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라는 게 아주 귀해서
아주어릴적
우리동네엔
우리뒷집
현순네집 마루에 만
커다란 붕알을 덜렁거리며
벽시계란놈이
한 개 걸려있었더랬다.
나는 어릴적에
큰침이 시간
작은침이 분을 나타내는거라고
생각을했었다.
아마도 시간과 분의 개념과
큰침과 작은침의 개념
-그러니까 큰것과 작은것의 개념을 일치시켰던것 같다.
그때
마을사람들은
닭이 우는소리
그리고
멀리읍내에서 들려오는 기차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시간을 가늠하곤 했다,
뒷집에가서 시간을 알아오는것은 나의 고유한 임무였다.
“현순네 엄마요 맻시나됐니껴?”
이래물으면 인심좋은 현순네 엄마가
“사장오싯니껴? 시방 아홉시 반이시더...”
하며 시계를 보고 시간을 가르켜주시곤했다.
어쩌다 그집에 아무도 없으면 큰바늘이 3,작은바늘이 6...
머 이런식으로 집에가서 말했던것 같다.
정작 시계를 정확히 읽는건 초등학교엘 들어가서 배운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하마 내가 그렇게 말을했다면...
대여섯살때 나는 이미 1,2,3,4...를 알았다는 말인데...
지금생각해도 우쭐해진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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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기차를 타면 봉성으로 간다.
봉성은 우리외갓집이있던
봉화군 상운면에 인접한 기차역이있던 곳이다.
아직도 기차역엘가면 설레이는 마음이 드는것은
아마도 어릴 때 그 기억 때문이리라
여름방학 때면 외갓집엘 갔었다
한- 보름정도를 외갓집에서 보내곤 했다.
외사촌들과 그 동네 아이들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새 옷을 입고
동이 터오는 그 새벽길을 걸어서 풍기역으로 간다.
엄마랑, 작은형은 걸음이 빨랐고
여동생은 걸음이 느렸다.
그 무렵에는 나락꽃이 피기시작한다.
지경터까지 신작로길을 걸어
논뚝길로접어들면
새벽이슬과함께 나락 꽃들이
새로산 반바지에 허옇게 묻곤했다.
삼포밭 그 울섶사이로 난 작은뚝길을 걷노라면 기분은 좋은데
저만치 풍기역에서 곧떠날것처럼 우르렁거리던 기차소리 때문에
안그래도 기차를 탄다는 생각에 설레이는 마음은
더 바빠지곤했다.
독산-을 지나고
재정이네집근처 유다리엘 올라섰을때
아- 작은 안도감...
큰 길에 올라서 마음은 놓이지만
아직도 기차역까지는 제법 걸어야했다.
연탄공장을 지나면
석탄과 통나무를 야적해놓은 공터를 한참 지나야했다.
거기엔 커다란 물땅꾸가 있다.
‘저긴 뭘 하는델꼬?‘
그옆에는 군인들이 사는 아치형의 막사도 있었던것 같다 .
그 물땅꾸를 비껴 뻘건 해가 솟기시작한다.
참 높았다.
“우르릉- 우르릉-”
연신 기차는 곧떠나려는듯 마음을 더바쁘게 한다.
(촬영: 안중칠 기장)
차표파는 아저씨와 우리엄마와 사이에 실랭이가 벌어진다
“아니- 저래큰아가 왜 학생이 아니래요?”
“자가 등치는 저래도 아직학교에 아들어갔니더- 반표로 끊어 주소”
항상엄마의 승리였지만 나는 그게 싫어서 대합실밖에 나오곤했다.
커다란 버드나무가 서있던 풍기역앞에서는
서문거리가 내려다 보였다.
간혹 역앞마당에 아이들이 옥대치기나 숨바꼭질을했던것 같은데
단발머리에
키작고 얼굴 하얗던
하얀색바탕에 빨간땡땡이무늬 원피스를입고 찰랑찰랑뛰어다니던
내 또래였을것같았던 그지지바가 기억날법도 하다.
첫댓글 단편문학 정연화 의 "어린 날의 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