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우리나라의 대외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발해는 일본과 우호관계를 맺었으며 일본에 대해 황제국의 면모를 과시하였따.
2)고려는 송,거란, 금나라와 차례로 사대관계를 맺었다
3)임진왜란 후에는 일본천황이 바뀔떄마다 축하사절의 형식으로 통신사를 파견하였따.
4)1882년에 청은 조청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여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3번에서 일본천황이 바뀔떄마다가 아니라 막부장군이 바뀔떄마다 통신사 파견으로 3번이 틀렸음은 알겠는데요
2번보기에서 거란과도 사대 관계를 맺었다고 봐야하는지..
서희의 외교단판에서 사대관계를(형제관계였나요..??)맺기로 하고 강동6주를 획득하였으나 실제로는 사대를 하지 않아 2차 침입이 반발 한거 아닌가요?
이번 경북문제에서도 이와 비슷한 보기가 있다고 하여서..
경북 보기 중 서희 외교 단판이후의 상황이 아닌거였나 그런 문제였는데 보기에서
1)'사대관계를 맺고 강동6주를 획득하였다'
2)' 천리 장성을 쌓았다'
....
이런 지문이였다고..
이 경우에 답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거란과 여진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천리 장성을 쌓긴 했지만 그 시기가 서희 외교단판과 시기적으로 너무 차이가 난다는 의견도 있더라구요..
첫댓글 3차침입 이후 서로 힘이 빠져서 그냥 고려가 사대외교 하는 선에서 마무리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형제관계는 정묘효란때 여진과의 관계입니다. 거란은 전혀관계없죠. 거란은 보통 12c, 여진은 13c 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고려떄 천리장성 축조는 거란의 침입을 막기위해 쌓은것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할것같네요,.
거란은 둘째치고 송과 사대관계가 어이없네요. ㅡ,.ㅡ;;
거란 11, 여진 12, 몽고 13c 아닌가요? ㅡㅡ;;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ㅡ.ㅜ
저 경북 문제는 아직도 논란거리죠..;;; 문제 공개가 안되니 정답이 뭔지 아무도 모를 거 같음;;; 저도 거란 11 여진 12 몽고 13 왜구 14 이렇게 외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