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하스
핀하스에게 주어진 “평화의 언약”이란?
토라에 따르면, 대제사장 아하론의 손자인 핀하스((פִּינְחָס)는 공개적으로 죄를 짓고 있던 이스라엘 족장 짐리와 미디안 공주 코즈비를 과감하게 처형함으로써 전염병을 막아냈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제사장 아하론의 아들 엘르아자르의 아들 핀하스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나를 위해 열정적으로 복수함으로써 내 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켰으니, 그리하여 내가 나의 열심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멸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이제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노라 (I hereby give him My covenant of peace). 이는 그가 자신의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어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속죄하였으므로, 그와 그 뒤를 이을 자손들에게 영원한 제사장직의 언약이 될 것이다.” (민수기 25:11-13)
이 ‘브리트 샬롬’(ברית שלום, brit shalom), 문자 그대로 “나의 평화의 언약”은 핀하스에게 내려진 독특한 신성한 약속입니다. 과연 그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여러 세대에 걸친 주석가들이 제시한 다양한 해석을 살펴보겠습니다.
감사의 표시
라시는 이를 하나님의 감사로 해석하며 다소 난해한 주석을 달았습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에게 감사와 호의를 갚아야 하듯이,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핀하스에게 평화에 대한 당신의 감정을 표현하신 것이다.” (라시, 민수기 25:12.) 라시의 해석에 따르면, 실제적인 평화의 언약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하나님께서 감사를 표현하신 것이며, 이는 다음 구절에 묘사된 제사장직의 언약으로 드러납니다.
(핀하스는 그의 할아버지 아하론이 대제사장이 되었을 때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직은 아하론이 임명된 이후에 태어난 자들 사이에서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물림되었습니다. 그러나 핀하스는 아하론이 임명되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제사장직을 물려받지는 못했습니다.)
복수로부터의 보호
이븐 에즈라에 따르면, 하나님의 언약은 핀하스가 자신의 자경단 행위에 분노한 자들로부터 안전하게 평안히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습니다. 핀하스는 시므온 지파의 왕자 짐리와 미디안 왕녀 코즈비를 죽였기 때문에, 그들의 지파와 동맹국들의 분노를 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에 대한 약속은 복수심에 불타는 친척들이 그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었다. (이븐 에즈라, 민수기 25:12)
베호르 쇼르와 히즈쿠니도 이 견해를 뒷받침하며,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핀하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심으로써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여 공동체가 그를 살인자로 취급하지 않도록 하셨음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탈무드에 따르면,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 핀하스가 지파의 왕자를 죽였다는 이유로 불평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상을 내리심으로써 핀하스가 “하나님을 위해 복수”한 것이 옳았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산헤드린 82b)
핀하스의 내적 평화와 자비심 지키기
네쯔비(Netziv)로 알려진 나프탈리 쯔비 예후다 베를린 랍비는 이 언약을 핀하스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미쯔바를 위해 열정적으로 행한 폭력 행위라 할지라도, 사람의 본성을 잔인한 쪽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핀하스는 자신의 손으로 두 사람을 죽인 후 피에 굶주린 사람이나 무감각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네쯔비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핀하스에게 “평화의 덕목(the quality of peace)”을 축복으로 내려주셨습니다. (네쯔비, 민수기 25:12)
메시아적 평화
미드라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이쉬 라키쉬가 말하였다. “그는 핀하스이며, 그는 엘리야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평화를 이루었으니, 장차 너는 나와 그들 사이에도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기록된 바와 같이: “보라,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리라.” (말라기 3:23.) 따라서 평화에 대한 약속은, 선지자 엘리야로 여겨지는 핀하스가 언젠가 메시아 시대의 선구자로서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천사로부터의 평화 – 비범한 장수
오바디아 스포르노 랍비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해석을 제시합니다. “나의 평화의 언약”은 죽음의 천사와의 평화, 즉 조기 사망으로부터의 면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포르노는 핀하스가 “그 세대의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긴 생을 지상에서 누렸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핀하스가 여호수아 시대보다 훨씬 후인 기브아 전투 당시에도 여전히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으며, 어쩌면 입다 시대까지도 활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거의 300세나 된 셈입니다! 이는 불멸에 가까운 것으로, 스포르노는 미드라쉬의 “엘리야는 핀하스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핀하스가 결코 죽지 않고 선지자 엘리야로서 계속 살아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스포르노, 민수기 25:12)
육체와 영혼의 일체성
레베는 이를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의 평화의 언약”이라는 문구를 육체와 영혼의 일체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는 예언자 엘리야에게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그의 영혼은 결코 육신을 떠나지 않았으며, 그는 육신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열왕기하 2장)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육신을 완전히 정화하여 거룩함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죽음이나 매장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육신은 영적인 계시를 직접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리쿠테이 시호트』 제2권, 609쪽)
영혼의 통합
이와 유사하게, 바알 쉠 토브의 제자인 폴노야의 랍비 야코브 요세프가 기록한 가르침에 따르면, “평화”는 영혼 차원에서의 통합과 온전함으로 간주됩니다. 그는 아하론의 두 의로운 아들인 나답와 아비후가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카발라에서는 이들을 “하나의 영혼을 이루는 두 부분”으로 묘사하여, 자손이 없음으로 인해 불완전하다고 설명합니다.
조하르에 따르면, 핀하스가 짐리와 코즈비를 쳐 죽였을 때, 나답과 아비후의 영혼이 그 안에서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조하르 3:57b) 그리하여 핀하스는 한 몸에 두 영혼을 품은 ‘샬렘(완전한, שָׁלֵם)’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바알 쉠 토브는 “보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핀하스가 영혼의 연합을 통해 온전함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카발라에서 예소드(סוֹד: 기초)라는 신성한 속성은 영적 영역들을 통합하고(세피로트를 세상과 연결하기 때문에) “평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핀하스는 예소드와 마찬가지로 “모든 속성을 통합”하고 분열된 것을 하나로 모으는 짜디크(צַדִּיק, 의인)에 비유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에너지를 받아들임으로써, 핀하스는 분열을 치유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평화가 없었지만, 핀하스는 평화의 언약을 받아 그들의 영혼을 하나의 몸으로 통합함으로써 이를 바로잡았습니다.” (톨도트 야코브 요세프, 아하레이 파르샤)
By Mordechai Rubin (staff writer at Chabad.org)
Art by Sefira Light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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