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페북에 매일 올리는 영적 글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 중에 두 목사님이 계시다. 비판이나 판단이 아니라, 다시 한번 바른 찬양과 경배에 대한 분별을 위해 예를 든다. 1. 한 분은 자기도 치유은사를 받아 치유사역을 한다는 분으로서 하리운 비밀페북에 초청해 달라고 거듭 부탁을 하였지만, 조금 보고 결정하려고 있는 중에 지금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리고 어떤 자신과 다른 견해에 대해 마음이 안드는지, 자신의 페북에 욕을 써 놓은 것을 보고 아니다 싶어 차단해 버렸다. 일단 그리스도인은, 또 목사라면서 아직도 욕을 한다는 것은 신분에 맞지 않는 일이요, 성령으로 거듭나고 변화 받은 사람에게는 이미 버린 옛 습관이 되어야만 하는 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니 욕해도 괜찮다는 말은 성립이 안된다. 예수님은 천국 시민의 자격과 자세에 대한 산상보훈 마태복음 5:22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 하셨다. ‘라가’는 아람어로 ‘라카’이며 ‘머리가 빈 녀석, 무가치한 자, 바보’라는 뜻이다. 바보나 미련한 놈이라고 그렇게 쌍욕이 아님에도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 하셨건만 더 심한 욕이 예사이며, 그 욕을 들어 먹어도 싸다는 자세로 욕을 해대는 목사를 아무리 치유은사가 있다 해도 정결함과 영광의 영역을 추구하는 하리운에 가입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2. 또 다른 한 분은 아직 차단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이 나에게 보이지 않게만 해 놓았다. 내 글은 볼 수 있으되, 나는 그의 글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기름부으심에 대해, 은사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부흥에 대해 관심이 많고, 또 여러 해 외국 사역자들에게서 배우고 예언을 받아 우리 하리운이 말하는 마지막 부흥의 비전과 맞다고 하지만, 배도에 대해 자기는 찬성 안한다면서도 아직까지도 자신을 지도한 카톨릭과 연합하고 있는 외국 사역자들을 좋아하고, 말로는 지성소, 영광을 사모한다면서도 아직 단절을 하지 않고 너무나도 섞인 기름부으심이기 때문이다. 동생 목사와 같은 고등학교 선배이며 제 부친이 66년도에 설립한 기도원에서 학생 때 은혜 받았다면서 한번도 본 적은 없는데도 친밀함을 표하며 형님이라고 부르며 초청해 달라고 함에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온라인 집회 영찬양 유투브를 보았는지, 자신도 영찬양 한다면서 며칠 전에 보내온 메세지이다. 그것도 영어로 ‘Dear Aposlte Jeon’이라면서 영어성경 계시록 5:8을 보내왔다. 신사도 사역자들 학교에서 목사들을 지도하는 영적 교사들을 그렇게 오중 사역의 사도라고 부른다. 영어도 좀 알고 사도적 사역도 알고 자신도 경배를 안다고 보내온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정말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만을 갖게 하였다. 만나면 진지하게 좀 알려 줄 수 있겠지만, 지면으로는 쉽지 않고, 차라리 모르는 사람은 처음부터 가르칠 수 있지만, 자신이 그러한 영적 단계를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슬프게 배운 잘못된 지식을 버리게 하고 새 지식을, 그것도 지식을 넘어선 체험을 동반해야만 알게 되는 계시적 지식을 알게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의 동의를 구하고 묻고 있다. “주님의 보좌 앞인 지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사도적인 경배는 Harp and Golden bowls, 즉 찬양경배와 친밀한 양방향 대화식 중보기도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요?” 자신이 WLI(신사도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배운 개념을, 그리고 그렇게 경배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찬양과 경배는 기도가 아니다. 더군다나 대화식 중보기도는 더욱 아니다. 찬양은 일방향적으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역사’를 노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다. 기도는 기도이고, 찬양은 그대로 찬양이다. 경배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다”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계시록 4:8-11과, 5:9-14, 7:10-12에 나오는 새 노래는 보좌 주위의 네 생물과 24 장로들과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간 인 맞은 자 십 사만 사천 명이 부르는 노래이다.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능력을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기도가 아니다. 그 목사님이 영어로 보내온 계시록 5:8의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고 한 구절에서 기도는 이 땅의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물론 여기 거문고는 찬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성경적인 하나님만을 노래하는 찬양의 의미를 모르고, 기도와 간구와 신앙고백을 곡조만 붙였다고 찬양으로 알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은 기도송이요, 신앙고백송이지, 찬양은 아니다. 더군다나 경배는 영으로 드리는 찬양이다. 그러므로 보좌 앞의 네 생물, 모든 천사들, 24 장로들은 이미 영적인 존재들이요, 십 사만 사천의 인 맞은 자들은 구속받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른 자들이기에 영찬양이다. 그리고 경배는 엎드려 절하며 드리는 영찬양이다.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10-12). 그리고 Harp and Bowls(거문고와 향)이라는 것을 한국에 소개한 단체가 켄사스 시티에 있는 IHOP(세계 기도의 집)이다. 설립자인 마이크 비클은 교황을 만나고는 “그의 앞에서 나는 애숭이 처럼 여겨졌다”고 말하고 존경을 표했으며, 지금은 공공연히 카톨릭과 함께 연합하며 자신들의 집회에 신부들과 추기경들을 초청하고, 모임에 참석한 수녀들에게 기독교와 카톨릭이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는 배도의 길에 들어섰다. 말로는 전목사님이 말하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면서도 여전히 그런 교류를 끊지 못하고 있으면서 영찬양을 자신도 하고 있다고 보내 온 것이다. 며칠 대답할 마음이 없어 모른 체 했더니, 어제는 자기가 하고 있다는 영찬양이라면서 녹음 파일을 보내 왔다.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나는 행복해 행복해 항상 행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나는 기쁘다 기쁘다 항상 기쁘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나는 승리해 승리해 항상 승리해” 뒤에는 쉐콰이나 영광이라고 나오다가 끊어졌다. 영찬양이 아니다. 첫째,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행복하다, 기쁘다, 승리한다는 믿음의 바램이요, 고백이다. 둘째, 곡조를 즉흥적으로 만들어서 가사를 붙여 노래한다고 영찬양이 아니다. 가사가 중요하다. 믿음을 고백하고 있으니 믿음송인 것이다. 용어만 듣고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영찬양이라고 하면, 착각도 자유라고 자신에게는 힘이 될 지 모르지만, 아직도 기도 수준인 것이다. 감사, 찬송, 송축, 경배를 드리다가 내 영이 하나님 때문에 너무나도 벅차오르고 영광이 임하니까 나오는 노래가 영의 노래요, 영찬양이다. 아직도 기도 수준에, 간구 수준에, 고백 수준에 있으면서 나오는 노래는 곡조 있는 기도요, 간구요, 고백이다. 그냥 통합 찬송가 9장, 새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을 스무 번(20번)이라도 부르고, 너무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벅차 오르면, 통합 찬송가 40장, 새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4절까지, 그리고 일어서서 팔을 높이 펼쳐 들고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부르고, 또 후렴을 열 번이라도 넘게 전심으로 불러 보라. 성령 받은 자,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들은 내 영이 속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어느 순간에 영의 찬양이 터쳐 나오게 되고, 높은 옥타브로 올라가며 천사의 튠으로 노래하고 엎드려 절하는 경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경배는 엎드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선포하는 것이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 4:8).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12). 더 이상 회개, 기도, 간구, 고백송을 하며, 찬양과 경배라고 하지 말자. 거듭 거듭 말하고 있다. 자기에게 은혜가 되는 십자가 송, 은혜송이라고, 또 임재송이라도 찬양은 아니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나의 노래라고 하셨다(사 43:21).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더 이상 도적질 하지 말자. Period! 고백하는 대로, 노래하는 대로, 그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님이 곧 오신다. 빨리 회개하고, 용서하고, 쓰라린 감정에서 벗어나고,정결해 지자. 결국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에, 정결한 신부가 되지 못하기에, 성소의 영역에서 아직도 기도의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경배와 영찬양을 모르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주님의 신부가 경배할 수 있고, 영찬양을 드릴 수 있다. 지성소 영역에서 드리는 찬양이 영찬양이다. 입으로만 부르는 노래가 아니며, 혼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삶을 포함한 영으로 드리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이다. 시편 40:16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에베소서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하리운에 주어진 가장 높은 차원의 계시가 이 찬양과 경배이다. “경배를 올려 드리면 영광이 내려온다!” “영광이 내려오면 통곡이 일어난다!” 통곡은 결국 무너지는 것이다. 결국은 엎드려(엎어져) 경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만왕의 왕께” 댕큐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