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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비화] 보물 제401호, 금동여래입상
글 : 제이풍수사
글 게시일 : 2022. 12. 26.
금동여래입상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와 나발이 표시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뒤쪽은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구멍이 길게 나 있다. 일제 때 원산의 미요시가 소장했을 때는 15만 원을 호가했으나 해방 후에 장석구의 소장으로 넘어갔다. 가치를 모르는 장석구는 담배 빨부리와 맞바꿨고 그 사실을 안 김동현이 4만 원을 주고 입수하였다. 1992년 이건희에게 양도하였다.
1.나를 죽이고 가져가라, 금동여래입상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보물 제401호),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규모는 높이가 32.3센티미터로 비교적 큰 편이며,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肉髻:상투)에 짧은 머리카락이 꼬부라진 나발(螺髮)로 표시되어 있다. 대좌와 광배는 남아 있지 않고, 불상 뒤쪽에는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구멍이 길게 나 있다. 비록 금도금이 벗겨지며 녹으로 얼룩이 지긴 했지만 군데군데 금도금이 호사스럽다.
2.무엇 때문에 왔나?
1937년경이다. 금강산의 유점사 근처를 지나던 한 행락객이 장마로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진흙에 묻힌 불상을 발견했다. 한 자가 넘는 금동불로 등에는 긴 타원형의 구멍이 나 있으나 묵직했다. 불상은 후덕하고도 복스런 얼굴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흙과 녹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행락객이 불상을 주어 횡재를 했다는 소문은 곧 원산에 사는 미요시(三由)의 귀에 들어갔다. 그러자 미요시는 매가 꿩을 잡아 채 가듯 3천 원을 주고 재빨리 입수했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십 원 정도 했으니, 쌀 3백 가마니 값이고 또 서울의 20칸짜리 기와집이 기껏해야 2천 원 정도 했을 무렵이다.
미요시.
그는 일제의 침략과 함께 조선에 들어 와 원산에 정착한 일본인으로 대단한 고미술품 수집가였다. 몸은 집채만큼이나 뚱뚱했고, 눈은 옆으로 날카롭게 째져 마치 일본 무사인 사무라이를 닮은 사람이었다. 이 땅에 들어 온 일본인은 이권을 독차지하면서 부를 쌓았는데, 그 또한 원산에서 가장 큰 어장(漁場)을 경영하고 또 원산 명물인 운단(雲丹)을 독점 판매하는 공장도 가지고 있어 대단한 부자였다. 그의 소장품은 대개가 조선백자였고, 다수의 금속유물도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반말을 해댔다. 점잖은 표현이 ‘군(君)’이고 보통이 ‘자네’였다.
1940년 대 초이다. 평양에 사는 김동현은 미요시가 대단한 불상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중국의 고물을 일본인에게 판돈을 챙겨서 무작정 원산의 미요시를 찾아갔다. 그 때 그의 나이는 갓 서른 살이 넘었을 때였다.
미요시의 집은 원산 앞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신전처럼 보였다. 천 평이 넘는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마당에 들어서자 기화요초로 꾸민 정원이 나왔다. 연못가엔 이끼가 낀 석탑과 석등이 멋스러웠고, 향나무에 반쯤만 가린 거북이 모양 수조에는 수련 아래로 금붕어가 노닐고 있었다.
“그래, 자네는 무엇 때문에 왔나?”
안석 위에 비스듬히 앉은 미요시가 긴 눈을 치켜뜨고는 김동현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식민지 백성에 대한 비웃음과 깔봄이 가득했다.
“신라의 불상을 보러 왔습니다.”
“왜지?”
“양도해 주시지요.”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하더니, 끈질기게 보여 달라고 조르자 마지못해 불상을 들고 나왔다. 오동나무 상자를 벗겨 내고 비단 보자기를 풀자, 그 안에서 금빛이 번쩍하고 듬직한 불상이 천 년의 향기를 발하며 나타났다. 김동현은 숨을 꿀꺽 삼키며 가지런히 떨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미요시는 마치 조상 대대로 모셔 온 가보 인양 의기가 양양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물건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제 됐네. 가 보게.”
불상을 비단에 싸더니, 미요시는 오동상자에 다시 넣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자니, 김동현의 가슴에 뜨거운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꼭 입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양보해 주시지요.”
“얼마나 주겠나?”
“3만 원 내겠습니다.”
거의 쌀 3천 가마니 값이고, 기와집 열 채 값이었다. 미요시의 눈이 잠시 긴장에 떨더니 곧 아래로 내려깔리며 상자의 끈을 다시 매었다.
“김 군, 옛 말하지 말게. 조선 사람 박창언이 며칠 전 와서 16만 원을 주겠다고 한 것을 팔지 않았어.”
“앗!”
김동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16만 원’이면 천문학적인 거금이다. 미요시의 싸늘한 표정이 이해되었다. 김동현은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끼며 그 집을 나왔다. 그 후 이 불상은 미요시가 수장한 채 8․15 광복을 맞이했다.
3.나를 죽이고 가져가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픔이 너무도 급작스럽게 미요시를 덮쳐왔다.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들어오고, 자신은 패전국의 포로가 되어 언제 테러를 당할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알토란처럼 모았던 고미술품조차 일본으로 가져 갈 수 없었고, 세상이 바꾸니 어장과 운단공장도 한국인에게로 넘어갔다. 작은 보따리 하나도 일본으로 가지고 갈 수 없는 소련 군정 치하이다. 찾아와서 사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조그만 소리만 들려도 한국인이 몰려와 행패나 부리지 않을까 깜짝 깜짝 놀랐다. 늙은 부인이 조바심이 나 한숨을 내뱉었다.
“여보! 어쩔 참이요. 우리는 언제 가요?”
“글쎄, 가기는 가야 할 텐데. 이 많은 물건은 어찌하고 가지?”
백발이 된 미요시의 눈가가 더욱 길게 째지며 파르라니 떨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져 미칠 것만 같았다.
“무슨 소용이에요.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소리! 내가 어떻게 모은 것들인데.”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는 늙은 미요시의 눈에 부연 안개가 서렸다. 세상의 온갖 부귀와 영화는 모두 즐기고 산 그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세월만큼이나 후회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명품의 조선백자를 소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급기야 한국인이 그의 집을 들이닥쳤다. 김학선(金學善)과 최창환(崔昌煥)이 그들이다.
“무슨 일로 내 집에 왔나?”
낯선 사람이 방문을 열어젖뜨리며 노려보자, 미요시는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곁에 있던 부인은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
“수장한 도자기를 접수하러 왔소. 어서 내 놓으시오?”
“뭐라고? 사겠다는 뜻인가, 빼앗겠다는 것인가?”
“당신이 소장한 조선백자는 이 나라의 문화재요. 어차피 일본으로 가져갈 수는 없어. 우리에게 파시요?”
“어떻게?”
“적당한 값을 처 주겠소. 어차피 빼앗길 물건이니 다행인 줄 아시오.”
김학선의 입가에 조소가 어리는가 싶더니 비웃음으로 변했다.
“무슨 소리! 얼마나 돈을 들여 수집한 것인데.”
“당신의 돈이 어디서 났소? 어장을 경영하며 얻은 수입과 운단을 팔아 생긴 돈 아니오?”
“그래서?”
“애당초 당신의 재산은 하나도 없소. 모두가 조선사람의 피와 땀을 착취하여 얻은 것들뿐이오.”
“네 놈들이 감히! 내 재산을 빼앗으러 왔단 말인가?”
미요시의 눈에서 불꽃이 뻗쳤다.
“빼앗는 것이 아니라 돌려받는 것이요.”
“….”
미요시는 극도로 화가나 말을 잊지 못했다. 만약 일본만 망하지 않았다면 순사를 불러다 요절을 내도 시원찮았을 일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의 신변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여보! 팔아요. 어차피 본토로 가져가지 못할 바에야 파는 것이 좋겠네요. 팔아 버리고 떠납시다. 여보!”
부인이 남편의 바지를 부여잡고 애원했다. 그러나 미요시는 차갑게 외면했다.
“어떻게 구한 것인데….”
“여보! 죽는 것보다야 났지요. 어차피 가져가지 못할 물건이 아니오.”
그 말에 미요시는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마음을 정한 미요시가 벽장 속으로 들어가 도자기를 꺼냈다. 벽장에서 나온 50여 점의 백자들이 방안 가득히 진열되었다. 짐작은 했지만 그토록 많은 일품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고태가 흐르는 오동 상자에서 꺼낸 청자접시를 보며 김학선과 최창환은 숨이 멎는 전율을 느꼈다. 너무나 화려한 청자접시였다.
청자상감보상화운학목단문접시(靑磁象嵌寶祥華雲鶴牧丹文接匙), 비록 크지는 않으나 안정감이 있는 형태와 때깔이 눈이 부시도록 빼어났다. 접시 바깥은 보상문이 마치 구름처럼 흐르는데, 네 개의 둥근 원형을 마련하고 그 안에는 목단꽃, 그리고 안에는 구름을 뚫고 비상하는 학을 여섯 마리나 상감 처리했다. 안과 밖을 학과 목단으로 대비시켜 상감한 특이한 접시였다. 한 면도 상감 처리가 어려운데 양면을 다 처리했으니 바라보는 김학선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또 봅시다. 정말 대단한 안목과 감식안을 가졌소.”
다음에 나온 것은 때깔이 눈덩이 같은 청화백자추초문입호(靑華白磁秋草文立壺)․청화도들문팔각병․백자이중투각사각병 및 연적 등등 모두 거물급이었다.
“자, 이게 전부요. 얼마를 내겠소?”
“적당히 처 드리겠소.”
두 사람은 적당한 가격을 얘기한 뒤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배를 이용해 38선을 넘어왔다. 미요시는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었다.
서울, 그들은 즉시 마포에 사는 장석구의 집으로 물건을 가지고 갔다. 그는 해방 후에 장안 제일의 수장가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명품들만 가져왔군. 그래 소련군의 감시는 어떠했나?”
“목숨을 건 사투였어요. 어찌나 풍랑이 심했는지 물귀신이 될 뻔했고, 또 소련군이 총질을 해대는 바람에 고개를 배 바닥에 파묻고는 죽으라고 배를 몰았어요.”
장석구의 집에서는 밤이 늦도록 무용담으로 가득 찼다. 당시만 해도 이미 삼팔선의 경계가 심해져 남북으로 오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 때 자리를 함께 한 선우인순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어 왔다.
“그런데, 미요시 집에 고물이 더 없던가?”
“그가 내 놓은 전부입니다. 더 있을 줄은 모르겠어요.”
“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은 어떠하고?”
그러자 장석구와 두 사람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도자기가 최고지요. 나는 불상에 흥미 없어요. 이봐, 김 선생. 한 번 더 올라가지? 이번에는 모조리 쓸어 가지고 와. 내가 돈을 듬뿍 쳐 줄게.”
거금을 받은 두 사람은 그 즉시 목숨을 담보로 맡기고 미요시의 집을 또 다시 쳐들어갔다.
“영감, 신라의 금동여래입상이 있지요?”
“없소.”
그것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한 물건이었다. 김동현이 3만 원을 주겠다고 했을 때도 콧방귀를 꿨던 불상이다. 불상 이야기가 나오자 미요시의 눈에서 불똥이 일며 살기가 뻗쳤다. 지난번 가져간 고미술품 값으로 그들이 내놓은 값은 턱없는 헐값이었다. 머리끝까지 독이 오른 미요시가 마지막 성깔을 부리며 그들의 말을 외면했다.
“순순히 내놓으시오. 영감.”
“뭐라고?”
“일본은 망했소. 당신은 전쟁 포로요.”
“뭐야?”
순식간에 일본도를 잡은 미요시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며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섬광이 번뜩이는 칼을 좌로 우로 움직이자, 일본도에서 서슬이 뻗쳤다.
“절대로 그 불상만은 안 된다. 물러가라.”
그 때, 쓰러져 있던 부인이 마요시를 붙잡으며 애원을 했다.
“여보! 나라가 망했는데 불상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여보! 무슨 소용이 있냐고요.”
그 순간, 김학선이 몸을 날려 미요시를 한 방에 발길로 걷어찼다. ‘꿍’하고 벽에 부딪친 미요시, 불똥 같은 눈물을 쉼 없이 떨어뜨리며 최후의 악을 질러 댔다.
“오레오 고로시데 모테이케.(나를 죽이고 가져가라)”
거친 숨을 몰아치던 미요시가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자, 부인이 남편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소리 소리를 질러 댔다.
“여보! 다 줍시다. 당신의 욕심이 지나쳐서 벌어진 일이니 누구를 원망해요. 다 줍시다. 예, 여보!”
“안돼.”
“여보, 어서 주고 본토로 돌아가요. 더 이상 숨이 막혀 못 살겠어요. 예, 여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부인이 기를 쓰며 애원했다. 그러자 미요시의 눈에서 체념의 빛이 돌며 방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미요시는 마루 한 가운데를 열고 땅에 파묻어 두었던 불상을 꺼내 주었다. 두 사람은 다시 올라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그 집을 떠났다. 누가 또 다시 그 죽음의 길을 다시 가겠는가?
금동여래입상의 좌측면과 금동여래입상의 뒷면
4.4만원을 내시오
미요시의 한이 서린 이 불상은 그러나 그 가치를 모르는 장석구의 소장으로 여러 해를 보냈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때에 따라 주인이 있는 법이다. 특히 고미술품은 자기를 더 사랑하고 아껴 주는 사람에게 기생처럼 옮아간다. 그것이 골동의 생리이다.
“야! 이거 굉장한 것이구먼!”
“장 선생님. 이 빨부리로 말할 것 같으면 중국에서도 아주 오랜 세월을 걸쳐 만든 것입니다. 이 백옥같이 하얀 상아를 보십시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조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희한한 일이군. 너무 정교해.”
장석구는 처음 보는 희한한 상아 빨부리를 보고 감탄하던 중이었다. 이제 갓 스물이 넘었을까, 이경도(李景燾)라는 청년이 상아 빨부리를 가져와 그를 유혹하던 중이다.
“이 상아 빨부리는 몇백 년이나 된 것이지요.”
보통의 담배 빨부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조각이 정교하고 또 빨대에 노란 담배 진이 묻어 고태가 자르르 흘렀다.
“그래, 얼마를 줄까? 마침 돈은 없는데.”
“아무거나 주세요.”
급히 일어나 장석구가 가지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금동여래입상이었다. 불상의 가치를 모르던 그는 상아로 만든 담배 빨부리가 탐이 나 불상과 맞바꾼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 천하의 불상은 너무도 어이없게 미요시에게서 장석구를 거쳐 이경도로 옮아갔다.
"이경도씨, 나좀 봅시다.“
불상이 이경도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김동현은 급히 그가 다니는 신문사로 찾아가 그를 다방으로 데리고 갔다.
“왜 그러시지요?”
첫눈에 이경도는 신념이 강한 젊은이란 생각이 들었다. 낯선 김동현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어제 금동여래입상을 입수하셨습니까?”
“예, 그랬어요. 그런데 그 불상은 왜요?”
“저한데 넘기실 수는 없는지요?”
“왜요? 흙이 범벅이 되고 녹도 많이 슬어 보잘 것 없던데요.”
“괜찮습니다. 가격을 말씀해 보시지요?”
금속에 대해 잘 모르던 그 역시 불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경도는 재빨리 김동현의 옷차림새를 살폈다. 넥타이에도 때가 꼬질 꼬질 묻어 있고, 구두는 살가죽이 허옇게 벗겨져 있었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경도는 약이 올랐다. 비록 녹이 나 볼품없는 불상이지만 담배 빨부리가 아까웠다. 그래서 그는 ‘너 한번 죽어 봐라’하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4만 원만 내시오.”
기와집 2채 값으로, 상류층은 아니더라도 시골서 제법 부자 소리 들으며 자식을 서울로 유학공부까지 보낼 수 있는 큰돈이었다.
“알겠습니다.”
김동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결심을 굳혔다. 이경도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멋지게 평양 촌놈을 후려 먹은 것이다. 김동현 또한 호된 값을 치렀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천하의 보물이 자기 수중에 들어 온 것이다.
김동현은 흙이 범벅이 된 불상을 집으로 가지고 가 먼지를 털고 초산으로 필요 없는 녹을 벗겨 냈다. 그러자 안에서 금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마치 호미를 들고 금을 캐는 기분이었다. 그 후 미요시의 한이 서린 이 불상은 김동현을 수장자로 해서 1964년 9월 3일 보물 제401호로 지정 받았다. 그리고 김동현은 건 40 여 년을 소장하다가 1992년 고구려반가사유상을 호암미술관에 넘길 때 함께 양도되고, 1995년에 10억 원을 거래 가격으로 소장자를 김동현에서 이건희로 명의가 변하였다.
현재 호암미술관을 거쳐 리움에 진열된 금동여래입상은 옛 영화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아무런 말없이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다. 이 불상의 형태는 신라 특유의 것으로 경북 선산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과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과 비슷하다.
(참고: 김동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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