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다가 생각나는 글이 있어 몇 자 적어봅니다. 우리 모임에 가입하신 분의 말씀이 “어떻게 키운 해군인데…”라는 말씀을 듣고 몇 자 정리 하여 봅니다.
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 (海防兵團) 창설 (단장 손원일 , 해안 방위를 하기 위한 사설 군사단체)
1946년 1월 14일 국방사령부에 해방병단 편입
1946년 4월 15일 해방병단 인천기지 설치
1946년 6월 15일 조선해안경비대 창설 (총사령관 소령 손원일)
1946년 8월 16일 해안 기지 창설 ( 인천, 목포, 군산, 포항, 부산, 묵호)
1947년 2월 17일 충무공정 진수 (국내에서 최초로 진수한 함정)
1948년 8월 16일 조선 해안 경비대에서 해군으로 호칭 (국방부 훈령 제 1호)
1948년 9월 5일 해군으로 개칭 (총사령관 준장 손원일, 총참모장 대령 김성삼)
1948년 12월 5일 대한민국 해군으로 발족 (총참모장 준장 손원일, 총사령관제 폐지)
1949년 6월 1일 진해 해군 통제부 설치, 묵호, 포항, 인천, 부산, 목포 경비부로 승격
1950년 6월 25일 병력 : 6,956명, 장비 : 경비정 28척
7천명이 안되는 병력과 경비정 28척으로 전쟁을 맞이한 해군 이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6일 우리 해군은 대한해협 해전에서 600톤급의 경비정 백두산 함 (PC-701)은 1,100톤급의 적함을 격침하면서 제해권을 잡았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때 적함이 무사히 무장한 병력을 부산에 상륙 시켰다면, 작년 여름의 월드컵도, 서해교전도 없었을 것 입니다. 아마도 우리의 어린이들은 지금쯤 꽃제비가 되어 중국의 변방이나 일본의 뒷골목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50여 년전 훌륭한 선배들이 지켰던 그 바다를 뒤를 이은 후배들이 지난 여름 지켰으며 백두산함의 조타수 고 김창학 하사 (해상병 10기)가 적탄에 맞아 내장이 파열되면서도 조타키를 놓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여 적함을 격침하였던 것 처럼 그 후배 한상국 중사 (부사관 155기)는 숨이 끊어진 상태에서도 조타장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여 357의 방향을 남으로 돌렸습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 해군의 호국의 전통은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국군이 창설되기 전부터 조국 영해 수호의 씨를 뿌리신 어른들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을 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첫댓글 장한 대한의 건아들
좋은 정보네요 감사합니다....................충성
다시금 저희가 모르고 지내온 중요한 사실하나를 또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고귀한 희생이 이러한 큰 자유를 선사 하셨군요. 앞서가신 해군 선배님께 조의를 표합니다. 필승!.
대한민국 해군 화이팅! 자랑스럽습니다.
자랑스러운 그사람.....거기에 더욱더훌륭하신 선배님이 계셨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이렇게 훌륭한 해군이 있어 자랑스럽고,뿌듯합니다.....
백두산호의 사진과 자세한 설명이 업로드 자료실에 있습니다. 멋진 해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