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규 박사의 희망 스토리 어린 서진규는 제천으로 이사해 동명초등하교와 제천여중을 졸업하고 상경하여 풍문여고를 마친 뒤, 사촌 언니를 따라 종로에 있는 가발 공장에 취직했다. 그의 나이 열아홉 살 때 식모살이 할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서진규는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가서 식당 웨이트리스를 하며 못다한 공부에의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5년 서진규는 결혼을 하고 이듬해 3월에 딸 성아를 낳았다. 그러나 그 해 11월9일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피해 미육군에 자원 입대했다. 딸 성아를 데리고 서진규는 미국과 한국, 독일, 일본 등지를 돌며 근무했다. 1987년 1월 14년간 무려 다섯 개 대학을 옮겨다닌 끝에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42살의 나이에 하버드대 석사과정에 입학을 하고 봄에 하버드대 국제외교사와 동아시아언어학 박사 과정에 합격을 했다. 그러한 서진규는 학문의 길과 군인의 길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1996년 11월 소령으로 전역 제대한다. 미 육군의 옷을 입은 지 20년 만에 군 생활을 마감한 것이었다. 현재 그는 하버드대 대학원 국제외교사와 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서진규박사와 딸 성아 이야기..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에서 서진규는 딸 성아를 희망의 첫 번째 증거였다..내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다..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만남을 뛰어 넘어 한 사람이 사람으로서 깊고 구체적이고 좋은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살아가는 서로의 힘이 되고 있을까..거울을 보듯이 엄마와 딸은 서로 마주보며 웃어주고 울어주고 기다려주고 어깨를 두들겨주는 진정 깊이 만나본 일이 있는 서로가 되고 있을까..서진규 박사의 자녀 교육은 부모나 주변 어른들만의 책임이 아니고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자녀 교육이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녀들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과정이기 때문에 행복도 불행도 바로 자기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결과라 말한다. 결국 부모는 좋은 거울일 뿐이지 인생은 스스로 파혜쳐 나갈 수 있도록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서진규박사의 말씀중에서..
어려움은 용기만 있으면 극복된다... 그리고 그 용기를 주는 것은 주변의 사랑이다.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라...그리고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해라.그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책임감과 독립심을 배우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배려해주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져주는 것.
또 서진규는...
자식을 강하게 키우려면 엄마가 먼저 강해져야 한다... 고양이가 호랑이 새끼를 키울 수는 없는 법이다.
낙오의 경험은 중요하다... 나중에 경쟁에서 낙오해도 회복이 쉬워진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지금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해가 지기 전에 지금 불러야 할 것이다.
서진규박사는 말한다...목표에서 눈을 떼지 말라고...
나의 목표?..희망?..우리 아들래미..보기에 부끄럼없도록 열심히 살아서,
아들의 꿈의 희망, 다른 사람의 인생의 희망이 조~금이라도 될 수 있도록..삶을 그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