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령 포클랜드 스탠리 해변 시가지
스탠리 시가지 길가 벽면에 그림이 줄지어 걸려있다. 이곳의 역사와 자연 등에 대한 사진이다. 스탠리는 동도의 섬으로 주도다. 1690년 영국 탐험대였던 존 스트롱 선장이 처음 이곳에 상륙했고, 무인도였던 이곳을 당시 영국 해군 관료의 이름을 따 이름 지었다. 최초 발견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측의 입장에 따라, 영국은 1592년 항해사 존 데이비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는 1520년경 에스파냐(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받고 원정을 나선 마젤란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1600년경 네덜란드인 세발다 데 웨르트가 이곳을 탐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764년 프랑스인들이 동포클랜드에 정착하면서부터였고, 이후 1765년 영국인 존 바이런이 서포클랜드에 상륙하여 1766년부터 영국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영국 정착촌에 대한 존재를 모른 채 당시 전 세계에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에 이곳을 양도하고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영국과 스페인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지리적으로 관리가 어려운 점 등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영국은 1774년, 스페인은 1811년 차례로 철수하였다. 이후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아르헨티나는 1816년 독립을 선언하였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가 1820년에 프클랜드의 영유권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1832년 영국은 포클랜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영국인이므로 포클랜드는 영국 땅이라고 주장하며, 이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정착민을 추방하고, 1833년 이곳을 무력 점령한 뒤 자국민을 이주시켜 자치령으로 삼고 계속 점유하였다. 이때부터 양국은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여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당시 전 세계 패권을 지고 있던 대영제국에 대항할 힘이 없었던 아르헨티나는 영국에 반환 요청만 할 뿐 해결점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50년의 세월이 지난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이곳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레오폴도 갈티에리 군사평의회 의장 겸 대통령 직무대행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선전포고 없이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면서 전쟁을 일으켰으나 아르헨티나군이 제도를 점령하자 영국군은 함대와 군대를 파견해 74일 만에 탈환하였다. 이 전쟁으로 아르헨티나군 7백여 명과 영국군 250여 명이 전사했고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이 전쟁의 패배로 이듬해 몰락하였다. 이후 영국이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양국 간의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2011년 9월 19일, 포클랜드제도 인근의 포클랜드해를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영유권 분쟁이 마무리되지 않고 가속화되는 점을 감안해 아르헨티나에서 부르는 말비나스해(Malvinas Sea)와 병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 방침은 포클랜드가 분쟁지역이라는 측면 외에도 국제수로기구(IHO)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 책자에서 동해(East Sea) 표기 문제와 관련한 영국의 반대 입장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남미경제공동체인 메르코수르(MERCOSUR)는 2011년 12월 19~20일 우루과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포클랜드 깃발을 단 선박에 대해서는 자국 내 항구 이용을 금지한다고 결의하였다. 이는 메르코수르가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메르코수르는 아르헨티나를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남미 주요 4개국이 정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로써 포클랜드제도를 둘러싼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갈등은 더욱 복잡하고 가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대서양에 위치한 영국의 해외 영토로, 수도는 스탠리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영토 분쟁 지역이며, 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 제도로 부른다.
포클랜드는 영국의 해외 영토로 남대서양에 위치하며, 공식 명칭은 포클랜드 제도이다. 2개의 주요 섬인 동포클랜드와 서포클랜드를 비롯한 78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구는 2,840명(2012년 기준)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영국계 백인이며, 영어가 공용어이다. 공식 화폐는 포클랜드 제도 파운드로, 영국 파운드와 화폐 가치가 동일하다. 전통적으로 목양업이 활발했으나, 1987년부터는 어업전관수역에 대한 어업 면허 수수료가 정부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충분한 재정 수입으로 인해 1인당 평균 소득이 5만 달러를 상회하며, 영국으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해 있다. 18세기 중엽부터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유럽 인들이 진출하기 시작한 이후 영국-에스파냐, 영국-아르헨티나 간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있으나, 1833년부터 영국의 실효적 점유가 이어지고 있다. 1982년에는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영국이 승리하면서 지금까지 영국의 해외 영토로 남아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포클랜드 제도 대신 말비나스 제도라고 부른다. 수도는 동포클랜드 섬의 동부 해안에 위치한 스탠리이다. 포클랜드는 산이 많으며 최고점은 약 770m인데 황량한 풍경이 전개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날씨가 잦으며, 여름은 꽤 기온이 높지만 그밖의 계절에는 스코틀랜드 연해지역의 기후와 비슷하다. 수목이 자라지 않으며 거의 불모지이거나 초원이어서 농산물은 재배되지 않고 주로 목양을 생활한다. 이 섬은 1592년에 영국의 항해가 데이비스가 발견했을 때는 무인도였다. 이런저런 애환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도로변의 사진자료에는 이런 역사와 자연환경 등의 독특한 장면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크루즈 배를 재승선해야 하는 촉박한 시간 관계로 자세히 보진 못하고 지나가면서 대충 보았다. 스탠리 해변 시가지는 아기자기 하면서도 더러는 웅장한 건물들로 곱게 도시를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