현실이 바뀔 리 없다는 걸!
S#6. 직업 소개소 (다음날 낮)
몇몇 사람이 상담하거나 신청서 등을 쓰고 있다.
담당 직원 앞에 서 있는 인순.
담당자 : 쪼-끔만 일찍 왔어두 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방금 나가버렸네.
실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인순.
담당자 : 일단 이력서 내놓구... 가서 기다려봐요. 연락할께.
인순 : 고맙습니다.
담당자 : 자격증 사본두 가져왔어요?
인순 : 네, 여깄어요.
담당자 : 연락할께요. 꼭 자리가 난단 보장은 없지만,
이력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담당자.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인순이.
담당자 : 소년원 출신이야?
흠칫 돌아보는 인순.
돌아보는 주위의 사람들.
얼굴 벌개지는 인순이.
인순N : 무례한 자식, 그런 걸 꼭... 사람들 있는 데서 물어보나?
직원 : 이 학교... 여기 소년원 맞지?
인순N : 나쁜 놈... 그래, 그렇다... 그래서 어쩔 건데?
인순 : (기어들어가듯) 네, 맞는데요.
직원 : 거, 전과 같은 건 진작 말을 해야죠. 무슨 죄 지었는데?
얼굴 빨개지며 어색한 미소 짓는 인순. 주위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곤 고개를 슬몃 떨군다.
서둘러 그냥 돌아서는 인순, 가방을 들고 일어나려는 순간,
마침 가방 끈이 툭 끊어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진다.
옷가지 노트 등과 함께 긴 칼이 하나 툭 떨어진다.
흠칫 놀라서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 의식하고 창백해지는 인순 표정. 부랴부랴 도로 주워 담는다.
인순 : ...빵... (눈치 본다) 빵칼...이네......하하.
과장스레 웃어보이는 인순.
하나 둘 시선 돌리는 사람들.
무안해지며 얼른 가방 챙겨 나가는 인순이.
인순N : 누가 물어봤냐......바보! 멍청이! 못난이 박인순!
S#7. 거리 (낮)
직업 소개소 앞길. 명동이나 종로 쯤 되는 복잡한 대로변.
인순N : 내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도...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세상에 필요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바삐 오가는 사람들. 2007년 서울의 수많은 인생, 인생들.
그 사이로 어깨 늘어뜨리고 초라하게 걸어가는 인순이. 쇼윈도우 앞에 서서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본다.
S#8. 지하철 역 플랫폼
열차 한 대가 지나가고 나면 아무도 없는 플랫폼.
구석 벤치에 망연자실 앉아있는 인순. 철로를 응시하는 시선이 슬픔에 젖어있다.
점점 화가 난다.
인순N : 좋아, 꺼져버리는 거야. 꺼져주면 되잖아, 나 같은 인간...
다시는, 다시는... 이 엿같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면 되잖아!
S#9. 시간 경과
몇 대의 지하철이 지나간다.
죽은 듯 벤치에 앉아있던 인순.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결연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전선 쪽으로 다가간다.
철로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한다.
두려움이 몰려든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한 발, 두 발...
그때 안내방송과 함께 저 멀리서 지하철의 불빛이 가늘게 비추기 시작한다.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
화들짝 놀라는 인순. 그대로 얼른 뒤로 물러서고 마는데, 그 순간.
상우 : 인순아!
인순 : (헉 놀라서 돌아보는)
훤칠하게 잘 생긴 젊은 남자다. 반가움이 잔뜩 어린 그의 표정.
상우 : 혹시... 인순이... (유심히 다시 보고) 박인순 맞지?
인순 : (얼떨떨) ...그런데...요.
상우 : (환해진다) 나 상우야. 유상우! 기억 안나?
인순 : !!
열차가 요란하게 와서 멎는다. 쏟아지는 인파 속에 서 있는 두사람.
title 인순이는 예쁘다
S#10. 방송국 스튜디오 (낮)
주부 대상의 아침 토크 프로그램. 생방송이다.
남녀 진행자 옆으로 선영과 정아가 나란히 앉아있다. 화사하고 세련된 화장과 옷차림의 그녀들.
선영 : 제가 이번에 출연하는 연극은, 영국의 유명한 작가 해롤드 킹의 작품이에요.
자식과 남편으로부터 소외된 채 쓸쓸히 늙어가던 한 주부에게 뒤늦게 찾아온 열정적 사랑에 관한 이야기죠.
이 작품을 하면서, 뭐랄까...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가슴 한 켠엔 뜨거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뜨거움을 눌러선 안돼요. 그게 곧 생명이니까요.
사회자 : 언제나 젊으시길래 그 젊음을 유지하시는 비결이 뭘까 궁금했는데, 오늘에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곁에 계신 따님께 한 마디 여쭐께요. 어머니의 평소 모습은 어떠세요? 평소 집에서도 늘 이렇게 활기차세요?
정아 : (멍하니 딴 생각)
선영 : (애타서 눈치 주는데)
사회자 : (당황하다가) 하하, 따님이 긴장을 하셨나봅니다.
일부러 크게 웃는 여자 사회자.
그제야 정신 차리고 뭐지? 왜이러지?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정아.
애가 타서 어쩔 줄 모르는 선영.
상황을 무마하는 사회자.
사회자 : 자, 그럼 이제... 기다렸던 순서... 두 분의 댁으로 한 번 찾아가보겠습니다.
항상 개성 있는 연기로 무대를 빛내주시는 배우 이선영씨,
댁은 또 얼마나 개성 있게 꾸며놓고 사실지... 기대가 됩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비디오 화면이 나간다.
금새 밝은 표정으로 바뀌어있는 선영.
S#11. 비디오 안, 선영의 집 거실
비디오 카메라가 선영의 집 거실을 구석구석 비추고 있다.
쾌적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빌라 안.
선영이 직접 집안 곳곳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저런 자막도 친절하게 깔린다.
정아와 선영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거실 중앙에 커다랗게 붙어있다.
클라리넷을 든 정아, 연주회용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 옆에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정아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선영의 모습.
선영(E) : 여기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햇빛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휴식도 취하고 음악도 듣고...
하루를 마감하며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구요. 제가 워낙 블루 컬러를 좋아하거든요?
이 소파는 보자마자 딱 맘에 들어서... 음 뭐랄까, 운명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소파와 저와의 운명 말이에요.
그런 거, 믿으시나요? 무생물도 자꾸 사랑을 주면 생명력이 생겨요.
일인용 소파가 놓인 베란다 쪽 어느 공간으로 카메라가 다가간다.
들뜨고 상냥한 어조로 카메라를 리드하는 선영.
S#12. 인순의 고모집 안방
싸구려 옷장과 화장대 등 단촐한 세간 살림.
티브이 앞에 앉아 라면 같은 것을 먹고 있던 인순의 고모. 나이는 40대 중후반 쯤. 흐트러지고 펑퍼짐한 아줌마다.
연속극을 보고 있다가 극이 끝나자 무심히 리모콘 채널을 돌린다. 방금 그 선영의 토크쇼 화면이 딱 잡힌다.
무심히 보다가 스르르 젓가락을 내려놓는 고모. 볼륨을 높인다. 차츰 복잡해지는 표정.
S#13. 방송국 스튜디오
비디오 화면이 끝났다. 박수 치는 방청객들.
사회자 : 네, 잘 봤습니다.... 오늘, 연극 배우 이선영씨와 따님 정아양을 모시고 즐거운 시간 나누어봤는데요.
끝으로 ... 시청자 여러분께 한 말씀 하시죠.
선영 : (카메라 응시하고) 오랜만의 티브이 출연이라 정말 떨리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 더욱 좋은 연기, 진실된 삶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 드릴께요.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한다. 박수 울려 퍼진다.
주눅 들어 얌전히 앉아있는 정아.
사회자 : 이혼의 아픔을 딛고, 새 연극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될 우리의 히로인 이선영씨...
연극 성황리에 마치시길 바라구요...오늘 출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S#14. 방송국 복도
나란히 걸어오는 두사람.
화가 잔뜩 난 선영.
선영 :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길 나왔는데, 내가 이런 시시껄렁한 토크쇼 얼마나 경멸하는지 몰라? 근데 니가 어쩜 이럴 수가 있니.
정아 : ...
선영 : 너 이젠 엄마 말까지 씹니?
정아 : (주눅) 듣고 있어요.
선영 : 너 하나 잘되게 할려구 나온 거야. 니 얼굴 좀 알려볼려구.
정아 : (할 말 많지만... 말 못 한다)
선영 : 생방송이었어. 니가 오늘 얼마나 큰 실술...
하는데 저만치서 오는 아는 사람. 반갑게 표정 바꿔 인사하는 선영.
다시 그가 가고나면 표정이 바뀌는 선영.
선영 : 어젯밤에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니. 근데 어쩌믄 그렇게 꿔다논 보릿자루야!
정아 : (OL) 내가... 원래 방송이... 체질 아닌가 봐요. (글썽거린다) 미안해요, 엄마. 난 안돼. 안될 거 같아.
선영 : 원래 안되는 게 어딨어. 노력 해! 안되는 건 없어.
정아 : 엄마.. 나 이런 거 하기 싫어요... 엄마, 난 그냥...
선영 : 그냥?
정아 : 그냥...
선영 : 그냥 뭐? 클라리넷두 그만 하겠다면서? 그럼 그냥 놀 거야? 그냥 놀다 시집 갈 거야?
날마다 여기 아프구 저기 아프구, 그럼 하고 싶은 게 뭐니? 죽고 싶은 거?
정아 : (고개 떨군다)
그때 사람들 몇이 다가오며 수군거린다.
얼른 표정 바꾸는 선영.
선영 : (나직이) 일단 가자. 집에 가서 얘기 해.
앞장 선다. 마지못해 따라가는 정아.
S#15. 방송국 앞길
방송국 나오는 모녀.
그때 선영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행인1, 2. 회사원인 듯 하다. 싸인 좀 해주세요! 라고 외치며 수첩을 펼치고 달려오는데...
환히 웃는 선영.
선영 : 반가워요,
하는데 그 순간, 선영을 지나쳐 가버리는 그들. 뒤에 따라나오던 20대 여자 스타에게 몰려가는 중이었다.
선영의 착각이었던 것. 얼굴 빨개지는 선영.
지켜보기 민망해지는 정아.
싸인하는 그 스타를 잠깐 힐끔 보던 선영. 다시 성큼 앞장 서 걷는다.
선영 : 쟤 왜 인기가 있는 거야? 얼굴이 너무 작위적이잖아. 다 뜯어고쳐갖구.
정아 : (돌아본다)
선영 : 흠...아주, 떴다구 기고만장이구나. 어린 게 위 아래를 몰라. 인사두 안하구, 쯧!
정아 : (의례 그러려니...다시 무표정하게 걷는다)
선영 : (새삼 분노 치민다) 말세야. 우리 땐 안그랬어!!
S#16. 커피 전문점 외경
인순(E) : ... 날 어떻게 알아봤어? 나 많이 달라졌는데...
S#17. 커피전문점 안
인순과 상우 마주 앉아있다.
상우 : 하하, 달라지긴! 똑같애. 중학교 때랑 똑같은데 뭐. 멀리서두 단번에 알아봤다, 박인순! 오리 궁뎅이!
인순 : ...(주위 살피며 당황)
상우 : (감격스러운 듯 다시 바라본다) 하나두 안 변했어. 똑같애.
인순 : 너는... 몰라보겠다. 코찔찔이가 디게 멋있어졌는데? 키는 언제 이렇게 컸어? 땅꼬마였잖아!
상우 : 섭섭하다! 나 원래 키 크구 멋있었어, 임마... (명함 꺼내 건넨다) 이거 내 명함.
인순 : (들여다본다) 이야, 유상우... (본다) 기자 됐구나.
상우 : ... 넌?
인순 : (흠칫) 어?
상우 : 인순이 넌 뭐해?
인순 : 어어...난...
상우 : 가수? 요새 활동 많이 하드라, 너!
인순 : 가수...?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하하 웃는다)
상우 : (웃고) 선생님 됐어?
인순 : ?
상우 : 맨날 선생님 된다 그랬잖아.
인순 : ...넌 별 걸 다 기억한다. (얼굴 빨개진다)
상우 : (보다가) ...맞냐, 선생님?
인순 : 어...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돼라) 어!!
상우 : 우하하, 진짜 선생님 됐구나? 거 봐, 그럴 줄 알았다. 고등학교? 중학교?
인순 : ...(기어들어가는) 고...고등학,
상우 : 무슨 과목?
인순 : 어?
상우 : 무슨 과목인데.
인순 : 여,영어...(재빨리 말 돌린다) 근데 언제 귀국했어? 캐나다는 그럼...
상우 : 캐나다서 온지 삼 년 됐어. 거기서 대학 마치구... 원래는 현지 특파원 보조로 알바를 하다가, 공채 봐서 뽑혔어.
인순 : 그럼 부모님은 아직 거기...
상우 : 아니. 부모님두 아주 들어오셨어. 연세 드시니까 고향 그리워지셨나봐. 그쪽 다 정리하구, 영구 귀국하셨어.
인순 : 으응. 잘됐네.
상우 : (보다가) ...근데 너, 그럴 수가 있냐. 왜 편지를 딱 끊었어?
인순 : 어? ...그,그랬나? 그게...그렇게 됐어. 이사두 가구...
하하,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바쁘드라구! 에이, 뭐 다 그런 거지! 섭섭했구나?
상우 : 섭섭했지! 니 편지 기다리는 낙으루 살았었는데... (감상에 젖는다)
인순 : ...
상우 : 거 참... 이렇게 만나네. 너 찾을려구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어?
인순 : 설마,
상우 : 설마는? 진짜야! 인터넷 개인 홈피두 여기저기 다 찾아보구... (씩 웃는) 없드라구. 박인순.
인순 : (기분 묘해진다) 어휴, 너 되게 할 일 없나부다. 뭐하러 그런...
상우 : 근데... 어디...여행 다녀와? (짐 가방을 본다)
인순 : 어, 이거...(당황) ...맞아, 여행 다녀오는 길. 인생이 워낙 여행이잖아.
상우 : 수학 여행?
인순 : 어? 어...수학여행... 하하.
엉겁결에 커피를 단숨에 후루룩 들이키는 인순. 빈 잔을 내려놓는데 가벼운 긴장이 둘 사이를 감돈다.
어색해지는 인순. 지켜보다 뭐라 말 꺼내려는 상우.
인순 : (얼른 시계 본다) 아이쿠, 나 가봐야되는데...
상우 : 벌써?
인순 : 응. 약속이 있어. 늦었어.
상우 : (아쉽다)
S#17. 거리
까페를 나온 두사람. 길에 나란히 선다.
상우 : 어느 학교?
인순 : 어?
상우 : 어느 고등학교야?
인순 : 어어...(머뭇하다가) ...상,상원 고등학교.
상우 : (핸드폰 꺼낸다) 핸드폰 번호 불러 봐.
인순 : (갈등 어린다)
상우 : 조만간 다시 만나자. 연락 할께.
인순 : 어, 그래야지, 하하.
애틋하게 바라보는 상우 시선.
난감한 인순.
S#18. 방송사 보도국 사무실
들어오는 상우. 휘파람을 불며 자리에 앉는다.
동료 진태, 옆자리에서 기사 작성 중이다.
진태 : (노트북에 시선 꽂은 채) 뭐, 좋은 일 있냐.
상우 : (여전히 휘파람만)
진태 : 저번에 윤식이가 소개시켜준 여자랑 잘 돼가는구나?
상우 : 누구?
진태 : 의사래매? 얼굴두 왠만하대매? 딱 니 이상형이네.
상우 : (정색한다) 무슨 소리야? 나 그런 여자 질색이야. 왕재수드라.
진태 : 왜? 몸매가 안 착하냐?
상우 : 날 뭘루 보는 거냐. 나 그렇게 속물 아냐.
진태 : 니가 속물 아님 누가 속물이냐.
상우 : (마뜩찮지만)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봐준다.
진태 : 먼 일인데, 그럼? 어디서 특종이라두 건졌어?
상우 : 특종... 그래, 내 인생의 특종이다.
진태 : (인상 쓴다) 맨날 거창하기는.
틀어놓은 티브이에서 쇼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가수 인순이가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선이 티브이에 꽂히는 상우. 지긋이 바라본다.
상우 : ...(혼잣말) 노래 참 잘한다.
진태 : (힐끔 화면을 본다)
상우 : (가리키며) 내 이상형이야... 인순이.
진태 : ... 짜식. 더위를 먹었나.
화면 속의 인순이. 무대를 휘감으며 열창하는 중이다.
S#19. 어린 시절 / 인순이 할머니 분식집
12년 전. 서울 근교 작은 도시의 어느 동네. 학교 앞 분식집이다.
티브이에는 그 당시의 인순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화면 앞에 앉아 만두 같은 것 먹으며 키득거리는 두 남학생. 서빙하는 인순이를 보고 놀린다.
남학생1 : 어이, 인순이! 여기 물만두 이인분 더!
남학생2 : 이히히, 인순이! 노래 한 곡 불러 봐!
기분 나빠진 중학생 인순이. 씩씩거리며 주방 쪽으로 가는데,
들어오는 중학생 상우. 키도 작고 몸도 약하고 표정도 소심한 남학생이다.
상우 : 인순아!
인순 : ...
상우 : 인순아!!
키득거리는 남학생들.
이미 기분 안 좋아져있는 인순이.
인순 : (휙 돌아보고 고함) 아, 왜!!
상우 : (헉 주눅 들었다)
인순 : 왜.
상우 : 할 말이 있는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다)
S#20. 가게 앞
중학생 인순이와 마주 서 있는 중학생 상우.
인순이 키가 한 뼘은 더 크다. 덩치도 훨씬 건장하다.
상우 : 저기...인순아.
인순 : 너 자꾸 인순이 인순이 부르지 마. 성을 붙여 부르든가!
상우 : 나... 전학 가, 박인순.
인순 : (멈칫)
상우 : 인사하러 왔어.
인순 : 어디루?
상우 : 캐나다.
인순 : 캐나다? 진짜? 그렇게 멀리?
상우 : 거기, 오촌 아저씨가 계신데...아빠 보구 오라 그러셨대.
인순 : 언제 가는데?
상우 : 내일 아침에.
인순 : 그 얘길 인제 함 어떡해?
상우 : 나두 몰랐어. 갑자기 가기로 결정하셨대. 빚쟁이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얼른 짐 싸서...(머뭇하다가) 도망가야 된대.
인순 : (글썽한다) 그래두! 그래두 인제 말하면 어떡해!
상우 : 그동안... 고마웠다, 인순아.
인순 : ...(감정 참는다) 뭐가.
상우 : 가서 편지 쓸께.
인순 : (끄덕인다) 알았어. 꼭 편지 써야 돼. 유상우.
상우 : 그래. 꼭 편지 쓸께.
가게 안에서 할머니 음성이 들린다.
할머니(E) : 인순아!
인순 : 네! 들어가요, 할머니!!
상우 : 잘 있어, 인순아.
인순 : ...잘 가, 상우야. 건강해.
악수 청하는 상우. 가만히 악수 하는 인순이.
눈물 그렁그렁한 두사람.
S#21. 경준집 외경 (밤)
변두리 작은 빌라.
인순(E) : 은석아, 숙제 다 했으면 와서 케익 먹자!!
S#22. 경준집 마루 (밤)
소박한 살림살이들. 씽크대 부엌과 연결된 마루.
은석(8세)이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다.
부엌에서 아까 그 빵칼로 케익의 둘레 장식을 마무리하고 있는 인순. 예쁜 생크림 케익이 완성됐다.
인순 : 짜잔! 완성입니다요!! 인순이 누나표 스페셜 케익!
은석 : (달려온다) 우와, 맛있겠다!
인순 : (앉으려는 은석을 제지) 어허, 손 씻고!
마지못해 욕실 쪽으로 가는 은석.
마루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인순. 옷가지, 장난감 등을 주섬주섬 치우며 한숨 쉰다.
인순 : 와, 도대체 청소를 얼마나 안 한거야? 집이 완전 폭격 맞았구나.
은석 : (욕실에서 손 씻으며) 누나 케익 먹고 나랑 만화책 봐요!
인순 : 아빠 요새 맨날 이렇게 늦으시니?
은석 : 늦으실 때도 있고요. 일찍 오실 때도 있고요.
인순 : 늦으시면 너 혼자 뭐해? 안 무서워?
은석 : 옆집 정민이네 가서 놀아요. 근데 누나, 만화 디게 재밌는 거 있어요.
인순 : 됐다! 누나는 만화 같은 거 안 본다!
S#23. 은석방
잠든 은석 곁에 쪼그리고 앉아 키득대며 만화 삼매경에 빠진 인순이.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책을 툭 던진다. 기지개를 켠다.
문득 생각난 듯 상우의 명함을 꺼내 가만히 들여다본다. 씁쓸한 미소 피식 짓는다.
인순 : 괜찮아, 다시 안 볼 건데 뭐... 선생님 되면 되지 뭐.
명함 구겨서 휴지통에 휙 던져버린다.
순간, 들어오는 경준. 둘다 흠칫 놀란다.
경준 : 너 언제 왔냐.
인순 : (일어나며) 선생님은요.
경준 : 허,
인순 : (짐짓 잔소리) 와아, 도대체, 애 혼자 두구 이렇게 늦어두 되는 거에요?
경준 : 웬일이야? 먼 일 있냐?
인순 : 하하, 일은요. 은석이 보고 싶어서 왔죠.
경준 : (뭔가 미심쩍은)
인순 : (나가며) 저녁 드셨어요? 맛있는 두부찌개 해놨는데...
S#24. 경준집 마루
마주 앉아 차 마시는 두사람.
근심 어려있는 인순 표정.
인순 : 제가... 고민을... 참 오랫동안 해봤는데요... 결론이 하나 뿐이더라구요.
인순의 짐을 넌지시 바라보는 경준.
인순 : 선생님, 가여운 우리 은석이한테는요, 무엇보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해요. 제가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씻기고...
경준 : 짤렸냐?
인순 : (흠칫)
경준 : 짤렸구나.
인순 : 짤린 건 아니구요... (더듬거리는) 이,인수인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경준 : 그게 짤린 거지.
인순 : 아니라니까요.
경준 : 쯧! 한심한 사람들. 다 자기들 복이지 뭐. 너같은 인잴 놓치다니.
인순 : (뭉클)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경준 : 우선 있을 데 찾아보자. 내가 알아봐줄테니.
인순 : 선생님...저 그냥 여기서...
경준 : 우리 집은 안돼. 남들 보면 뭐라 그러겠냐. 나 학교 선생이다.
인순 : (서운한데) 저, 미성년자 아니거든요.
경준 : 그러니까 더 문제지 임마. 나 새장가 가야 돼. 앞날에 지장 주지 마라.
인순 : (더 서운하다) 선생님... 저는...
경준 : 뭐 일단... 며칠은 있어두 된다. 방 구할 때까지.
인순 : (삐졌다) 아니에요, 갈 데 있어요.
경준 : 어딜? 너 인간관계 제로잖아?
인순 : 어후,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하게 하세요. 오라는 데 천지죠...
제가 그냥 은석이 봐서, 봉사 좀 해드릴려 그랬던 거라구요. 싫음 마세요. 다 선생님 복이죠 뭐!
경준 : 허,
S#25. 경준 학교 운동장 (다음날 낮)
경준이 재직 중인 남녀공학 고등학교. 고교생 몇몇이 농구하고 있다.
S#26. 복도
머뭇머뭇 들어오는 인순. 저쪽에서 오는 여고생에게.
인순 : ... 급식실이 어디에요?
가르쳐주는 여고생.
S#27. 급식실 부속 사무실
흰 가운을 입은 30대 초반의 영양사와 마주 앉아있는 인순.
깐깐해보이는 인상의 영양사.
영양사 : 서선생님이 하두 간절하게 부탁을 하시니까, 사실 당장 충원할 계획은 아니었는데...
인순 :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께요.
영양사 : 열심히 하는 거야 당연한 거고... 이력서 가져왔어요?
인순, 가방에서 이력서 봉투 꺼낸다.
영양사 : 제빵사 자격증두 있다며?
인순 : 네.
영양사 : 왜 관뒀어요? 그쪽 일, 많이 힘들어?
인순 : ...(긴장) 네.
영양사 : 여기 일이야 뭐... 업무 보조니까, 빵 만드는 거보다야 쉽겠지.
일단 한두 달 배워 보구 서로 맞는다 싶으면 정식 채용하는 걸로 할께요.
인순 : 고맙습니다.
영양사 : 선생님하군 어떤 사이야?
S#28. 비품 창고
수첩 들고 창고 물품을 체크하는 영양사. 곁에서 박스 같은 것 나르는 인순.
인순 : 고등학교 은사님이세요. 고2 때 담임이셨어요.
영양사 : 근데 되게 각별한 사이처럼 말씀하시던데? 난 친척인 줄 알았어.
인순 : ...
영양사 : (넌지시) 혹시 무슨 특별한 관곈 아니구?
인순 : 특별한 관계요? 에이, 아니에요.
영양사 : 부모님은 뭐하셔?
인순 :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영양사 : (멈칫) 그렇구나.
인순 :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할머니두 돌아가셨어요.
영양사 : 어머나... (안됐다는) 고생하구 살았구나.
인순 : 고생은요...사실은... (결심 어린다) 고등학교 때 사고를 좀 쳐서요, 교도소 갔다 왔어요...
선생님이 여러가지로 도와주셨어요. 부모님처럼 나서서 도와주셨어요.
영양사 : (흠칫) 교도소...?
인순 : 네, 소년 교도소요. 어차피 아셔야 될 거 같아서... 미리 자백하는 거에요. 서선생님 덕분에... 저, 사람 됐어요.
사고는 쳤지만, 정말 실수였어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저 보기보다 정직하구 착해요, 하하.
조용히 굳어있는 영양사.
겸연쩍은 얼굴로 괜히 더 열심히 짐을 나르는 인순.
인순 : (N) 내가 전과자란 걸 알았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첫째는 침묵... 그리고, 둘째는,
인순 : 많이 가르쳐주세요. 열심히 일하겠습...
인순 : (N) 사라진다...
어느새 영양사가 나가버리고 없다.
무안해지는 인순이. 비품 창고에 홀로 막막하게 서 있다.
S#29. 교실
수업 중인 경준. 영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S#30. 복도
까치발로 수업 중인 교실을 힐끗 훔쳐보는 인순. 수업하던 경준과 눈이 마주친다.
손 흔들며 입모양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 인사하는 인순.
씩 웃어주는 경준.
S#31. 보도국 상우 사무실
휴대폰으로 인순에게 전화 걸고 있는 상우. 결번이라는 안내 음성이 나온다.
당황하는 상우. 다시 걸어본다. 역시 결번이다.
난감한 표정으로 있는데 다가오는 데스크 재식. (40대 남)
재식 : 취재 간다더니 아직 안 갔네.
상우 : 지금 나갈려구요.
재식 : 문화 산책 말이야. 요새 반응들이 별로야. 지루해. 긴장 좀 해.
상우 : 네.
재식 : 게스트 선정두 좀 신경 써. 맨날 그 밥에 그 나물.
상우 : 알겠어요,
재식 : 이번엔 누구야?
상우 : 몇 사람 섭외 중이에요.
재식 : 누구?
상우 : 아직...말씀 드릴 단계가 아니어서요. (씩 웃는다)
재식 : 발상을 좀 달리 해볼 수 없어? 다른 매체가 다 다루는 인물을 찾지 말고, 평소 내가 궁금했던 그 어떤 누구...!
나의 독서와 나의 관심사에서 출발한 진정한 호기심을 발동해 봐! 남하구 같아선 남 뒤 밖에 못 쫓아가!
상우 : (귀찮다. 잔소리 또 시작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일어나 나가는 상우. 시계 보는 척.
상우 : 저 늦었거든요. 다녀오겠습니다!
마뜩찮게 보는 재식.
S#32. 봉고차 안
카메라 기자와 나란히 취재 가는 상우. 뭔가 곰곰 생각에 잠겨있다. 휴대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상우 : (혼잣말) 상..원 고등학교...상운 고등학교...상연 고등학교...
카메라기자 : 뭐라 그러는 거에요, 형.
상우 : 아,아냐. (머쓱 웃는)
S#33. 경준 학교 급식실 (해질녁)
방과 후. 홀로 급식실 청소 하고 있는 인순. 열린 창문을 닫으려 다가간다.
순간, 운동장 뒤편 으슥한 구석 쪽에서 여학생 몇몇이 몰려 서 있는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자세히 내려다보는 인순.
꿇어앉은 여학생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서 너 명의 여학생. 뭐라뭐라 쏘아붙이며 머리 끄댕이를 잡아챈다.
흠칫 놀라 자세히 보는 인순.
몇 차례의 주먹질... 꼼짝 없이 얻어맞는 그 여학생.
어쩔까 하다가 가만히 외면하는 인순. 다시 청소 시작한다.
인순 : (N) 교도소를 나온 뒤 내가 결심한 게 있다면... 절대로, 절대로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도 절대로... 나서면 안된다. 조용히 산다. 어떤 불의도 참아내고, 그 어떤 불상사도 방관한다!
외면하는 인순이.
S#34. 급식실 앞 복도
퇴근하는 인순. 그러나 자꾸만 창 밖의 풍경에 신경이 쓰인다.
다시 창문으로 다가가 가만히 내려다본다. 폭력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
맘이 쓰이는 인순.
S#35. 인순의 모교 인근 (고교 시절, 회상)
인적 드문 학교 앞 골목. 불량스러워 보이는 여고생 서넛이 여고생 인순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공포에 떨고 있는 인순이.
한 여고생이 인순의 머리를 먼저 휘갈긴다. 주먹을 움켜쥐는 인순이, 가격한 여고생을 쏘아본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합세하여 번갈아 마구 때린다.
반항하는 인순이. 하지만 역부족이다.
S#36. 복도 (현재)
창가에 서 있는 인순. 식은땀이 흐른다. 외면하자. 외면하자. 돌아선다.
S#37. 학교 운동장
교문 쪽으로 가는 인순. 멀리 여학생이 꿇어앉아 빌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돌아본다.
그대로 지나쳐 잰 걸음으로 가던 인순. 그러나...마침내 못 참겠다. 돌아서서 그들 앞으로 다가간다.
인순 : (달래듯) 니들 뭐하니? 왜 여기서들 이래? 어서 집에 가.
돌아보는 여학생들. 거칠고 억세 보이는 패거리다.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여학생2.
여학생1 : 상관 말고 가요.
인순 : (나선다) 이러지 마. (무릎 꿇은 여학생에게) 너 일어나. 그만하면 많이 맞았다.
여학생1 : 이 아줌마가 미쳤어? 당신 누구야? 왜 남의 일에 간섭인데?
인순 : (겁나지만) 니네 셋이서 얘 하나한테 이러는 거 비겁하잖어.
그리구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때리지 마. 때리는 건 무조건 나뻐! (여학생에게 다가가 손 내미는) 일어나.
여학생1 : 그거 안 놔? 하, 돌겠네. 지금 뭐하는 거야? 어? (일행 돌아보며 기막히다는)
인순 : 너 집에 가라! 얼른!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학생2. 일으켜 세워 떠미는 인순이.
순간, 달려드는 여학생들. 밀고 밀치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 사이에 여학생2 도망친다. 쫓아가는 여학생들을 몸으로 막는 인순이.
인순 : 니들 이러지 마! 그만 해! 말로 해두 되잖아!!!
여학생3 : 당신이 뭔데? 아줌마가 누군데!!
인순 : (애써 태연한 척) 야, 섭섭하다. 나 아줌마 아니거든?!
화가 난 여학생들, 인순이를 떠민다. 넘어지는 인순. 욱하고 화가 치민다.
한 여학생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인순. 쭐떡 넘어지는 여학생.
비명 지르며 인순에게 달려드는 일행. 서로 엉켜 머리 끄댕이 잡아당기며 격렬하게 치고 받는 그들...
그때 멀리서 달려오는 경비원과 선도 주임 교사.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당황하며 흩어지는 여학생들. 난감한 인순.
S#37. 교무실
붙잡힌 여학생 둘, 한쪽에 나란히 서 있다.
선도 주임이 회초리를 들고 그들 앞에 서서 훈계하고 있다.
한쪽 구석엔 교감과 경준이 마주 서 있다.
교감 : 서선생, 도대체 제정신입니까.
경준 : (착잡하다)
교감 : 학교를 뭘루 아는 거에요. 전력 속이구 학교 직원으루 채용시키는 게 가당키나 한 생각입니까.
경준 : ...
교감 : 아무리 제자라두 그렇지! 오는 날부터 애들하구 붙어서 싸움이나 하구 말이에요! 그런 사람을 계속 썼다 어쩔 뻔 했어요.
경준 : 말리다 그런 거잖습니까!
교감 : 말린 건지 싸움을 부추긴 건지, 누가 압니까! 말릴려면 신고를 해야죠! 하던 버릇이 곧바로 나온 거 아닙니까!
경준 : ...
S#38. 급식실 부속 사무실
영양사 앞에 앉아있는 인순. 옷이며 머리며 엉망이다.
영양사 : 살인 전과라는 거.... 왜 진작 말을 안 했어요?
인순 : ...
영양사 : 난 편견은 없어요. 전과 같은 거, 중요하지 않은데... 제일 화나는 건 거짓말 한 거야.
인순 : 아까...처음에... 말씀 드렸는데요.
영양사 : 다 말한 건 아니잖아. 정확하게 이러이러한 일로 교도소에 갔었다.
인순 : 말씀 드리려구 했어요. 다 말씀 드리려구 했는데, 아깐 미처...
영양사 : 너무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학교는 다른 데하군 달라요. 아이들이 있는 곳이에요.... 다른 자리 알아보는 게 좋겠어.
교장선생님 아시면 서선생님두 불이익 당할지 몰라. 안 그래두 교장 선생님하구 좋지 않은데...
인순 : (멈칫) 안돼요. 선생님한텐 아무 일 안 생기게 해주세요! 제가 속인 거에요. 제가 다 말씀 드릴 자신이 없어서...
부탁 드릴께요. 교장 선생님껜,
영양사 : 서선생님하군 무슨 사이에요?
인순 : 예?
영양사 : (마뜩찮게 보는데)
S#39. 교무실 앞 복도
다가오는 인순. 교감과 얘기 중인 경준의 모습을 멀찌기서 아프게 바라본다.
더 다가가지 못하고 돌아선다.
S#40. 학교 운동장
한쪽 벤치로 가서 앉는 인순. 결국...이렇게 다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착잡하게 운동장을 바라보는데, 뒤로 다가오는 경준.
경준 : (담담하게) 이 자식아, 얼마나 찾았는지 알어?
인순 : ... 죄송합니다, 선생님.
경준 : 죄송은 뭐가 죄송해. 니 잘못 없다. 내일 내가 교장선생님께 잘 말씀 드려볼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인순 : ...
경준 : 정 뭐하면 다른 자리 알아보면 돼. 어차피 급식 보조원 같은 거, 너같은 인재하군 안 어울리는 자리였어.
아르바이트 삼아 해보라는 거였지.
인순 : 선생님,
경준 : 왜.
인순 : 저는...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경준 : 허,
인순 : 만약에 하느님이 있다면 절 왜 만들었냐구 물어보구 싶어요. 전요, 저주 받았어요. 제 옆에 있으면 다 다쳐요.
할머니두 친구두 다 저 땜에 죽었어요. 선생님한테두 맨날 짐만 돼요. 저같은 인간이 왜 살아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울지 않고 덤덤하게) 사람을 죽였으면 그때 저도 죽었어야 돼요.
경준 : 바보 같은 소리 한다!
인순 : 바보니까 바보 소리 하는 거에요. 전 바보구 죄인이구 사회의 쓰레기에요. 쓰레기보다 못해요.
경준 : 인순아,
인순 : 쓰레기두 저보단 운이 좋을 거에요. 저보단 훌륭하구 사랑스러울 거에요.
경준 : (화났다) 그래...니가 쓰레기라면 쓰레기 맞겠지. 그걸 누가 말려.
인순 : ...
경준 : 니가 널 안 사랑하는데 누가 널 사랑해? 오늘 같은 일 한두 번 겪어?
니 탓이 아니라구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왜 당당하지 못해?
인순 : 아니에요,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 봐두 제 탓이구요. 제가 재수 없는 애라서 생기는 일이에요.
선생님두 더 이상 저한테 신경 쓰지 마세요. 더 나쁜 일 일어나기 전에 제가 먼저 사라져 드릴께요.
경준 : 허,
인순 :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경준 : 이 자식아!
일어나서 가버리는 인순. 화가 나서 바라보는 경준.
S#41. 학교 앞길
취재용 봉고차에서 내리는 상우. 기사와 카메라 기자에게 손으로 인사한다.
차가 떠나고 나면 가볍게 심호흡 한 번 하고 학교를 바라본다.
S#42. 학교 운동장
들어오는 상우. 기웃기웃 하면서 교무실 쪽으로 가는데,
그 순간,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는 인순의 뒷모습을 얼핏 본다. 인순이다!
반갑게 다시 보는 상우. 그러나 이미 사라져버렸다. 잘못 봤나?
S#43. 학교 앞 거리
쓸쓸히 걸어가는 인순이. 맘이 복잡하다.
S#44. 교무실
인순에게 전화 거는 경준. 안 받는다. 착잡하게 전화기 내리는데
다가오는 동료교사. (남. 30대 후반 쯤)
동료 : 서선생두 인제 좀 자기 인생에 신경 써. 맨날 제자들 치다꺼리 그만 하구.
경준 : 내가 뭘.
동료 : 서선생 훌륭한 건 알겠는데... 그런 거 알아주는 세상 아니야. 그리구, 이런 말... 오해 없이 들었으면 좋겠는데...
서선생 예전 학교 있을 때... 사고 친 제자 면회 다니느라구 와이프랑 헤어졌단 말까지 있어.
아까 걔가 그앤진 모르겠는데... 소문이란 거, 아무리 근거가 없어두 신경 써야 돼. 다른 직업두 아니구 선생이잖아.
경준 : (화난다) 누가 그런 소릴 해? 어디서 들었어요?
동료 : 왜 이렇게 흥분을 해? 난 서선생 편이야. 다 서선생 위해 이런 말 하는 거야.
경준 : (일어난다)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계속 그렇게, 절 위해주세요.
나가버린다.
억울한 듯 바라보는 동료 교사.
S#45. 복도
착잡한 얼굴로 복도를 나서는 경준.
저만치서 들어오는 상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상우 : 실례합니다. 교무실이...어디...
경준 : 이쪽인데요.
상우 : 저어... 혹시 여기...박인순 선생님이라구 계십니까.
경준 : (잘못 들었나?) 누구요?
상우 : 박, 인, 순 선생님요. 영어 과목 가르치시는...
경준 : 그런... 선생님은 안 계신데요.
상우 : 아, 예에... (역시... 여기가 아닌가보다)
경준 : ... 무슨 일이시죠?
상우 : 아닙니다. 제가 헷갈려서요. 학교를 착각했나 봐요. (머쓱 웃는데)
경준 : (뭐가 좀 이상하다 싶다)
S#46. 상우집 외경 (저녁)
신도시의 고급스런 이층 주택 외경.
S#47. 상우집 거실
상우 부 병국, 상우 모 명숙, 마주 앉아 밥 먹고 있다.
밥 먹으면서도 신문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병국. 뭔가 잔뜩 심드렁한 표정이다.
수더분한 인상의 명숙, 혼자 열심히 밥을 먹다가 남편 눈치 살핀다.
명숙 : 오늘 백화점 가서 당신 와이셔츠랑 넥타이랑 몇 벌 샀어요. 방에 걸어놨는데 봤어요?
병국 : (대꾸 없이 신문만)
명숙 : (한숨) 아무리 백화점이래두 그렇지, 너무 비싸. 캐나다가 역시 사람 살기엔 젤로 좋았어요.
물가가 왜이리 비싼지, 뭐 하나 살 때마다 놀래요, 내가.
병국 : ...
명숙 : 당신, 밥두 좀 넘기면서 신문 봐요. 신문을 아주 외울 요량이에요?
병국 : (그대로 시선은 신문에)
명숙 : 요새, 회사 잘 안 돌아가요? 뭐 안 좋은 일 있어요?
(김치를 손으로 쪽쪽 찢어 밥 위에 올려준다) 요번 김치, 요거 익을수록 맛이 괜찮네...
병국 : (인상 쓴다) 더럽게, 손으루 왜 그래?
명숙 : 예,예, 알았어요, 알았어요! 언제 그렇게 깨끗했다구.
(흘기며) 아유, 당신 말 할 줄 아네? 난 당신 무슨 말 못하는 병에 걸린 줄 알았어,
들어오는 상우.
상우 : 다녀왔습니다.
명숙 : 오늘은 일찍 오네. 웬일이냐.
방으로 들어가는 상우.
명숙 : (혼잣말) 아들이나 아버지나...
S#48. 상우방
책과 음반 등이 빼곡이 들어찬 책장과 기사 스크랩 등이 잔뜩 붙어있는 책상.
방으로 들어오는 상우. 따라 들어오는 명숙.
명숙 : 느이 아버지, 요새 우울증인 거 같애. 하루에 말을 세 마디두 안 한다.
상우 : 왜요.
명숙 : 아버지 친구 복태 아저씨 알지? 그 아저씨 혈압으루 돌아가셨잖냐. 장례식 다녀오구 나서 저런다.
상우 : (무심하다) 좀 지나믄 괜찮아지실 거에요.
명숙 : 너 선 봐라.
상우 : 선요?
명숙 : 손주라두 보면 느이 아버지두 인생 살 맛 날 거 아니냐. 나두 요샌 지나가는 강아지두 다 이뻐 보인다...
누가 중맬 서겠대.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아주 참한 아가씨가 있댄다.
상우 : (피식) 고등학교 선생님이면 돼요?
명숙 : 무슨 말이야?
상우 : (싱글거린다) 알았어요. 일단 엄마는 통과네.
명숙 : ...(슬몃) 누구... 만나는 여자 있어?
상우 : 어...아니요, 아직... (머쓱하게) 우선 찾아야 돼요.
명숙 : 먼 말을 그렇게 헷갈리게 해?
상우 : (한숨) 그러게요.
S#49. 경준 집 근처 놀이터
저녁 무렵. 혼자 모래놀이 하고 노는 은석.
다가오는 인순.
인순 : 은석아! 여깄었구나?
은석 : (반갑다) 누나!
인순 : 얼마나 찾았게! 저녁은?
은석 : 아빠 오면 먹을려구요.
인순 : 가자. 누나가 밥해줄게.
은석을 일으키며 옷에 묻은 모래 털어주는 인순.
인순 : (다리를 살피고) 여기 왜이래? 왜 멍 들었어?
은석 : 아까 학교에서 넘어졌어요.
인순 : (호 불어준다) 아팠겠다! 가서 약 바르자... 누나가 업어주까?
은석 : (신나서 매달리며) 네!!
S#50. 골목길
해지는 골목길. 은석을 업고 걸어오는 인순.
은석 : 애들이 자꾸만 뚱뚱하다고 놀리잖아요. 뚱뚱해서 철봉도 못한다구 놀리잖아요.
그래서 철봉할 수 있다구 보여주다가요, 떨어져서 꽝 넘어졌어요.
인순 : 거봐, 맨날맨날 사탕하구 과자만 먹으니까 뚱뚱한 거야. 과자 너무 많이 먹으면,
과자 속에 있는 달달이와 콤콤이가 이빨두 썩게 만들구 자꾸자꾸 뚱뚱하게 만드는 거야.
은석 : 누나두 자꾸자꾸 케익 만들어주잖아요.
인순 : (당황) 아, 그건... 나의 실수였어. 앞으룬 한 달에 한 번만 만들어줄 거야.
은석 : (애교스레 목 감고 매달리며) 누나, 우리 엄마해요.
인순 : 뭐?
은석 : 애들한테 우리 엄마가 맨날맨날 케익 만들어준다고 자랑했어요.
인순 : 에이, 거짓말 하면 착한 어린이가 아니지.
은석 : 누나 우리 엄마하면 안돼요?
인순 : 아,짜식. 엄마는 나 혼자 하냐? 글구 세상에 꼭 엄마만 엄마인건 아냐. 누나두 엄마가 될 수 있구 아빠두 엄마가 될수 있구...
또, 인간에게 엄마란 존재가 꼭 있어야 하나 그것두 다시 생각해봐야 돼. (한숨) 아, 내가 지금 먼말을 하는 거냐...
어쨌든 은석아, 누나는 죄인이야. 죄가 많아서 안되겠다.
은석 : 죄인이 뭔데요.
인순 : 죄인은... 죄가 많아서 엄마로는 곤란한 사람이란 뜻이야.
은석 : 무슨 죈데요?
인순 : 아, 몰라! 너무 알려구 하지 마, 다쳐. 누나는...누나두 뭐가 뭔지 막 꼬여서 머리가 복잡해.
은석 : ...
말없이 걷는 인순.
인순 : (쓸쓸해진다) 은석아...누나는 인생이 왜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어. 맨날 맨날 되는 게 없어.
누나가 죄인은 죄인인데 이상하게 막 억울하구 이상하게 막 화가 나구...
그러니까 누나는... 나쁜 사람이 맞나 봐. 누나는 나뻐.
은석 : ...
인순 : 은석아...
은석 : ...
인순 : 은석아, (돌아본다) 자니?
은석 : (잠들었다)
인순 : (무안해진다. 다시 걷는다) 미안해... 횡설수설 해서... 미안하다.
가로등이 켜진다.
터덜터덜 은석을 업고 걸어가는 인순의 초라한 뒷모습.
S#51. 경준집 거실 (밤)
들어오는 경준. 식탁 등만이 켜져 있다.
불을 켜고 방으로 들어가려다 식탁 위에 놓인 쪽지를 발견한다. 들고 읽는다.
인순(E) : 밥통에 밥 있고요, 국은 렌지 위에 있어요. 선생님 좋아하시는 오징어국 끓였어요.
은석이가 밥 안 먹구 자니까 깨워서 같이 드세요...
선생님.... 죄송해요. 저는요...다 좋은데 가끔 욱하는 성격이 문제에요. 제가 쓰레기라구 했던 거, 잊어주세요.
전 착하고 똑똑하고 훌륭하고 어여쁜, 선생님의 수제자 인순이랍니다! ...연락 드릴께요!!
방에서 눈 비비며 나오는 은석.
경준 : 이 녀석, 정민이네 가 있으랬더니...
은석 : (둘러보며) 누나!
경준 : ...누나 갔다.
은석 : (확 실망) 누나 갔어요? 언제요? 왜요?
경준 : 오줌 누구 손 씻구 와라. 아빠랑 밥 먹자. (쪽지 다시 내려다보며 한숨)
S#52. 고모집 마당 (밤)
산동네 빈민촌. 언덕 위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주택 중 하나.
대문으로 빗자루, 베개, 슬리퍼 따위의 물건들이 마구 밖으로 던져지고 있다.
물건들과 함께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인순의 고모. 맨발에 헝클어진 머리, 온통 시퍼렇게 멍든 얼굴이다.
뒤이어 쫓아나오는 고모부. 취했다. 거기 안서? 야, 너 이리 안 와? 따위의 고함을 지르며 따라오고 있다.
가방 들고 막 집 앞으로 올라오던 인순이. 당황하고 있다.
그 순간, 인순을 발견한 고모부. 눈에 쌍심지가 켜진다.
고모부 : 이게 누구야?
인순 : 안녕하셨어요, 고모부.
고모부 : 허... 이 기집애, 이거, 여기가 어디라구 나타나?
인순 : (두려운)
고모부 : (다가서는데) 어디 뻔뻔스럽게 낯짝을 쳐들구 여길...!
그 순간, 다가와 인순의 손을 나꿔 챈 고모.
흠칫 놀라는 인순이.
고모 : 가자, 인순아!
냅다 달리는 두사람.
S#53. 인근 식당 (낮)
허름한 동네 식당 안. 인순이와 고모 마주 앉았다.
40대 중후반의 고모. 눈에 든 피멍을 감추느라 애쓰고 있다.
찌개 백반 같은 것, 두사람 사이에 놓여있다.
고모 : (버럭) 관두다니! 그 좋은 델 왜 관둬?
인순 : 어어, 월급두 너무 적구요. 월급이 쥐꼬리만 해서...(거짓말 하려니 힘들다)
고모 : 그 따위 정신상태루 뭘 해먹을래? 니 주제에 지금 월급 적고 많고 가릴 때야?
숙식 제공하고 그만하면 대우 괜찮지. 요새 어느 직장이 숙식을 제공해?!
인순 : (기세에 눌리는) 그러게...
고모 : 우리 집은 안 돼. 쫌 전에 봤지? 너 저 인간 손에 죽고 싶니.
인순 : ...
고모 : 니 옥바라지루 울 엄마 집이랑 가게랑 다 날라갔다구, 술만 마시면 맨날 니 원망이다.
인순 : (고개 떨구는)
고모 : 나 보구 장가 온 게 아니래. 물려받을 식당이랑 집 보구 장가 온거랜다. 근데 니 밑으루 다 들어갔다 이거지!
(실은 자기도 하고 싶은 말이다)
인순 : ...죄송해요, 고모.
고모 : 아, 저런 놈이랑 결혼한 내가 잘못이지 니가 먼 죄송. 니 할머니 저승에서 얼마나 속상하실까...
눈물 콧물 닦기 시작한다.
안쓰럽게 바라보는 인순이. 테이블 위 냅킨을 닦으라고 건네준다.
설움 북받치는 듯 으흐흑 흐느끼는 고모.
인순 : (안쓰럽고 미안하다) 고모...
고모 : (버럭) 아,그러게 너는 왜 그 사고를 쳐가지구...! 니 인생두 요 모양 요 꼴루 만드니.
왜 남의 팔자까지 망쳐먹니, 망쳐먹길!! (얼굴 묻고 북받쳐 흐느낀다)
어쩔 줄 모르는 인순이. 같이 울먹울먹 운다.
주위 아랑곳 않고 우는 고모.
고모 : 니 할머니 누구 땜에 돌아가셨는데...! 이것아, 열심히 살아야 될 거 아냐.
왜 직장은 자꾸 때려치구 난리야, 어? 니가 지금 직장 때려칠 주제야?
인순 : 그,그러게 말이에요.
괴롭고 미안하다. 생각난 듯 가방 깊은 곳에서 그날 받은 봉투를 찾아 꺼내는 인순이.
봉투 그대로 건네려다 잠깐 멈칫. 얼른 만 원 짜리 두 장은 빼서 챙긴다. 다시 고모에게 봉투를 건넨다.
고모 : 뭐냐.
인순 : 얼마 안돼요. 고모 약이라두 사서 발라.
고모 : (머뭇)
인순 : 내가... 오다가 과일이라두 사올려구 그랬는데...과일가게가 없어서...고모부 과일두 사드리구요... 넣어요,고모...
(억지로 쑤셔넣어주며) 힘내요! 힘내고 사세요! 아, 내가.... 내가 진짜 면목이 없어...(머쓱 웃는다)
고모 : 아유, 애두 참, 뭘 이런 걸... (마지못한 척 받는다)
S#54. 식당 앞 길 (밤)
식당을 나오는 고모와 인순.
고모 : 어디루 가? ... 갈 데는 있어?
인순 : 아유, 걱정 마요. 오라는 데 너무 많아 탈이야. 인기폭발.
고모 : (머뭇머뭇... 갈등한다)
인순 : 그럼... 가요 고모. 전화 할께요.
인사하고 멀어지는 인순.
그 뒷모습이 안돼 보인다. 바라보며 다시 망설이는 고모.
고모 : ...저기 인순아!
인순 : (돌아보는) ?
고모 : 저기 말이야...
인순을 이끌고 한 쪽으로 가는 고모. 의아한 인순.
결심 어리는 고모 표정.
고모 : 인제 고만... 니 엄마 찾아가라.
인순 : (잘못 들었나?) 엄마요? 엄마라 그러셨어요, 고모?
고모 : 니네 엄마 안 죽었어. 살아있어.
인순 : (충격)
고모 : 그동안 너 속인 거는 미안하다. 어차피 그 여자두 결혼하구 잘 사는데, 피차 알아서 좋을 거 뭐 있겠나 싶어서...
(눈치 본다) 그래서 그랬어...
인순 :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고모 : 사실은 그게...니 부모 둘 다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구, 니 아버지만 죽은 거야.
니 할머니가 니네 엄마 새출발하라구 억지루 널 뺏어와 키운 거야.
(쓸쓸히 회상하는) 너야 백일두 되기 전이니까, 하나두 생각 안나겠지만.
인순 : ...(믿어지지 않는다)
고모 : 근데...텔레비젼 보니깐 말이야. 이혼 했대지 뭐냐.
인순 : ... 텔레..비전요?
고모 : 어? 어어...니네 엄마 말이야. 니 엄마 아주 유명한 사람이야.
인제 너 고생 그만 해두 돼. 고생 다 끝났어. 찾아가서 만나 봐.
인순 : (멍하다)
S#55. 친구 미화 원룸 (밤)
인순의 소년원 친구 미화. 화장대 앞에서 화장 하는 중이다. 업소 아가씨다.
육 칠 평의 작은 원룸. 요란한 옷가지와 이런저런 살림들로 복잡한 방안.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인순. 멍하니 자기 생각에 빠져있다.
미화 : 아후, 참 너두 너다. 사람 죽인 적 있다구 다 불면 누가 널 써주냐? 그게 무슨 정직한 건 줄 착각하지 마.
넌 도대체 언제 사회성이 생기냐? 나처럼 사기두 아니구 살인이야, 살인. 그런 건 무덤까지 비밀루 해야 되는 거야.
인순 : ...(딴 생각)
미화 : 그리구, 그 선생 집에서 나오긴 왜 나오냐. 그냥 밤에 확 덮쳐버려!
홀아비래매? 보니깐 너한테 영 맘이 없는 것두 아니더만!!
인순 : ...
미화 : (돌아본다) 야,
인순 : ...
미화 : (다가와 손 젓는다) 야, 인순이!
인순 : (그제야 정신 차린다) 어?
미화 : 먼 생각을 그렇게 하냐? 정신이 어디 멀-리 외출을 하셨네.
인순 : 뭐라 그랬어?
미화 : (한숨) 나 나간다고. (가방 메고 일어난다) 자구 있어라. 낼 아침에 보자.
인순 : 어, 그래.
미화 : 아, 글구! (미안한듯) 알지? 여기 오래는 못 있어. 우리 애인 싫어해.
인순 : 어후, 당연하지! 알지 그럼!
미화 : 갔다오께! (찡긋하며) 심심하믄 반찬이나 쪼까 맹글어 놓든가!
인순 : (배웅한다) 알았어!
S#56. 같은 장소 (새벽)
불꺼진 방안. 창 밖으로 희미하게 동이 터온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스르르 일어나는 인순이. 우두커니 생각에 잠긴다.
S#57. 공연장 앞 (낮)
선영의 연극이 공연 중인 극장.
매표구 앞으로 머뭇머뭇 다가오는 인순이. 비장한 표정이다.
연극 시간표와 관람료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보는 인순이. 이윽고 매표구로 다가서는 그녀. 지폐를 내민다.
인순 : 표 한 장 주세요 ... 지금 시작하는 거요.
표 받아드는 손이 후들거린다.
S#58. 극장 안
무대 위에 연극이 한창 진행 중이다.
19세기풍 영국 가정주부 분장을 한 50대 여배우가 위스키잔을 기울이며 독백을 하고 있다.
여배우 : 세월이... 참 덧없어요. 난 내가 이렇게 초라하게 늙어갈 줄 몰랐어요.
한때는 나두 복숭아보다 더 붉은 뺨을 가진 소녀였어요. 그땐 세상이 온통 연분홍색이었는데...
원하는 건 뭐든지 가질 수 있었는데...
눈물 한 줄기 주룩 흘리는 여배우.
불 꺼진 객석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인순이.
여배우 : 윌리엄은 제 첫사랑이었어요. 우린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났죠. 첫눈에 반했던 거 같아요.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어요. 지금두 기억나요... 앨리스, 널 꼭꼭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녔으면 좋겠어.
수줍게 웃는 여배우.
이윽고, 인순이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흐른다.
감정이 북받치는 인순이. 나직하고 힘겹게 처음으로 불러보는 이름.
인순 : ....엄...
순간, 설움이 와락 밀려든다. 조용히 오열하기 시작하는 인순.
옆자리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보자 입을 틀어막으며 꺽꺽꺽 운다.
S#59. 배우 대기실 (혹은 분장실) 앞
연극이 끝났다. 살금살금 대기실 쪽으로 다가오는 인순이. 심호흡 한다. 결심 어린다.
S#60. 배우 대기실 (분장실)
연극을 마친 배우들이 거울 앞에서 화장을 지우고 있다.
결연히 들어오는 인순. 구석에 혼자 화장 지우고 있는 여배우 앞으로 다가간다.
짙은 화장을 지우고 있는 여주인공. 거울 뒤로 다가온 인순의 모습에 힐끔 돌아본다.
인순 : 저어...
여배우 : ?
인순 : (만감이 교차한다)
여배우 : 누구세요?
인순 : 저어...저는... (저절로 목이 메어온다) 저는 박, 용짜 찬짜씨의 딸이에요.
여배우 : (물끄러미 본다)
인순 : (울음 참으며) 박,용,찬씨요. 기억하세요?
여배우 : 박...용찬?
인순 : (격한 감정 솟구친다) 절...모르시겠어요? 정말 모르시겠.. 제가 누군지?
여배우 : ...누군데요?
당황하는 인순. 저쪽에 있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그러나보다.
맘 추스르고 목소리 낮춰 작게 속삭이는 인순.
인순 : 박인순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당황하셨...셨겠지만,
여배우 : ??
인순 : (이게 아닌데 싶다. 뭔가 꼬였다) 본명이, 이선용씨 맞으시죠? 고모한테 들었어요. 이제야 들었어요.
잠시 둘 사이에 적막한 긴장이 감돈다.
여배우 : (혼잣말) 이선용...? 아아, 이선영씨 말이에요?
인순 : ?
여배우 : 이선영씨 찾는구나. 맞죠? 이선영씬 일곱시 공연에 나오세요.
인순 : 그..그게 무슨.
여배우 : 나랑 이선영씨랑 별루 안 닮았는데. 헷갈리셨나봐.
인순 : 일곱시 연극이랑 배우가 달라요? 왜요?
여배우 : (웃는다) 원래 교대로 하는 거에요. 나는 네시구, 이선영씬 일곱시요. 근데 무슨 일루...
들어오다가 이선영이란 말에 돌아보는 상우. 인순을 보고 흠칫 놀란다.
인순 : (얼굴 벌개져서) 그럼 이선영씨 뵐려면... 일곱시...
여배우 : (끄덕하며 웃는다)
인순 : 죄,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후다닥 돌아서는 인순.
S#61. 대기실 앞 복도
대기실 나오는 인순. 벌개진 얼굴을 누르며 진정하려 애쓴다.
인순 : (N) 바보... 멍청이... 나는 맨날 이 모양이다.
후다닥 잰 걸음으로 걸어가는 인순. 뒤따라 나오는 상우.
상우 : 인순아!
인순 : (돌아본다. 헉 놀란다)
정적이 감돈다. 질려있는 인순 표정.
인순 : (N) ......이 모양...인 거다.
상우 : (다가온다) 인순아...
감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상우.
인순 : 여, 여긴 니가 어떻게.
상우 : 어뜨케 이렇게 만나냐. (다가온다) 이건 기적이야, 기적.
인순 : ...(기적은 무슨!)
상우 : 이상하게 오늘 꼭 오고 싶더라. 인터뷰 하러 왔거든. 공연 소개 코너를 맡고 있는데... 오늘 아니라두 되는데...
근데 이상하게 꼭 오늘 나오구 싶드라구. 야아... 신기하다, 이럴 수가 있냐!
(들떠서 바라본다) 차 한 잔 할래?
커피 자판기 쪽으로 앞장 서 가는 상우. 할 수 없이 따라가는 인순.
상우 : 내가 그날 핸드폰 번호 잘못 받아 적었나봐. 결번이드라구. 안되겠다 싶어서 학교까지 찾아갔었어.
인순 : (헉 놀란다) 학교엘 갔었어?
상우 : 근데, (머쓱 웃는다) 내가 학교 이름두 잘못 들었나봐.
그날 내가 너무 흥분해서... 정신이 없었나봐. 다 엉터리루 들었던 거야.
인순 : (괴롭다)
상우 : 마침 그쪽에 취재가 있어서..간 김에 들러봤는데... 상원 고등학교 아니었어?
인순 : 어?
상우 : 아니야?
인순 : 어... (얼버무리는) 사실은... 휴직 중이야. 여,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상우 : 그래? 그랬구나, 어쩐지... (뭔가 잠깐 석연찮지만... 믿는다) 전화번호...불러 볼래? 아니다, 니 핸드폰 좀 줘봐.
인순 : 핸드폰? 왜? (휴대폰 꺼내는데)
상우 : (인순의 휴대폰을 빼앗아 전화건다) 나한테 걸었어. (웃는다) 번호 찍히라구.
인순 : (한숨)
S#62. 코너 자판기 앞
커피 뽑아서 건네주는 상우. 나란히 창가로 오는 두사람.
상우 : 팬이냐?
인순 : 어? (볼펜 꺼낸다) 펜 여기...
상우 : (웃는다) 볼펜 말구... 팬이냐구. 이선영씨 팬이냐구.
인순 : (그제야 알아듣고 당황)
상우 : 이선영씬 왜 찾는데?
인순 : (머뭇하다) ...팬이야. 팬 맞아. (씩 웃는다)
상우 : 흠...니가 팬이라니까 나두 좋아질려 그런다... 난 그 아줌마 별루였는데.
인순 : (긴장)
상우 : 연극 좋아해?
인순 : 에이, 연극은 태어나서 오늘 첨...(하다가) 참 좋아해! (씩 웃는다)
상우 : 잘됐다. 나 연극 공짜표 많이 생겨. 앞으루 같이 보러 다님 되겠다. (표정 설렌다) 이따 공연 마치구 저녁 같이 먹을래?
인순 : 어어...
상우 : 전에 사회부 있을 땐 참 괴로웠는데, 문화부로 옮기니까 요샌 좀 살만해.
온갖 쓰레기들을 다 만났다. 사기꾼, 살인범, 깡패, 강도... 세상에 온갖 악질들만 상대하다보니까
나 자신이 너무 황폐해지는 거 같았어. 어떡하든 부서 옮겨 볼려구 기를 썼지.
인순 : ...(복잡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상우 : 어쩌니 저쩌니 해두, 학교 선생은 행복한 직업이야. 연극두 보러 다니구.
인순 : (이윽고 서서히 결심 굳힌다) 저기, 상우야,
상우 : 왜.
인순 : (결연해진다) 사실은... 나...
상우 : ?
인순 : 내가....사실은,
상우 : 사실은 뭐.
인순 : (아, 괴롭다. 용기가 안 난다)
그 순간, 저만치 들어오고 있는 선영의 모습.
상우 : 아, 저기 오신다!
인순 : (돌아본다) 누가?
상우 : 팬이라며?
그 순간,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인순.
선영에게 성큼 다가가는 상우.
상우 : 이여사님!
선영 : 어, 유기자. 많이 기다렸죠?
상우 : 아니에요,
선영 : 어우, 미안 미안! 잡지 인터뷰가 있어서...
상우 : 오늘 인기 좋으시네요. 아까부터 기다리는 분이 또...
돌아보는데 어느새 사라져버린 인순이.
멈칫 주위를 둘러보는 상우.
상우 : 어디 갔지?
선영 : 누구?
상우 : (얼떨떨 주위 살피는데)
선영 : 누구 말이야?
S#63. 공연장 앞 길
서둘러 나가고 있는 인순이. 자기도 모르게 마구 달리고 있다.
달리다 문득 걸음을 스르르 늦춘다. 뒤돌아본다.
공연장 건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돌아서서 걷는다.
S#64. 공연장 외경 (밤)
날이 어두워졌다.
S#65. 극장 안 (밤)
무대 위에서 공연 중인 선영. 주연 남배우와 마주 선 채 간절한 표정으로 대사를 읊고 있다.
눈물을 철철 흘리며 열연한다.
선영 :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윌리엄, 난 당신이 날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당신하고 헤어진 뒤, 내 인생은 끝장 났다구요.
하지만... 왜 이제야, 이제야 날 찾은 거에요. 왜 좀 더 빨리 날 찾아내지 못한 건가요...
너무 늦었어요. 난 더 이상 열 아홉 소녀 앨리스가 아니에요.
S#66. 공연장 인근 거리
공연장이 멀리 보인다.
인근 건물 벽에 우두커니 기대어 서있는 인순. 핸드폰에서 문자 메시지 신호음이 울린다.
<인순아, 연락 해주라. 어디로 사라진 거냐? 유상우>
무시하고 그대로 담담하게 서 있는 인순.
인순 : (N) 누군가 내게... 살면서 가장 슬펐던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S#67. 고등학교 교무실 (회상)
인순 : (N) 용기를 내야 했을 때... 내가 나를... 스스로 포기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순이 다녔던 여고 교무실.
여고생 인순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친구엄마. 미친 듯 때리고 발로 차고 악다구니를 쓴다.
뜯어말리는 경준.
친구 엄마 : 놔요! 이거 놔요! 얘에요. 얘가 우리 딸을 죽였어요. 우리 딸을 죽였다구요!
인순 : (질려있다)
경준 : 진정하세요. 이러지 마십시오. 무작정 이러시면 안됩니다.
친구 엄마 : 우리 딸하구 얘가 머리 끄댕이 잡구 싸우는 걸 애들이 봤대잖아요!
우리 애 가방에, 우리 희수 가방에, 얘가 보낸 협박 편지가 들어있었어요! 죽여버릴 거래요, 죽인대요!
이거 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딨어요!
인순 : (시선 떨군다)
친구 엄마 :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가 있니. 아무리 애비 에미 없이 막 자란 기집애래지만,
어쩌믄 그렇게 무섭구 끔찍한 짓을 저질러!
인순 : (글썽한다) 아니에요, 전.
친구 엄마 : (매달려 흐느낀다) 우리 희수 살려내라. 제발 우리 딸... 살려내라.
인순 : 전, 안 죽였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고함) 죽이진 않았어요! 싸운 건 맞지만, 네, 싸운 건 맞아요!
근데, 죽이진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S#68. 구치소 안 (회상)
어두운 구치소 감방 안.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여고생 인순이.
인순 : (N) 만일 그 때,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난... 좀 더 용기를 냈을지두 몰라... 억울한 마음두 없었을지 몰라.
S#69. 공연장 인근 거리 (현재. 밤)
어두운 밤거리. 벽에 기댄 채 쪼그려 앉아있는 현재의 인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공연이 끝났나 보다. 저 멀리 공연장 입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인순이.
인순 : (N) 그러니까...그러니까 이 모든 건 엄마 때문이다. 이제야 내 눈앞에 나타난 엄마 때문인 거다.
S#70. 극장 앞 로비
공연을 마친 선영. 꽃다발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싸인을 해주고 있다.
저만치 코너에 숨어서 그녀를 지켜보는 인순이.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활짝 웃으며 싸인을 하고 있는 선영.
인순 : (N) 그때 만일 내 곁에 엄마가 있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엄마를 만날지 말지 따위를 고민하는 겁쟁이가 아니었을지두 몰라...그러니까, 그러니까 난 지금...
사람들과 인사하고 분장실 쪽으로 멀어지는 선영.
인순 : (N) 원망하러 온 거에요... 어,머,니.
부랴부랴 용기내서 쫓아가는 인순이.
S#71. 복도
분장실로 가는 선영.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용히 숨죽이며 따라가는 인순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일정하게... 좁혀지지 않는다.
맘이 점점 더 아픈 인순.
인순 : (N) 돌아봐라, 돌아봐라, 돌아봐라... 돌아보세요. 제발 먼저 돌아보세요.
그러나, 그대로 멀어져가고 있는 선영. 안타깝게 쫓아가는 인순이.
S#72. 분장실 앞
이윽고 분장실 문 앞에 도착한 선영. 막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인순(E) : 저기요!
멈칫 돌아보는 선영. 인순과 눈이 마주친다.
순간, 어쩔 줄 모르는 인순.
인순 : 저어...
선영 : ?
인순 : ...저...
인순 : (N) 기억해주세요. 알아봐주세요. 인순이에요, 엄마.
따스하고 친절한 미소를 담뿍 지어보이는 선영. 그 시선에 얼굴이 벌개지는 인순.
침묵과 긴장이 흐른다.
선영 : 무슨 일이시죠?
인순 : (헉 놀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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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쌀쌀해지니까 이 드라마가 생각났다. 다시 읽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