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2 가해 연중15주일
이사 55:10-13 / 로마 8:1-11 / 마태 13:1-9, 18-23
씨앗 안에 담겨있는 말씀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가 쓴 『순수함의 징조들(Auguries of Innocence)』이란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하늘을 보며,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본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여기서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는 것은 작은 존재 안에 우주 전체가 반영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구절, "들꽃에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자연 속에서 신성함을 발견한다는 의미입니다. 세번째 구절인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든다"는 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지만 무한한 진리를 경험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마지막 구절인 "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본다"는 것은 순간 속에서도 영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블레이크는 이 시를 통해 당시 계몽주의의 기계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상상력과 영적 통찰을 통해 작은 것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와 무한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오늘 제1독서와 복음말씀을 묵상하여 씨앗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 말씀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함의 징조들’이 그리고 있는 모습들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설교는 씨뿌리는 사람보다는 씨를 맞아들이는 땅의 상태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런 맥락에서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길바닥에 뿌려진 씨와 같아서, 씨가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뒹굴어 다니다가 새들의 먹이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반면에 폐쇄적인 사람은 돌밭과 같아서, 씨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그 씨가 마음에 뿌리를 못 내리고 겉돌고 있다가 고난과 같은 외부자극이 오면 쉽게 분리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유혹에 약하고 걱정과 불안이 많은 사람은 가시덤불과 같아서, 씨가 그 마음에 뿌리는 내렸지만, 걱정과 유혹이란 가시덤불에 가려 성장하지 못하고 숨막혀 죽게 됨을 상징합니다. 그에 반해, 좋은 땅과 같은 사람은 말씀을 잘 받아서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하고, 기도와 선한 실천으로 말씀을 잘 자라게 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음을 뜻합니다. 아마도 많은 설교자들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하여 설교할 때,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금 어떤 마음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되돌아 보라고 하면서 좋은 밭이 되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로 설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다른 관점이란 비유말씀을 듣는 자, 즉 청자(聽者)의 관점이 아니라, 비유말씀을 하는 자, 즉 화자(話者)의 관점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제1독서에선 하느님의 말씀을 대리해서 전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관점으로, 복음에선 비유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겠습니다.
먼저, 제1독서인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사야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에 한 예언이고, 40장부터 55장까지는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바빌론으로 귀양살이할 때 씌어진 것이며, 55장부터 66장까지는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할 때 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은 바빌론에서 귀양살이 때 씌어진 것으로서 이른바 ‘제2이사야’라고 불립니다.
제2이사야가 활약한 시기. 수도 예루살렘과 거기에 있는 성전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머나먼 이국 땅 바빌론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정말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실까?”하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번 설교에서도 언급했듯이, 중동지방은 덥고 건조한 곳입니다. 그래서 씨를 뿌리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 씨는 바짝 말라 죽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는 바짝 말라 있는 씨와 그 땅 위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사 55: 10-11) 여기서 비는 생명을 주는 자연의 선물, 즉 하느님의 은혜를 뜻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이제 하느님의 말씀과 연결시킵니다. 이 말씀은 그저 단순한 소리의 울림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생겨난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실의에 빠진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희망하라고 격려합니다. 그 말씀은 겉보기에 작은 씨앗처럼 보잘껏 없어 보이지만, 장차 거기에서 싹이 나서 줄기와 가지로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오늘 복음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의 시각으로 오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있는 배에 올라 설교하실 때, 많은 군중들이 그 말씀을 들으러 호숫가에 서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픈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예수님의 말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시비를 걸거나, 심지어 고발할 죄목을 찾기 위해 온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시면서 당시 행하고 있는 농사방법을 모티브로 해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 농사 방법이란 씨를 뿌리기에 앞서 밭을 가는 우리나라와 달리, 예수님 시대에는 씨를 뿌리기 전후로 밭을 갈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비유는 밭을 갈기 전에 씨를 뿌렸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농부는 길이나 돌밭, 혹은 가시덤불에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씨를 뿌렸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전도하시면서 유대교 지도자들과 사사건건 부딪혔던 적대적 환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훌륭한 말씀과 놀라운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었지만, 동시에 적대자들로부터 이런저런 위협과 훼방을 받아 복음성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농부가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과 같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씨를 뿌리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 역시 농부들처럼 언젠가는 알찬 결실을 거두리라는 희망을 갖고서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선포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셨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날 교회는 이사야 예언자 시대처럼 성전이 무너져 내려 더 이상 성전에서 예배를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처럼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 위협과 훼방을 받지도 않는 상황속에서 안전하게 하느님 말씀을 듣고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법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는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과거와 다른 의미에서 심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마음이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씨앗을 성능 좋은 냉장고에 잘 보관만 하고 있고, 그것을 가지고 밭에 나가 뿌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냉장고에 들어갈 공간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나마 냉장고에 보관된 씨앗을 빼내고 거기에 다른 음식들로 채워 넣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씨앗은 시간이 지나서 부패하게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 씨앗이 나를 영원히 살릴 소중한 음식인지도 모르고, 단지 냉장고에 먹을 음식으로 꽉 차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은 냉장고에 보관만 하고 있는 씨앗을 꺼내서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있는 ‘삶의 밭’으로 나가 하느님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 씨앗이 설령 돌밭에 떨어지거나, 가시덤불에 떨어진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말씀과 실천으로 농부이신 예수님처럼 꾸준히 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하느님은 하늘에서 비를 내려 씨가 발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씨뿌리는 농부가 되라고 말입니다.
작은 씨앗을 통해 무한한 생명을 건네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