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배운 다음 우리가 만난 별에는 또 어떤 것이 있었나. 《어린 왕자》의 소행성 B-612도 있고, 황순원의 〈별〉도 있고, 모르긴 몰라도 별별 별을 다 만나 보았을 것이다. 이병기의 시조에 이수인이 곡을 붙인 〈별〉도 꽤 많이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잊지 못하는 별 중 하나는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바로 알퐁스 도데(Alphonse Dautet, 1840~1897)의 별이 아닐까 싶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원작의 맛을 살려 요약해 보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외로이 양을 치는 목동. 내 나이 스무 살, 나는 주인집 따님 스테파네트를 흠모한다. 어느 날 뜻밖에도 그녀가 일꾼들을 대신해 목동의 양식을 갖고 산으로 찾아온다. 오, 귀여운 모습! 신기한 듯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스커트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며, 깜찍한 것이 일부러 얄궂은 질문을 던지고는, 내가 쩔쩔매는 꼴을 보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는다. 마침내 아가씨는 빈 바구니만 들고 떠난다. 헌데 저녁 무렵, 아가씨가 그만 흠뻑 물에 젖어 다시 돌아온다. 돌아갈 길 없게 된 그녀, 이제 우리 둘만이 이 깊은 산중에 함께 있게 된 것. 기어이 밤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아가씨를 위해 울안에 새 짚과 모피를 깔아 주고 나왔다. 이때까지 밤하늘이 그렇게도 유난히 깊고, 별들이 그렇게도 찬란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그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녀가 밖으로 나온다. 나는 염소 모피를 벗어 아가씨 어깨 위에 걸쳐 주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리고 우리 둘이는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았다. 무슨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그녀는 바싹 내게로 다가들었다. 바로 그 찰나에, 아름다운 유성이 한 줄기 우리들 머리 위를 스쳐 갔다. 그녀에게 나는 밤하늘의 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문득 내 어깨에 그녀의 머리가 느껴졌다.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앙증스럽게 비비대며 잠든 그녀의 얼굴을 지켜보는 나는 꼬빡 밤을 새웠다. 가슴이 설레는 것을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오직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게 해 주는 그 맑은 밤하늘의 비호를 받아, 어디까지나 성스럽고 순결함을 잃지 않았다. 이따금 이런 생각이 스치곤 했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다시 읽어 보자. 도무지 이 소설엔 소설이라 할 만한 사건이 보이질 않는다. 산속에서 두 남녀가 별을 쳐다보다가 아무 일 없이 잠드는 일 빼곤 별 볼일이 없지 않은가? 이런 의심이 들 땐 빨리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사건 없어 보이는 것이야말로 사건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다. 남녀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밤을 지새우는데 별 사건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설을 이루는 사건인 것이다.
알퐁스 도데가 이 소설을 쓸 무렵 프랑스 사회는 성적으로 문란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소설을 처음 접하는 당시의 독자들은 야릇한 성적 호기심으로 이 소설의 전개 과정에 빠져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보니 우리 눈에도 이 소설의 등장인물과 배경이 심상치 않다.
다시 읽어보자. 우리는 곧잘 이 목동을 매우 순진한 소년 취급하곤 하지만, 이 목동은 사실 스무 살이나 먹은, 그것도 산속에서 외로이 지내는 피 끓는 청년이다. 주제넘게도 감히 그는 주인집 따님을 사모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그 주인집 딸이 난데없이 나타나 치맛자락 걷어 올리고 얄궂은 질문이나 하고 머리를 뒤로 젖히며 소리 내어 웃질 않는가. 이쯤 되면 젊은 막일꾼과 어린 귀공녀의 야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통속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정력 넘치는 하인과 음탕한 마님의 관계처럼 말이다. 그런 상상을 할 때쯤 싱겁게도 주인집 딸은 빈 바구니만 들고 산을 내려간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을 건너다 그만, 그녀가 온통 물에 젖은 채로 돌아와 밤을 맞이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토록 흠모하던 소녀가 물에 젖은 채로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목동의 심장은 어떠했을까. 고혹적인 모멘트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런가. 여하튼 아무도 없는 산속에 두 남녀만이 남게 된 것. 그리고 ‘기어이’ 밤이 오고 만다.
독자들의 긴장은 고조된다. 이제 조금만 더 읽으면, 조금만 더 읽으면,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에로틱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보라! 모닥불이 피워지고 둘이 나란히 앉질 않는가!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 오직 양들만이 지켜볼 뿐. 들어나 봤나, 양들의 침묵이라고? 아, 목동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자꾸 바싹 다가들고, 게다가 머리카락를 비비대며 머리를 어깨에 기댄다! 드디어, 드디어!
그런데 웬걸? 이 절정의 순간, 별똥별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가슴이 설렜지만 오직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게 해 주는 밤하늘의 비호를 받아 목동은 성스러움과 순결함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가장 가냘프고 빛나는 별이었던 것이다. 별이 빛나는 그날 밤, 목동은 그녀를 지켜 가장 순수한 사랑을 완성했다. 그에게는 이것이 평생에 가장 아름답고 빛나고 소중한 추억이자 자랑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각성한다. 당시의 독자 편에서 보면 이것은 반전이고, 따라서 소설이 되고도 남는 사건이다. 아, 이런 사랑, 이렇게 순수한 사랑이 있었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구나. 이제 독자들은 감동을 안고 돌아선다. 자신도 조금 순수해진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별은 역시 순수와 순결의 화신이다. < ‘시를 잊은 그대에게,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정재찬, Humanist, 2016)’에서 옮겨 적음. (2019.12.11.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