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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품은 화양구곡 길 – 가령산,무영봉,낙영산,도명산,화양구곡
1.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의 낙영산(746m)에서 조망
華陽佳勝自天成 화양의 좋은 승경은 자연히 이루어진 것
落影山深草木馨 낙영산 깊어서 초목이 향기로워라
白石平鋪疑雪色 흰 바위 평평하게 펼쳐지니 눈빛인가 하고
驚波怒聒訝雷鳴 놀란 물결 노하여 시끄러우니 우렛소리 같구나
溪頭雨足芝苗嬾 시냇가에 비 흠뻑 내리니 영지 싹이 여리고
松頂風高鶴翅輕 소나무 꼭대기에 바람 높이 부니 학 날개 가볍네
只恨仙娥今不見 다만 한스러운 것은 선녀가 지금 보이지 않아
劉郞空抱昔年情 유랑이 속절없이 옛정을 품고 있는 것일세
―― 대곡 성운(大谷 成運, 1497~1579), 「파곶에서 노닐며(遊葩串)」
ⓒ 한국고전번역원 | 변은미 손해진 장미나 정재호 진유라 (공역) | 2020
역자 주) 끝부분 2구(다만 ~ 것일세)는 유랑(劉郞)이 천태산(天台山)에 약초를 캐러 들어가서 선녀를 만났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유랑은 한 명제(漢明帝) 때의 인물인 곧 유신(劉晨)으로 완조(阮肇)와 함께 천태산(天台山)에서
약초를 캐다가 우연히 도원동(桃源洞)의 선경에 들어가 선녀를 만나 반년을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수백
년 세월이 흘러 7대손이 살고 있어 다시 천태산으로 갔다고 한다. 《幽明錄》 여기서 유랑은 성운을 가리킨다.
▶ 산행일시 : 2025년 6월 6일(금), 맑음
▶ 산행코스 : 송면리 자연학습원,거북바위능선,가령산,746m봉,무영봉,낙영산,절고개,안부,도명산,마애삼존불,
장군바위,학소대,능운대,첨성대,만동묘,속리산국립공원 화양분소,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11.8km(이정표 거리 13.2km)
▶ 산행시간 : 5시간 37분(10 : 15 ~ 15 : 52)
▶ 교 통 편 : 좋은사람들산악회(27명)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07 : 10 – 양재역 12번 출구 200m 전방 국립외교원 앞
08 : 52 – 음성휴게소( ~ 09 : 10)
10 : 15 – 송면리 자연학습원, 산행시작
10 : 53 – 암릉
11 : 07 – 가령산(加嶺山, 645.8m)
11 : 55 – 746m봉
12 : 05 – 745m봉, 점심( ~ 12 : 15)
12 : 28 – 무영봉(742m)
13 : 07 – 낙영산(落影山, 684m)
13 : 17 – 절고개
13 : 50 – 도명산(0.3km) 갈림길
14 : 01 – 도명산(道明山, 643m)
14 : 19 – 마애삼존불
15 : 00 – 학소대(鶴巢臺), 주차장 2.5km
15 : 19 – 능운대(凌雲臺)
15 : 22 – 첨성대(瞻星臺)
15 : 31 – 만동묘(萬東廟)
15 : 38 – 운영담(雲影潭)
15 : 52 – 주차장, 산행종료, 휴식( ~ 16 : 17)
18 : 20 - 양재역
2. 산행지도
▶ 가령산(加嶺山, 645.8m)
3일 연휴의 시작이다. 양재역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등산 또는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서울을 빠져
나가는 고속도로 또한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가령산 들머리인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자연학습원까지 2시간
정도를 예상했는데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송면리 자연학습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화양천을 산뜻한 철다리로 건넌다. 그 다리 입구의 아치문에 ‘달빛 품은 화양
구곡 길, 가령산’이라는 표지판을 달아놓았다.
이 표지판이 뜬금없다 싶어 그 연유를 찾아보았다. 2020.10.29.자. 동양일보의 “괴산군, 화양동 6㎞ 구간에 ‘달빛
품은 길’ 조성”이라는 제하의 기사 중 일부이다.
“괴산군이 ‘달빛 품은 화양구곡 길’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29일 군에 따르면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자원을 경관시설과 접목시켜 사계절 주·야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
자원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까지 청천면 화양리~송면리 화양구곡 길 6㎞에 34억원을 들여 흙길(4㎞), 출렁다리(50m), 도로포장(1㎞),
경관조명, 보안등, 포토 존을 설치한다.”
‘달빛 품은 화양구곡 길’은 가무낙도(가령산, 무영산, 낙영산, 도명산)의 오른쪽 산자락을 굽이굽이 도는 화양천,
곧 화양구곡 길 6km를 말한다. 우리는 가무낙도를 넘어 제8곡인 학소대로 가서 구곡 길 따라 제1곡인 경천벽에
이르기 전인 주차장까지 약 12km를 간다.
요즘 가물었다. 더운 날이다. 화양천이 여느 개천처럼 볼품없이 흐른다. 다리 건너 산길 오르막은 먼지가 풀풀 인다.
등로 주변의 풀들은 시들었다. 가령산을 오르는 사람은 우리 일행 27명뿐이다. 처음 몇 분간은 얕은 골짜기와 완만
한 사면을 줄이어 가다가 0.8km 지난 도드라진 능선 안부께에 올라서부터는 한적한 산길이다. 지도 궤적으로는
살짝 왼쪽(남동)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느낌으로는 직각방향 틀었다. 울퉁불퉁한 돌길 오르막이다.
산행시작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아 기암괴석의 전시장에 들어서고 뒤돌아보면 눈이 시원하게 조망이 트인다. 너른
품의 또 다른 가령산(531.3m)과 갈모봉(582.4m)이 가깝다. 그 너머는 남군자산(827.0m)과 장성봉(915m)이다.
얼마 가지 않아 암릉과 맞닥뜨린다. 오를 수 없는 암릉이다. 왼쪽 사면 슬랩을 난간 따라 지난다. 걸음걸음이 경점이
다. 중대봉, 대야산, 조항산이 준봉이다. 거기서는 잘 알아보지 못한 가령산인데, 가령산에서는 그들을 우러러본다.
너덜 같은 바윗길 올라 능선이다. 암릉은 이어지고 이번에는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오른다. 곳곳 땡볕 가득한
너럭바위는 조망처이기도 한다. 숲속 지나고 너럭바위 지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숲속 가령산 정상이다. 국토지리
정보원 지형도는 한글로만 그 의미를 짐작하기 어렵게 ‘가령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에
는 ‘加嶺山’이라 한다. 돌밭 공터 한가운데 작고 아담한 화강암 자연석의 정상표지석이 있다.
3. 가령산 가는 길에 조망
4. 왼쪽은 또 다른 가령산, 오른쪽은 갈모봉(?)
5. 멀리는 남군자산, 오른쪽은 장성봉
6. 왼쪽 뒤는 장성봉
7. 중대봉
8. 왼쪽은 대야산, 오른쪽은 조항산
9. 왼쪽 뒤는 장성봉
10. 가운데 왼쪽은 조봉산, 오른쪽은 도명산
11. 멀리 왼쪽은 조항산, 오른쪽은 정화산
12. 왼쪽은 도명산
▶ 무영봉(742m), 낙영산(落影山, 684m)
자연학습원 1.8km, 낙영산 4.2km. 곧장 낙영산을 향한다. 가령산 정상을 벗어나고 마치 골로 갈듯 뚝뚝 떨어져 내
린다. 지도를 들여다볼 필요 없이 등로가 뚜렷하고, 이정표는 온 길과 갈 길을 안내한다. 왼쪽에서 가락골을 오가는
안부 지나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626.2m봉을 넘고 사뭇 심산유곡의 분위기다. 드물지만 백선과 민백미꽃이 보인
다. 한 걸음 한 걸음 거친 숨으로 오른다. 746m봉. 오늘 산행의 최고봉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落影山’이
라고 하지만, 속리산국립공원 안내에는 낙영산은 아직 멀었다.
746m봉은 물론 당분간은 좌우로 수렴 살짝 걷으면 산 첩첩 조망이 펼쳐진다. 여태와 다른 풍광이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바라본다. 그 산들을 다 알아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집에 와서 여러 지도를 들여다보아도 긴가민가했
다. 눈이 시리도록 뭇 산 일람하고 잠시 소강상태인 745m봉 아래 숲속 널찍한 공터에서 첫 휴식할 겸 점심 요기한
다. 이곳도 속리산국립공원이라 몰래 탁주 독작한다. 얼려온 탁주가 딱 알맞게 녹았다.
무영봉 가는 길이 산 첩첩 파노라마의 연속이다. 무영봉 정상도 울창한 숲속이다. 누군가 돌무더기 위에 조그맣고
네모난 돌에 매직으로 ‘무영봉 742m’이라 쓴 표지석을 올려놓았다. 봉봉 오르내리막이 심하다. 데크계단을 길게 내
린다. 안부 지나고 기암괴석 숲에 들어선다. 삼형제바위 지나 잠깐 오르면 684m봉이고, 거북바위, 토끼바위에 이어
형제바위 지나면 낙영산 정상이다. 낙영산도 사방 울창한 나무숲 둘러 조망이 막혔다.
낙영산은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에 따르면 “세종대왕께서 청천에 낙향하여 이동리에 들어서면 해가 떨어지며
산 밑에 물에 해 그림자가 비추었다 하여 낙영산이라 칭함.”이라고 하는데, 세종대왕이 청천에 낙향한 적이 있었던
가 의문이고, 청천에 이동리라는 지명은 없다. 다만, 세종의 국구인 심온(沈溫, 1375~1419)이 청송 심씨로 청천부
원군(靑川府院君)이긴 하다.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에 따르면, 그와는 전혀 다르다.
“신라 진평왕 때 당나라의 고조가 세수를 하기 위해 세숫물을 받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비치자 이를
이상하게 여겨 신하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이 산을 찾도록 하였으나 나라 안에서 찾지 못하였다. 어느 날 동자
승이 나타나 이 산은 동방 신라국에 있다고 알려줘 신라까지 사신을 보내 찾아보았으나 신라에서도 찾지 못해 걱정
하던 중 한 도승이 나타나 이 산의 위치를 알려주어 그 산을 찾아 낙영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라고 한다.
낙영산에서 절고개 가는 길도 겁나게 떨어져 내린다. 늘 눈물을 흘린다는 얼굴바위 지나면 ╋자 갈림길 안부인
절고개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1.3km 내리면 천년고찰인 공림사(公林寺)가 있다. 직진 1.6km는 조봉산(鳥鳳山,
678m)인데 출입금지 구간이다. 조봉산도 이 부근의 가령산, 낙영산, 도명산과 함께 괴산 35대 명산에 이름을 올렸
다. 욕심이 없지 않았지만 거기를 갔다 오기에는 너무 멀어 산행마감시간(16시 20분)에 맞추기가 어렵다.
13. 가령산에서 746m봉 가는 길에 조망
14. 앞 왼쪽은 가령산
15.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의 낙영산(746m)에서 무영봉 가는 길에 조망
18. 멀리 오른쪽은 남군자산
20. 앞 왼쪽은 가령산
21. 무영산 가는 길에 조망
22. 중간 오른쪽은 조봉산
▶ 도명산(道明山, 643m), 화양구곡(華陽九曲)
도명산 1.4km. 오른쪽 완만한 사면을 내린다. 그야말로 골로 간다. 날이 가물어 바싹 마른 계류를 세 차례나 건넌
다. 그러고도 얕은 골짜기를 한참 오른다. 안부에 올라서고 오룩스 맵에서는 ┫자 갈림길로 왼쪽 슬랩 오르는 길도
도명산을 간다고 하는데, 이정표는 직진 산자락 도는 길을 안내한다. 쫄았다. 가파른 대슬랩이 위압적이다. 고정밧
줄이 달렸거나 동행할 사람이 있으면 덤벼보겠는데 이 적막한 산중에 나 혼자다. 퍽 아쉽지만 손맛만 다시고 이정표
안내 따른다.
산자락 돌고 돈다. ┫자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이 도명산 0.3km이다. 궁둥이바위 돌아 곧추선 오르막이다. 계단에
이어 바윗길 난간 붙들고 오른다. 암봉인 도명산 정상은 사방 트인 너른 암반이다. 일대 경점이다. 노송 그늘 아래
배낭 벗어놓고 휴식한다. 독작하는 탁주이지만 맛 난다. 안주는 주변 가경이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도명산이
란 이름이 이 산 아래에 있던 채운암이라는 암자에서 도사가 도를 깨달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적고 있다.
정상에서 남쪽은 첨성대(3.2km)로 가고 북쪽은 학소대(2.8km)로 간다. 학소대 쪽이 볼거리가 더 많다. 삼존마애
불, 장군바위와 화양구곡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학소대 쪽으로 간다. 온 길 0.3km를 그대로 내려가서 산자락 돌아
내린다. 마애삼존불상이 가깝다. 엄청나게 우람한 바위군이다. 바위 사이에 옹달샘이 있다. 한 바지 떠서 마신다.
폐부가 시원하다. 다음은 마애불상 안내문이다.
“이 불상은 ㄱ자 꺾어진 암벽에 선각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중 오른쪽 불상은 9.1m의 규모에 안면의 길이만도 2m
에 이르며, 세 불상 중 가장 세련된 솜씨를 나타내고 있다. 양 어깨까지는 뚜렷한 선이 그어졌는데, 손갖춤모양(手
印)은 분명하지 않다. 중앙의 또 하나의 불상은 더욱 커서 전체 높이 14m에 이르는 정면상으로 하반신까지는 선각
으로 조성되어 있다.
또 다른 불상은 동떨어진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데 5.4m의 규모이며, 다른 부처와 달리 약간의 돋을새김 기법을
사용하여 곡선미의 세련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마애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하던 선각마애불상(線刻摩崖佛像)
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
마애삼존불상 내려 암벽 도는 데크잔도에서 전면의 코끼리바위와 그 너머로 옥녀봉을 바라보고 숲속 길에 든다.
등로 가까이 듬직한 바위는 장군바위이리라. 등로는 계곡과 나란히 간다. 혹시 알탕할 데가 있을까 수시로 기웃거린
다. 계류 군데군데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고, 사방 훤히 트인 개활지이기도 하다. 그냥 갈 수밖에 없다. 곧 화양천
철교 건너고 화양구곡 길이다. 학소대가 약간 떨어져 있어 가까이 보려고 다가간다. 화양구곡에 대하여 옛 문인들은
많은 시문을 남겼다. 제8곡인 학소대(鶴巢臺)에 대해서는 화양서원 유사인 임상주(任相周, 1710~1791)의 시가 잘
알려져 있다.
鶴巢問何年 학이 깃든 지 몇 년이 지났을까?
祗今猶有臺 다만 지금은 오히려 누대만 남아 있네
神仙不可見 신선은 볼 수 없음에
怊悵空徘徊 슬프고 원망스러워 부질없이 배회하네
安得安期生 어떻게 안기생을 만나서
一問長年術 한번 장수의 비결을 물어볼까?
長年欲奚爲 장수의 비결을 어찌 찾고자 하는가?
願掃犬羊窟 오랑캐를 쓸어버리려고 그러지요
23. 속리산 연봉
24. 백악산
25. 멀리 왼쪽이 속리산 연봉
26. 멀리는 속리산 연봉, 그 앞 왼쪽은 백악산, 앞 왼쪽은 무영봉
27. 낙영산 가는 길
28. 오른쪽 뒤는 조봉산
29. 자란초
30. 멀리 왼쪽은 대야산, 가운데는 둔덕산, 오른쪽은 조항산
31. 멀리 왼쪽은 남군자산, 오른쪽은 장성봉
32. 앞 왼쪽은 조봉산 부분
제9곡인 파곶(巴串)은 학소대에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다. 들르지 않고 그냥 간다. 제7곡은 바위 전체형태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이라는 와룡담(臥龍潭)이고, 제6곡은 바위가 구름을 찌를 듯한 높이 솟았다는 능운대(凌
雲臺)이고, 제5곡은 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는 첨성대(瞻星臺)이
고, 제4곡은 맑은 물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는 금사담(金沙潭)이다. 많은 사람들이 놀러 나왔다. 건너편
바위 위의 한 채 건물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했다는 암서재(巖棲齋)다.
만동묘(萬東廟)를 들른다. 가파른 돌계단 세 차례 오른 맨 뒤쪽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파병한 명나
라 신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만동이란 이름은 우암의 제자인 수암 권상하(遂菴 權尙夏, 1641~1721)가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만절필동’은 순자(荀子)의 유좌편(宥坐篇)에 나오는 말
이라고 한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군자가 물을 보고서 느껴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子貢問於孔子曰, 君子之
所以見大水必觀焉者, 是何)’ 공자는 물이란 모든 생물에 두루 미치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으니 이것은
마치 덕을 가진 사람과 같다. 흐르는 곳은 낮은 곳으로 향해 가며 옷자락에 잡히듯 따르니 마치 의로운 사람과 같다
(…) ‘만 번을 꺾어서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니 의지가 굳은 사람과 같다.(孔子曰, 夫水, 大徧與諸生而無爲
也, 似德. 其流也埤下, 裾拘必循其理, 似義.(…) 其萬折也必東, 似志)”라고 답했다.
여기서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황하(黃河)가 남과 북으로 수없이 꺾여도 중국의 지형이
서고동저(西高東低)인 까닭에 끝내는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결국 원래 뜻대로 된다거나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이를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만동묘 옆에 화양서원이 있다 그 편액 아래 비망기(備忘記)가 걸려 있다. 그 내용의 일부다.
“아! 사람들은 주로 존경과 어짐이 지성에서 나오는데 이것이 곧 어진이(현인)에게 바라는 것이다. 선비들이 바로잡
아 좇아서 간사한 말을 종식시키는 나의 뜻은 대개 어찌 우연이겠는가. 그 令儀 즉 威儀를 훌륭하게 갖추고 무리들
과 더불어 곧 제목을 게재하고 인하여 祭를 賜하기 위한 것이다.(噫人主尊賢出於至誠則亦庶幾定士趨而熄邪說 予
意夫豈偶然哉其令儀曺並卽題揭仍爲賜祭)”
제3곡은 효종이 돌아가시자 우암이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 올라 한양을 향하여 엎드려 통곡했다는 읍궁암(泣弓
巖)이고, 제2곡은 맑은 물이 모여 소(沼)를 이루고 있는데, 맑은 날에 구름의 그림자가 물에 비친다는 운영담(雲影
潭)이다. 제1곡은 높이 솟은 바위가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다는 경천벽(擎天壁)이다. 주차장에서 불과
0.2km 정도 떨어져 있으나 들르지 않는다. 배낭 벗어놓고 주차장 뒤편의 화양천 암반 훑는 옥수가 세면탁족하기 좋
다. 암반은 온돌방 아랫목마냥 뜨듯하고 옥수는 미지근하다. 산행마감시간 임박해서 버스에 오른다.
33. 도명산 정상
34. 도명산에서 조망
36. 마애삼존불
39. 앞은 무영봉 북릉의 코끼리바위
40. 화양구곡 제8곡 학소대
41. 화양구곡 제2곡 운영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