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웬일인지...
한배우의 연기에 빠져 이렇게 네번씩이나 예찬의 글을 올리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네멋이 하던 지난 두달동안 대체 어떻게 생활했는지 기억도 없군요. 네멋과 양동근의 연기에 취해 구름위를 떠다니는듯 현세(?)를 떠나 긴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습니다.
정말로 그의 연기를 보던 두달간은 "유레카"를 외치던 그리스의 학자가 이보다 더기뻤을까 싶을 만큼 한 배우의 발견에 내내 희열을 느꼈으며, 아직 가공되지 않은 값조차 메길수 없는 진짜 보석을 우연히 만져본것 같이 "...어떻하지?..어떻하지?..야~ 이것 참..."이 반복되어 나오는 흥분된 시간들이었습니다.
뒷골목에 묻혀있던 가난하고 젊은 천재화가를 발견했을때의 느낌이 이럴까요? 그냥 '어, 재주있네' '음~ 잘하네'가 아니라 '세상에나..내가 천재를 만났구나'하는 느낌.. 이대로 그 천재가 묻혀버리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과 조바심 같은거...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는거, 해줘야만 할것같은 (어줍짢은) 소명의식(?)같은거..
지금 제가 양동근의 연기를 보고 갖게 된 것들입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의 형상화이고, 인간이 느끼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구현이라면 그의 연기는 예술이라 불러도 좋고 그 또한 예술가라 불러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연기만을 놓고도 예술감상의 희열을 안겨준 것에 대해 이 한명의 젊은 배우에게 고마운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고 한번더 제가 느낀 희열을 말하며 그를 마구마구 칭찬하고 싶습니다.
네멋 초기(?) 게시판에 어느님이 양동근의 연기를 놓고 '입이 퇴화할때까지 칭찬해 주고 싶다'고 쓰셨던 기억이 있는데 저 또한 꼭같은 심정으로 이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기를 뭣인가에 비유한다는게 그렇지만 이 주체못하겠는 감동을 가지고 칭찬은 해야만 했기에...어찌됐든 다섯가지 예로 그의 연기를 보며 느낀 제감동을 올리고 싶네요.
맘같아선 다섯가지도 부족하지만 쓰다보면 무지 길어질꺼 같군요.(아니 이미 너무 길어 졌지만--;; 이제 시작인데...)
양동근은 각 장면에서 캐릭터가 느낄법한 복잡다단한 정서를 하나의 감정이 아닌 여러개의 감정을 가지고 풍부하게 연주하는 교향악같은 연기를 합니다.
그의 연기속에는 일면적이고 하나뿐인 감정만이 표현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분노와 함께 연민이 보이고, 슬픔과 함께 억울함이 쏟아지고, 기쁨과 함께 불안이 느껴지는 진짜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성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어우러짐이 느껴집니다.
각각의 악기가 적절한 타이밍과 강약과 고조, 장단을 가지고 함께 조화되어 곡하나를 만들듯이 그의 연기 속에선 여러개의 감정과 정서들이 각각의 악기가 되어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뤄 표현됩니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감성들이 함께 터지는 풍부한 연기는 윤여정씨와 신구씨와 함께 나오는 씬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부모에게 소리쳐본 사람은 알겁니다. 원망과 짜증에 악다구니 치는 순간에도 응석이 들어가고, 당연한 소리라 생각하고 입에서 쏟아내자마자 매정했구나 싶은 후회가 드는 그 복잡한 심정.
복수의 터져나오는 분노뒤에는 간신히 누르고 있는 연민, 또다시 주체못할 속상함, 서러움 같은게 함께 다 보입니다.
대본의 대사만 가지고 두개 이상의 느낌만 표현해도 꽤 괜찮은 배우일텐데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대본에서는 볼수 없었던 "캐릭터 고유의 뿌리가 되는 심성"까지 끄집어 내어 잊지않고 보여주니...참..
그가 치밀한 계산아래 '요기서 요기까진 화를내고, 조기서 조기까진 슬픈거야..'라는 식으로 모든 대본에 의한 연기를 미리 짜놓은게 아니라면은 그는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형상화하는데 천재임이 분명합니다.
아니, 사실 미리 분석해 움직이는 거라 하더라도 그건 참...대단한거죠.
드라마속의 그를 보면 싱싱한 숭어가 가장 최고의 자유스런 상태에서 물속을 헤엄치는거와 같이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카메라 앞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집니다.
몸 전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편안하고 자유스럽게 움직이는 어깨, 팔, 손, 다리, 목은 경직되어 카메라앞에서 찍혀지길 기다리는 수동적 피사체로서의 캐릭터의 느낌이 아니라 카메라를 리드하며 끌고가는 현재진행형의 생명체같은 캐릭터의 느낌을 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카메라 앞에서의 카리스마란 저런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의 저음이 죽여준다고, 눈에서 불꽂이 튄다고 다 카리스마가 아니라...
살아있는 캐릭터가 되어 그 자유스러움과 능동성으로 카메라를 끌어 갈줄 아는 것이 카리스마가 아닌지...
그렇다고 그의 움직임이 오바의 선을 넘지는 않습니다. 이또한 그가 치밀한 계산아래 딱 좋을 만큼의 자유스러운 움직임만 짜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캐릭터(복수)가 할만한 손짓과 어깨짓, 삐따기만 타는 것입니다.
이런 그의 움직임은 복수가 보다 활동적으로 나오는 정달, 찬석과의 씬에서 두드러집니다.
*2회-3회 병원에서 우찬석과의 대화씬
->그는 정말 황당한 충격에 몸을 가눌수가 없습니다.
*3회 #41 경찰서를 찾아온 정달과 쇼파에 앉아서 대화하는 씬
->힘을 빼고 폼을 잡는 씬이라고 하면 알맞을 듯..
*7회 #35 비오는 촬영장 승합차안 깨어나 우찬석과 대화하는 씬
->카메라앞에서의 매력적인 자연스러움
*12회 #10 회 지하철 플랫폼 뒤쫓던 정달에게 배짱으로
밀어부치려던 씬->저 자연스런 손놀림과 몸짓!하며 놀랐습니다.
*11회 #18 촬영장 유리창에 자전거를 부딪히는 스턴트를
연습해보며 불안해 하는씬
모든 씬에서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의 연기를 느끼지만 *5회 #47 깨우지 않았다고 중섭에게 짜증내며 하는 발동작이나, "아, 나 공부하는데 왜 이불을 덮어놨어어?" #14회 다단계 물건을 팔겠다고 쌓아놓은 유순에게 열이받아 "..그만좀 괴롭혀...나좀 행복해지고 싶어..." 하때 하던 몸동작은 제가 바로 저희 엄마에게 하던짓과 너무도 똑같아 흠찟 놀랐었습니다.(나쁜딸이죠.)
판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마당위의 소리꾼 한명이 만들어내는 오묘하고 잡다한 모든 소리를 다 들어야 하듯이 양동근의 연기를 본다는 것은 그가 뱉는 대사만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목소리의 리듬미컬하게 변화하는 톤, 장단과 엇박이 섞인 호흡과 뭔가 꾸미는구나라는 느낌을 팍팍주는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동작..이런 모든것들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판소리에선 길고 힘든 호흡의 장중한 진양조의 소리가 있는가 하면가파르게 숨찬 휘모리의 소리도 있습니다. 또 소리는 아니더라 아니리가 필요하고 '얼쑤'와 같은 추임새 한마디도 마당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필요합니다.
그의 연기속에서 대사는 꼭 소리와 같습니다. 그의 대사는 판소리의 여러가지 다른 소리들처럼 각각의 고저와 장단을 갖고 나옵니다. 그래서 단조롭고 평이하게 들리지가 않습니다. 또한 호흡과 몸짓을 더해 연기를 완벽하게 입체화 시킵니다.
그의 표정연기와 몸짓연기를 보면서 대사한마디 없는 벙어리 역할을 주워도 캐릭터의 희노애락을 넘치게 표현할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사실 이론적으로라면 다른 배우들도 모두 이렇게 입체적인 연기를 해야하지 않나(아니 했었겠지?) 생각하지만 솔직히 아쉽게도 양동근의 연기를 본 후에야 뭔가 다른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게 앞으로 제가 느낄 비극입니다. 앞으로 대사로만 이뤄진 평면적인 연기를 어찌 보란 말인지...흑)
이런 대사가 빠지는 여백의 부분에 채워지는 호흡과 눈빛등으로 이워진 그의 연기는 특히 말로는 모두 표현하지 못할 복수의 마음들까지 보여주는 미래, 경과 나오는 씬에서 두드러집니다.
*6회 #56 치킨집앞에서 경의 고백을 듣는 씬
*8회 #18 설렁탕집에서 경에게 계속 만나지 않겠냐고 부탁하는 씬
*12회 #4 택시에서 내려 기다리던 경을 빙그르르 안가 돌리는 씬
*12회 #27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울먹이던 미래를 달래듯이
혼잣말을 하는 씬
*14회 # 병원에서 뇌종양을 알아버린 미래를 달래는 씬
*16회 #5 밤거리 경에게 뇌종양을 말하며 달래는 씬
-> 눈빛만으로도 너무나 많은 말을 해주더군요.
이때문에 저는 아무리 대사가 없는 어느 한순간이라 할찌라도 그의 호흡과 몸짓을 통해 연기되는 어느 한 조각이라도 놓칠까봐 늘 팽팽하게 긴장되어 화면에 눈과 귀를 집중하게 됩니다.
사실 그의 연기를 보는 동안은 아주 진이 빠져버리지요.
<화려한 시절>의 류승범(철진)을 보면서 하!불같이 연기한다라고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깜짝깜짝 터지는것이 마치 화약같기도 하고, 선명하고 뜨겁게 화르르 타는 모양이 잘마른 장작이 만드는 불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연기하는것 같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양동근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화산 한복판 끓고있는 용암의 구덩이에 얼굴을 데고 있는듯한 느낌입니다. 시뻘건 혹은 시허옇게 끓고있는 용암이 주변의 모든것을 다녹여버릴것 같은 느낌..
온몸이 확 데는듯 뜨겁다가 죄여오는 느낌이 그의 점성강한 연기속에 보고있는 사람 또한 녹아버릴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의 뜨거운 점성의 연기에 녹여지는 것은 사실 고통에 가깝습니다.
불꽃같은 연기를 보는것은 따귀를 한대 맞는것 같겠지만 용암같은 연기를 보는것은 누군가의 손이 심장을 움켜짜는 듯한 고통일겁니다.
저는 *3회 #6 상추쌈 씬에서
*6회 #2 치킨집에서 술에취해 유순과 실랑이하는 씬에서
"어차피 대단할 것두 없는 인생, .. 돈이나 거둬 들일까?.."
*6회 #21 촬영장에서 사과하는 경에게
"뭐 오해해도 되요..세상의 떨거지입니다.."라 말하는 씬에서
*12회 #17 지하철 이음문 사이에서 소매치기 소년을 붙잡고 소리
치는 씬(전 정말로 이 씬이 너무너무 좋습니다.)에서
또,*16회 다방에서 유순과 재회하는 씬에서
그리고 중섭의 죽음앞에 오열하는 씬에서
*17회 #10 유순에게 중섭의 죽음을 알려주는 씬에서 그런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의 눈물 씬에서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저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감동을 잘받지는 않지만 웃기게도 눈물은 잘 흘립니다. 그저 연상에 의한 작용때문인지 내생각에 빠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잘 흘립니다.
그러나 양동근의 눈물씬을 보고 있자면 눈물보다도 고통스런 통증이 먼저 심장을 누릅니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속에 농축되어 있는 슬픔의 강도가 너무 쎄 내 경험이나 과거를 연상하거나 유추해가며 눈물지을 시간 따위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불처럼 타오르는 연기도 참 잘하는건데(그래서 류승범의 연기를 좋다고 생각했었는데..)..양동근의 연기가 용암처럼 끓다가 심장을 누르는 돌로 굳어져 버리기 때문에 그의 연기를 볼때의 고통과 그후의 후유증은 말로 다 못합니다.
저는 늘 아쉽게도 대본을 먼저 보게 됩니다.(물건너 사느 사람들의 괴로움입니다. 방송된지 10일 후에나 비디오를 볼수 있다는건..
아~ 인터넷으로 본다는건..네멋의 경우는 고문에 가깝네요)
대본을 늘 먼저 읽고 기존 극에서 봐왔던 희노애락의 전형적이고 천편일률적인 표현방식을 예상한 후, 그가 연기해낸 것을 볼때면 늘 무릎을 치게됩니다.
*3회 #12 치킨집에서 유순에게 중섭의 얘기를 살짝 꺼내는 장면
"(대뜸) 아빠랑 다시 살면 안돼?..."
"..나 언젠가 여기 안와..어떻하냐 돈줄 막혀서.."
대본만 보고는 복수가 저런 심정으로 말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5회 #49 방을 만든 중섭이 애잔해 혼잣말을 하다 공부문을 여는씬
"방은 만들고 그러냐...안죽지 뭐"
"근데 저방석은 어디서 난거냐?(미소!!!)"
*6회 #20 촬영장에서 양찬석에게 복수(?)하는 씬
"..감독님한테 에이 개새끼야 하면 좋겠어요?"
(뒤돌아서서)"복수했다.(만족하고 통쾌한 미소)"
*7회 #6 경의 고백을 듣고 집에와서 방방뜨는 씬
*9회 #51 경을 찾아 레코드점을 들어가서 마주하는 씬
*11회 #42 경의 앞에서 동진에게 정달의 손가락으로 추궁당하는 씬
*17회 #22 집에온 미래에게 재수없다며 가라고 말하는 씬
아니,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저렇게 연기하는구나..
대사를 치는데 엇박으로 나가기도 하고, 말꼬리를 흘리거나 도리어 높이기도 합니다. 뜻밖의 수줍은 미소가 보이기도 하고 능글맞은 능청이 뭍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어떠한 의외들도 타당성을 벗어나진 않습니다.
도리어 앞서갈 뿐입니다. 캐릭터의 근본에 훨씬 앞서 접근하여 캐릭터가 되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놀랍습니다.
그의 캐릭터에 대한 분석과 표현의 가늠할수 없는 그 능력에 대해...
이 스물셋의 어린 배우는 분명 인간의 감성을 형상화 하는데 천부적 재능이 있구나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 정말 길어졌습니다.
좀 무안하기도 하군요. 괜히 저만 흥분한거 같아서...
하지만 뭐, 언제 또 다시 이런 글을 올려 보겠습니까.
다시한번 작가 인정옥과 배우 양동근이 만난다면 모를까..
(아, 물론 박성수 PD님두요. 하지만 영화도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저는 양동근을 다른 여타 '훌륭한' 배우들과 비교하는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싶습니다.(현재까진)
설경구라 하여도, 최민식이라 하여도, 로버트 드니로나 알파치노라하여도...
저는 싫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나의 왼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보이스 돈 크라이>의 힐러리 스왕크 연기를 훌륭하다 생각하지만 이젠 그들과의 비교 또한 싫습니다.
물론 이들모두의 연기는 뛰어납니다.
섬세하고 깊이있는 내면연기를 보여주고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양동근은
웃음을 줄때 확실히 웃기고, 눈물을 줄때 확실히 울리고,
고통을 줄때 폐부를 찌르고, 망가질때 확실히 망가지는..
자신을 최대한 희극화 시킬줄 알고, 최고로 비극화 시킬줄 아는
진짜 광대 같은 배우입니다.
다른 어떠한 배우들과도 비교할수 없는 그는 진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배우입니다.
이것이 제가 배우 양동근을 예찬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