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청산
현 진 건
1
김형식의 출옥할 날은 가까워온다. 고려 공산당 청년회 사건으로 평양 복심 판결에서 삼 년 징역을 받을 때엔 아무리 각오한 노릇이로되 눈앞이 캄캄하였다. 스물한 살이면 한창 좋은 인생의 봄철이 아닌가. 빛나는 이 청춘의 한 토막을 이 세상 지옥에서 썩고 배겨낼까. 삼 년이면 일천구십오 일! 이 숱한 날짜가 과연 지나갈 것인가? 이 아득한 시간의 바다 속에 떠올라보지 못하고 아
주 잠겨버리지나 않을까.
그러나! 쇠창살 너머로도 해는 뜨고 졌다. 까마득하던 삼 년도 지나는 갔다. 인제 이레만 더 밝았다가 어두웠다가 하면 갈데없이 만기의 날이 닥쳐오고야 만다. 그까짓 삼 년쯤이야! 그는 코웃음을 치게 되었다. 출옥을 하면! 그의 몸과 밈은 벌써 자유로운 세상으로 난다. 첫째 그의 동지요 애인인 박혜경을 실컷 맘껏 만날 수 있구나! 무엇보다도 이 기쁨이 앞선다. 혜경은 얼마나 충실한 동지요 애인이었던가.
두 달 만에 한 번씩 허락되는 면회기에는 그의 모양이 여일령하게 면회실에 나타났다. 차디찬 얼음장 속에서 별안간 피어나는 한 송이 꽃, 한그믐밤에 번쩍이는 눈부신 햇발, 이 꽃과 해가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날 때 형식의 기쁨과 행복은 컸다. 무거웁던 머리에도 날개가 돋친 듯 지질렸던 심장도 운다. 옛날의 용사를 연상하는 로맨틱한 비장미까지 겹친다. 이로 말미암아 이 고생살이가 몇 갑절 더 값이 있고 광채가 나는 듯하였다.
그가 처음 복역할 때엔 삼 년을 바라보고 날짜를 꼽아도 보았다. 그러나 삼 년보다도 더 젊고 헤기 쉬운 육십이란 숫자가 그에게 더 긴한 것을 깨달았다. 글자로 적어두는 것보다도 그의 머리는 정확하였다. 하루를 더 치거나 덜 꼽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예순이란 숫자가 손가락 끝에서 떨어지자마자 혹 하루, 고작해야 이틀이 지나지 않아 그의 태양은 반드시 나타났다.
그런데 요번 지나간 면회기에는 혜경은 면회를 오지 않았다. 이번엔 그의 헤는 수가 여든이나 되었다. 그러면 면회기를 지난 지가 이십 일이 넘지 않은가.
첫째는 병이 들지 않았나 걱정이다. 그러고 보면 면회 때에 그의 얼굴이 자못 수척하던 것이 생각난다. 도틈하던 두 뺨이 조금 빨리고 얼굴빛이 해쓱하였었다.
“왜 얼굴이 상했소?”
“뭘, 골치가 가끔 아파요, 괜찮아요.”
하고 별일 없다는 듯이 짐짓 웃어 보였다.
‘내 일을 걱정하다가 병이 났구나.’
하고, 그때 그의 맘은 애연하였었다. 동지요 애인인 자기를 철창에 남긴 그의 맘은 여북하랴. 번갯불같이 짧은 면회의 순간이 사라지고 돌아서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으리라.
쓸쓸한 고독살이도 얼마나 젊은 그를 괴롭게 하였으랴. 혜경에 대한 미안한 생각만으로도 하루바삐 한시바삐 이 감옥문을 박차고 뛰어나갔으면 싶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혜경은 확실히 병이 난 모양이다. 이 이유 외에는 면회 안 올 까닭이 도무지 없었다.
‘그러면 엽서 한 장이라도 있을 텐데…….’
면회기에 면회는 면회대로, 혜경은 편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감옥에서 허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에 생기는 일도 암시적으로 알려주고, 그 상냥하고 씩씩한 감정이 또렷또렷한 달필에 흘렀다. 황야의 나그네의 품속으로 날아드는 파랑새처럼 이 편지가 형식에게만은 위안을 준 것도 물론이다. 이 편지마저 전번 면회 이래로 날개를 쉬어 렸다.
‘편지도 못할 만큼 위독한가?’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출옥할 기쁨의 날을 며칠 안 남겨놓고 다시금 불행 한 일을 생각하기가 싫었음이다.
어린애 같은 공상이 도리어 그의 머리를 지배하였다.
혜경이는 짐짓 면회를 아니 온 것이다. 출옥할 때의 기쁨을 더 크게 하려고!
일주일만 지나면 실컷 맘껏 마주 볼 터인데 그 고생스러운 면회 올 필요가 어디 있느냐, 그 까다로운 조건 밑에 편지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푸른 하늘에 한 쌍의 새 모양으로 날개를 펄칠 자유로운 날이 가까웁지 않았느냐, 참아라, 참아라, 참아도 일주일 동안이 아니냐.
형식은 혼자 빙그레 웃었다.
이때였다. 감방 문이 덜컥 하고 열렸다.
“이백이십구호!”
하고 간수의 세찬 목소리는 불렀다. 그것은 형식의 죄수 번호다.
2
간수를 따라 복도를 돌아 면회실로 나가면서,
‘일주일 동안을 못 참아서 그예 면회를 왔구먼.’
하고 형식은 또 한 번 빙그레 웃었다.
면회실. 조그마한 책상을 새에 두고 간수 두 명은 유리로 만든 듯한 눈을 흡뜨고 수인부를 펴 들었다. 정거장 목책 같은 것이 방을 둘로 갈랐는데 한옆으로는 나무 칸살이 틔었고 죄수와 면회인이 마주 선 곳엔 밑은 나무로 막았고 상반신이 서로 보일 만한 윗막이엔 늘푼수¹ 없는 포장이 가려 있다. 이 어린애 장난감 같은 포장에 눈물과 한숨이 얼마나 서리었던고!
포장이 벗어지자 형식의 앞에는 과연 혜경이가 얼굴을 나타내었다.
잠깐 어색한 침묵. 피차에 말의 실마리를 찾는 일순간이다. 이편과 저편이 서로 말을 주고받다가 말이 막히는 때는 그 포장이 사정없이 내린다. 규정은 삼십 분이로되 기실 삼 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항례다. 말을 끊지 않고 주워대는 것도 그리 수월한 노릇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식은 제가 걱정하던 것을 그대로 물었다.
“어데 앓았소?”
“아녜요, 별로 아픈 일은 없었는걸요.”
하고 혜경은 방그레 웃어 보인다. 토실토실한 두 뺨은 이글이글 타는 듯, 그 감격성 많아 보이는 큼직한 눈은 영롱하게 밝다. 과연 그의 말마따나 병의 그림자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형식의 숨결은 저절로 심호흡이 되었다. 기름과 분 냄새보다도 그 붉은 입술에서, 번쩍이는 얼굴에서, 애젊은 육체에서, 높이 뛰는 심장에서 내어뿜는 듯한 달고 씩씩하고 어찔어찔한 향기를 들이마시는 듯이, 무덥고 퀴퀴한 감옥의 냄새가 젖은 콧속엔 이 향기는 언제든지 기적에 가까운 효과를 낸다. 오아시스의 한 모금 찬물인들 이보다 더 상연하랴. 아무리 방렬²한 술이라 한들 이보다 더 흐늑하게 심신을 녹여줄까. 형식은 이 향기에 청춘을, 정열을, 자유를, 사바세계를 말아낸다.
혜경은 말을 주워댄다.
“양동무도 잘 있고 이동무도 안녕하셔요. 모다들 내가 가거든 안부를 하라고요. 그러고 이영숙 동무 왜 아시지? 키가 크고 눈이 서글서글하고 로자란 별명을 듣는 이 말예요. 인제 독신주의를 집어치우고 남성의 전제왕국에 무릎을 꿇었지요. 결혼식도 아주 굉장하고 덕분에 우리가 조선호텔 구경을 다 했지…… 의엇한 뿌르조아 부인이 되어서 여간 서슬이 푸르지 않아요. 일이 공교하게 되노라고 결혼식 첫날밤에 옥동 같은 아들을 내쏟았겠지. 어이가 없어! 신방이 산실로 돌변이야, 하하…… 시집에서 뭐라고 수군거린 모양이나, 제 애 저 낳는데 시비가 무슨 시비람? 기고만장하게 서두는 바람에 일은 쉬쉬가 되었어요― 지금은 남편과 대공장을 건설해서 우리 무산 여성에게 일거리를 주신다고 팔을 뽐낸답니다……”
혜경은 봄 하늘에 넘 노는 종달새 보다도 더 쾌활하게 종잘거린다. 형식이도 어이없이 웃다가 전번 면회기에 안 온 것이 암만해도 맘에 키어서,
“전번 면회기에 오는가 했더니…….”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리고 이번에도 못 올 건데 문득 생각해보니까 만기가 가까운 듯해서. 그렇지요? 인제 며칠이 남았던가?…….”
하고 혜경은 날짜를 맞히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형식의 일(-) 자로 그은 듯한 시커먼 눈썹이 그윽이 움직였다. 혜경의 말이 자기의 감정과 빗먹어가는 듯……
“오늘이 구월 십일 일, 일주일도 못 남았구먼. 참 출옥하시기 전에 꼭 알려드려야 할 일이 있는데…….”
일순간 망설이다가,
“그건 출옥하신 뒤 우리들의 관계 말예요. 인젠 그냥 동무로만 지냅시다. 애인이니 뭐니는 쑥 빼버리고……”
형식은 농담인지 진정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사랑이란 유동체니까 한군데 매어둘 필요는 없지 않아?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그야말로 뿌르조아 사상이지. 난 이동무하고…… 왜 저 학생 격문 사건으로 이태 징역을 지르고 나온 이풍우 동무가 있지 않아요? 난 그 동무와 애인이 돼버렸어요. 그러고 한동안은 제삼자가 둘 새에 끼이지 않도록 약속을 해버렸죠. 김동무에겐 조금 미안한 노릇이지만…… 그래 된 걸 지금 어쩔 수도 없고…… 뭘 괜찮지? 내 나보담 더 좋은 애인 하나 골라드릴게.”
혜경의 태도는 제 하는 말이 형식에게 얼마나 무서운 내용을 가진 줄도 모르는 듯이 봄바람처럼 가볍고 가을 아침같이 명랑하다.
형식은 문득,
“흑!”
하는 이상한 소리를 치며 면회 구멍 앞으로 쓰러질 듯이 다가들 제 간수는 눈치 빠르게 일어섰다.
“인제 고만!”
하고 사정없이 포장을 내리고 말았다.
-끝-
2016년 6월 13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