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의 문학산책-노시인(老詩人)들이 부르는 시의 사과 한쪽
노시인들의 셋동인 제5시집
민병일/조국형/유경희/이영하/도경회
조덕혜/이상정/주광일/정태호/정순영
-자명종보다 먼저 깨어난다
바람의 길목마저 가로막는
세월 켜켜히 응고된 몸뚱아리-<길샘 김동환의 ‘시간의 저편’ 전문>
노시인들이 둘러 앉아 글자판을 두들겨 꾸민 <셋 동인> 5시집을 펼쳤다.
필자보다 먼저 시단의 문을 두들긴 시인은 정순영(74년,정완영 ,이동주 추천)시인이 유일하다. 정태호시인은 필자보다 1년 후 등단지가 같은 문학지<시와 의식>으로 등단했다. 늙은 기억은 세월 너머 까마득한 옛 기억만 떠오른다고 하는데 눈 녹듯 사라지겠지만 아무튼 반가웠다.
셋동인 5시집에는 정순영(74년등단,시집‘시는 꽃인가’),정태호(87년,‘시와의식’),주광일(92년, 시집‘유형지로부터의 편지’),이상정(95년 ‘시와 시인’),조덕혜(96년,‘문학공간’),민병일(97년,‘예술비평’2010년‘예술시학’)도경회(2002년,‘시의나라’),이영하(2010년,‘문예춘추’),유경희(2016년,‘한국시학’),조국형(2016년,‘시사문단’) 시인이 함께 마주 앉았다.
이들의 나이테는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세월의 떼가 켜켜이 묻은 고목인 것은 분명하다. 시 전편에서 세월의 진액이 흘러나온다.
고로쇠물이라면 마시기라도 할 텐데 왠지, 왠지 마시기가 깨름직하다. 한약이라고 두 눈 감고 꿀꺽 마셔볼까.이 나이에 무슨 무모한 도전을, 생각의 커텐을 벗어 버린다. 노 시인의 시세계로 접어 들어가 본다.
-콧노래 부르며/음식을 만들어 차리는 날/늙은 뺨에 입맞춤을 하며/할아버진 젊었어요/손녀의 다정한 거짓말에/싱글벙글 속는 날-<‘한가위’부문,정순영>
-영화 제목은 색증시공이고/아가씨들 엉덩이가 이브다/빛이 있으라 했기에/형체가 생기고 색깔도 구별되고/존재도 드러나는 법이지/인간이 자유를 가지는 한/묘한 평등이 욕망을 부추기느니/진정한 공짜는 없노라/공짜 좋아하는 정치인을 보아라/공짜 밥을 먹게 되느니라/식스팩을 가진 젊은 놈들아!-<‘색즉시공’ 부문,정태호>
-나는 세월을/미워하지 않아요/허무를 극복하는데/고작 여든 해가/걸렸거든요/세월 덕분에/ 살아가는 일이/결국은 당신을 만나러/가는 길임을 알았거든요/아, 나는 이제/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당신이 부르시면/그곳이 어디든지/갈 수 있어요-<‘당신43’ 전문,주광일>
-잘 생기지도/잘나지도 못한/누구도 보아주지 않는/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먼지 같은 취급을 받으며/잡초처럼/벌레처럼/구더기처럼/똥파리처럼/발가락에 낀 때보다 못한/바람에 엎어지는/몽둥이 앞에 엎어지는/나의 삶은 언제나/수동태였지/눈치를 보며/대빵의 말이 곧/신의 말처럼/까라면 까는/수동적 내 어린 시절/살아남기 위하여 재빠르게 움직이는/얻어터지지 않기 위해 까라면 깐다.오늘도-<‘까라면 까는’ 전문, 이상정>
-꽃이 아름다운 것은/아름다운 세상에 내가 산다는 것/세상이 소중한 것은/사랑하는 이들과 공존하고 있다는 것/세상이 있다는 것은/내가 살아 있기 때문인 것-<‘그가 먼저 사랑했네’ 부문, 조덕혜>
-사소한 자존에 소리 높이고 지치고 공허할 제/섭섭한 마음 가슴에 묻고 이어 주는 따뜻한 손/그대가 진정 나의 위안임을 이제야 알고 있네/어느 골짝 수선화 백합화가 따로 있을까/보듬고 희생한 가없은 마음일랑 바람 속에 날리고/옹이 박힌 한 뼘 사각 안에 아내가 내 곁에 앉아 있다-<‘아내 얼굴’ 부문,민병일>
-황금빛 청년과 처녀 모두/굴뚝빛 노인과 마찬가지로 재가 되리리/한 줌 먼지로 흩날리는/흙으로 돌아가리니/바람결에 날아가는 한 줌 먼지에/천국을 보는가 너는-<‘재의 수요일’부문, 도경회>
-옛날의 정든 고향 산천이 추억 속의 이야기로 시끄러운데/사랑이 꽃피고 젊음이 꿈틀대던 곳/생명의 밀어들이 살아 숨쉬는 애수의 고샅길과 논배미가 그리워진다/바람결에 그대 소식 전해 들으며/행복을 비는 마음 서글퍼지누나/시골 마당이 너무 커 보이는/창가에 서서 오늘도 그대 이름 다시 불러 본다/인생이 저물고 간 쓸쓸한 고향집에/내 간장 다 녹여 가는 한밤의 소야곡/‘비창 소나타’-<‘봄의 소야곡’ 부문,이영하>
-이 사람 아닌 저 사람 말을 믿었어야 했으려나/이 사람 아닌 저 사람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이렇게 일했기에 이 정도 살았으려나/저렇게 살았어야 옳았을까/이 길로 왔기에 여기까지 왔으려나/저 길로 왔다면 더 빨랐을까/이렇게 키웠기에 그럭저럭 자랐으려나/ 그때,그 순간/눈 질끈 감고 나서지 말았어야 했을까/사랑이라 포장한 집착이 사람을 망치려나/자유라고 포장한 냉정이 사람을 더 망칠 까-<‘정답 없는 세상’전문,유경희>
-얼굴도 몸도 세월 앞에/모두 변해 갔지만/내 이름 석자 너와 나/그 울타리는 변함이 없으니/오늘 그리운 둥지에 함께 모여/서로의 살을 비벼본다/서로의 삶을 바라본다/서로서로가/그리움의 꽃을 피우고/갈라진 외로움을/허기로 채워 본다/ 혈관에서 꽃이 피어나는 오늘/우리는/서로서로가/목마르다-<‘회갑여행’부문,조국형>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